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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아 Jun 25. 2021

구슬 왕자 1

까마귀


항구로 그림 한 점이 들어왔다. 소나무 우듬지에 앉아 배가 접안하는 장면을 내려다보던 나와 내 동료들은 날개를 초조하게 움직거렸다. 우리는 먼 서쪽에 사는 동료들에게서 이미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다. 절대 들어와선 안될 그림이, 일찍이 사라졌어야 할 그림이 이곳에 곧 도착한다고. 그러니 조심하라고.


폴란드의 어느 화가가 그렸다는 그 저주받은 그림은 소유주의 극진한 비호 아래 우리가 지키는 땅의 내로라할 미술관들을 전전했다. 몇 년간은 아무런 사건 사고 없이 잠잠했다. 그러나 그것이 그림의 습성이라는 것 또한 전해 들은 터라 우리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뒤를 쫓았다. 그림은 이 작은 나라가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오래 머물러 있었다. 9년이라는 지난한 시간이 흐르고 어느 호숫가 마을의 전시관에 걸리게 된 그림은 마침내 눈을 뜨고 말았다. 자신의 허기를 채워줄 표적을 찾아낸 것이다.


 


소녀


두 아이가 그림 앞에 서있다.


“자는 걸까?”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소녀가 말했다. 여름 햇살에 피부가 그을린 듯한 단발머리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는 그림 속 소년이 죽은 것처럼 보였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구슬 왕자. 그것이 그림의 제목이었다. 복도 끝 통유리 옆에 걸린 묘한 그림을 두 아이는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단발머리 소녀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고 있는 거겠지.”


그림 속의 왕자는 희미한 빛에 휘감긴 채로 누워있었다. 그의 얼굴은 고통에 일그러진 것 같기도 했고 황홀한 꿈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했다. 넝쿨 문양의 금박이 조금 벗겨진 액자는 마치 누군가 그를 위해서 섬세하게 짜 놓은 관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그가 걸치고 있는 망토였다. 무수한 구슬로 엮어 만든 수의. 그중에 똑같은 구슬은 하나도 없었다. 어떤 구슬에는 금빛이 섞여 있었고, 어떤 구슬에는 은하수를 닮은 회오리가 담겨있었다. 기포 없이 명료한 녹색을 은근히 내뿜는 구슬도 섞여 있었다. 알 하나하나를 살피던 두 아이의 눈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소년의 눈꺼풀에 고정되었다. 완전히 감긴 줄로만 알았던 눈꺼풀이 미세하게 벌어져 있었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아이들은 까치발을 들고 목을 길게 뺀 자세로 상체를 기울였다. 관람 경계선을 넘은 두 소녀는 당장이라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했다. 그때 커다랗고 새카만 그림자 하나가 그들의 앞으로 홱 지나갔다. 놀란 소녀들은 급하게 뒤로 물러나다 거의 엉덩방아를 찧을 뻔했다. 두리번거리던 긴 머리 소녀가 창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뭐야, 새 그림자였네!”


높다란 소나무 위에 방금 착지한 듯한 검은 새 한 마리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마귀


그림은 자신의 이야기를 인간의 역사에서 교묘하게 지워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그것이 그림이 지닌 어두운 힘 가운데 하나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오직 새들을 통해서 모든 역사는 왜곡 없이 기억된다. 부리에서 부리로 전해지는 구전이라도 인간의 기록보다 배로 정확한 까닭은 우리가 과거를 존중하며, 시간의 양분으로 뻗은 가지들을 경외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까마귀들이 반짝이는 걸 훔친다는 오명은 모두 이 그림과의 오랜 싸움으로 인해 빚어진 착시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고 인간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나 역시 그 기나긴 역사의 시작을 보기 위해 대까마귀 기억까지 두드려야 했으므로….


1879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는 실력 좋기로 소문이 자자한 요제프라는 안과의가 있었다. 폴란드는 물론 유럽 각지에서 그에게 진료를 받고자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잘 나가는 안과의에게도 근심거리가 있었다. 막 학교에 나가기 시작한 어린 아들이 조금씩 시력을 잃어가더니 기어코 눈이 멀어버린 것이었다. 오로지 환자들에게만 심혈을 기울이던 그는 자녀에게 태만했던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소문이 퍼져 나간다면 자신의 명성은 물론이거니와 생계에도 큰 지장이 있을 거라 판단한 요제프는 아들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장의사인 친구의 도움으로 죽은 사람들의 눈을 얻어왔다.


