까마귀
나는 대까마귀에 이어서 먼 조상들이 들려주는 구슬 왕자의 남은 여정에 귀를 기울였다. 본격적으로 허기를 채우기 시작한 그의 그늘 진 역사에 대해….
그림에 ‘구슬 왕자’라는 명랑한 이름이 붙게 된 건 프랑스와 독일, 스페인을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러서였다. 1900년 베네치아의 화상 아놀피니가 이 그림을 둘러싼 우울한 기운과 소문을 덮어버리고자 제멋대로 붙인 이름이었다. 무명 화가의 창고에 박혀있는 그림들을 발굴해서 극적인 이야기를 부여한 다음 큰 값에 팔아넘기는 것. 그것이 세기의 미술상 아놀피니의 전문이었다. 그는 미술상이라기보다 연출가나 극작가에 가까웠다. 그가 만든 드라마에 열광하는 것은 미술애호가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구슬 왕자에는 특별한 서사를 부여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위화감을 조성할만한 이야기들을 조금 덜어내야 했으니까. 만들어진 일면이 아닌 그림의 진짜 모습을 기억하는 건 까마귀들이었다. 그림의 과거를 지켜본 바람과 절벽과 고목들, 무역선 바닥을 굴러다니던 모래들이었다.
“무슨 구경거리 났소?”
“그 유명한 ‘구슬 왕자’라는 그림이 들어온대요!”
항구는 그림의 사연에 매료된 사람들로 북적였고, 아놀피니는 개선장군처럼 천에 싸인 전리품을 감싸 안고서 별장으로 들어갔다. 점잖게 옷을 빼 입은 거래상들이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들어갔다.
까마귀들은 인간들과 사뭇 다른 숙연한 분위기로 베네치아 항으로 들어오는 그림을 맞이했다. 구슬 왕자의 망토에는 이미 구슬이 너무 많아져서 수가 늘거나 줄어도 식별하지 못할 지경이 되었다. 여태껏 그림을 없애지 않은 인간들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름답고 반짝거리며 어둡다는 이유로 저 그림은 거의 신처럼 떠받들리고 있었다.
우리의 깃털 또한 마치 그림 속 구슬처럼 햇살 아래 여러 빛깔로 반짝거리며 어두운 기운을 풍긴다. 그러나 불길하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기 일쑤였으며, 죽음과 악의 상징으로 내몰려왔다. 수백 년 전과 현재,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무척이나 일관된 이 상징성의 불변은 인간의 역사에서도 드문 일이었다. 인류가 정한 이미지에 순순히 따라주어야 할지, 그것을 거부하며 다름을 증명해야 할지를 놓고서 우리 내면에는 언제나 혼란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째서 구슬 왕자는 보호를 받는가. 왜 사람들은 그림의 저주를 모르는 채 하는 가. 또는 왜 알고서도 숭배하는가….
끝없는 의문에 지쳐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 생명의 죽음이 야기하는 고리의 균열을 막기 위해서 우리는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 인간에 대한 애정, 정의를 수호하겠다는 숭고한 의지에 기인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구슬 왕자의 희생양이 길바닥의 돌이나 들쥐였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필사적으로 지켜냈을 것이다! 한 세계가 예정에 없던 소멸을 맞이하면, 우리의 공통 뿌리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남는다. 그래서는 가지를 뻗어갈 수가 없다. 이 진리를 망각한 채 다른 세계의 무너짐에 덤덤한 것은 오로지 인간뿐이다.
그러나 우리도 가끔씩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살아가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곤 했다. 아름다운 것은 무조건 보호받아야 한다고 믿는 탐미주의자들, 그림에 심각한 의미를 두는 건 쓸데없는 짓이라고 주장하는 이성주의자들, 자신만은 그림의 마력에 꺾이지 않을 거라 장담하며 스스로를 시험해보는 경험주의자들…. 그들 모두가 우리의 적이었다. 그 든든한 조력자들 덕택에 그림의 수명은 늘어났다. 그리고 서서히 구슬 왕자와 까마귀 사이의 보이지 않는 전쟁의 불씨가 번져갔다.
인간의 역사에서도 전쟁과 평화가 계절처럼 지나갔다. 피와 화약, 인부들의 손자국, 향신료, 눈물, 빗물, 미스트랄(프랑스와 이탈리에 부는 국지풍)의 냄새가 보호벽처럼 그림의 표면 위로 켜켜이 쌓여갔다. 인간과 인간의 산물로 빚어진 보호벽 밑에서 구슬 왕자는 평화롭고 안전하게 바로 여기, 내가 사는 곳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나의 조상은 바르샤바 대까마귀의 형제로 태어났지만 태양이 뜨는 동쪽을 더욱 사랑하여 러시아와 몽골을 거쳐 어느 작은 반도에 이르렀다. 이 땅 위에 흩어져 살아가던 그 후손들은 일생일대의 적이 눈앞에 나타난 중대한 사안을 논하기 위하여 검은 소나무 숲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오랜 관례대로 구슬 왕자를 거쳐간 인간들을 한 명씩 맡아 지켜오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그림과 조우하고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었고, 파벨처럼 영혼을 빼앗긴 이들도 있었다. 소집회를 시작하기 전 우두머리는 자신이 맡은 인간을 지키지 못한 까마귀들에게 발 밑의 가지를 꺾고 떠나라고 명했다. 많은 가지들이 꺾이며 모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수만큼의 동료들이 떠나갔다. 그 가지의 무게만큼 왕자의 망토도 틀림없이 무거워졌을 것이다….
십여 년 전에 나와 누이는 손을 맞잡고 전시관으로 그림을 보러 온 두 소녀를 맡았다. 1년 먼저 태어난 누이가 긴 머리 소녀를 지켜보겠다고 했다. 나는 그 곁에선 단발머리의 소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건물 밖에서 기다리던 부모가 그녀를 향해 '기연아' 부르며 손짓했다.
기연.
기연.
기연...
나는 내가 지켜야 할 생명의 고리를 잊지 않기 위해 그 이름을 단단히 가슴에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