그 당시엔 기적처럼 여겨지던 수술도 요제프에게는 어렵지 않았기에 눈 이식 또한 쉽게 성공했다. 그가 아는 한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은 중유럽에서 자신뿐이었다. 어쩌면 전 세계에서 자신뿐일지도 몰랐다. 요제프는 아들의 눈에 붕대를 감아주고, 뿌듯한 마음으로 잠에 들었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다음 날 들여다본 아들의 눈은 새하얗게 바래 있었다. 도로 멀어버린 것이다….


안과의는 오기가 발동하여 여러 차례 방법을 달리해가며 수술을 집도했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보려는 욕심 탓에 괴로워하는 아들의 몸부림에도 무신경해졌다. 그의 장의사 친구는 더 건강한 상태의 눈을 찾기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요제프는 그가 얼마를 부르던 괘념치 않고 좋은 눈들을 사들였다. 하지만 바로 몇 분 전 숨을 거둔 사람의 눈을 이식해 잠시나마 맑았던 아들의 눈동자는 금세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죽은 사람들의 눈을 써서 그런 걸지도 몰라…."


의사는 무서운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불길한 예감이 든 아들은 앙상해진 팔을 허공에 휘저으며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다가갔고, 그의 소매를 쥔 채 무어라 외쳤다. 하지만 상념에 빠진 의사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상념은 치료할 수 없는 병처럼 요제프 마음 깊은 곳에 뿌리를 내렸다.


안과의는 여행을 떠난다며 몇 달간의 진료를 모조리 취소했다. 본인이 직접 눈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는 외투를 머리 위까지 뒤집어쓰고 여러 병원의 주변을 배회했다. 병색 짙은 환자들의 병실을 저승사자처럼 기웃거렸다. 한 달이 지나 그는 유리병 하나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그 무렵 그를 지켜보았던 대까마귀의 말에 따르면 그 안구는 유리관 가득 김을 서리게 할 정도로 따끈따끈했고, 뚜껑이 열릴 때 보인 동공은 유리알처럼 맑았다고 한다. 그런 눈이라면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의 눈도 뜨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요제프도 이번만큼은 성공할 거라 굳게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흥분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그를 맞이한 것은 영혼이 떠나버린 아들의 육신이었다. 선반 위의 상자가 엎어져 내용물이 거실 바닥을 메우고 있었고, 그 가운데 자신의 분신이 잠들어 있었다. 작은 몸체의 주변으로 요제프가 보관해둔 인공 안구의 표본들이 함께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들은 마치 여러 재질의 구슬들처럼 보였다. 잠시 집 안을 서성거리던 요제프는 멍한 표정이 되어 집 밖으로 돌아 나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의 집을 잘못 찾아온 것 같아. 내가 어떻게 이 눈을 구해왔는데…. 내 아들이 이렇게 인내심 없고 나약할 리 없어…."


바르샤바의 안과의는 그날 새벽 그 동네에서는 아주 드물게 어리는 짙은 안개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현장을 발견하고 신고를 한 것은 명절을 맞아 이른 아침 찾아온 요제프여동생이었다. 그녀의 조카는 숨을 거둔 뒤 반나절이 지났음에도 막 잠에 든 것처럼 뽀얀 피부를 빛냈으며 얼굴엔 은은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요제프와는 달리 그녀는 단번에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과 의사, 뒤이어 비극에 굶주린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맥이 풀린 채 앉아있던 의사의 여동생은 탐욕스러운 카메라들이 그 처참한 광경을 담아가는 것을 막을 재간이 없었다.


숨을 거둔 아이에게 누군가 담요를 덮어주었던 모양이다. 경찰이나 의사 중 한 명이었을 수도 있고, 아이의 고모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만 그 담요는 어느 각도에서 보면 꼭 망토처럼 보였다. 조간신문에서 이 끔찍한 소식을 접한 화가 모리치는 홀린 듯 사진 속 소년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곧 캔버스에 옮겨 담았다. 바닥에 뒹굴던 몇 개의 구슬을 망토 위로 올리고 화사한 물감을 엷게 덮어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정체기에 있던 그는 이 작업으로 다시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궁극의 예술에는 때론 이와 같은 어둠이 필요한 법이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그것은 언젠가 그의 스승이 그에게 들려준 말이었다. 그는 몇 주간 계속해서 채색에 몰두한 다음 보드카의 힘을 빌어 마무리에 박차를 가했다. 그림은 두 달 만에 완성되었다.


캔버스 구석에 이름을 써넣기 직전. 멀찍이서 그림을 보던 모리치는 문득 눈을 선물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불쌍한 소년이 자신의 그림 속에서만이라도 눈을 가질 수 있다면! 그의 귀에는 벌써 화가의 마음에 감동한 관객들의 박수가 들려오는 듯했다. 바로 이것이 작가의 힘이자 마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눈꺼풀 틈새로 드러날 눈동자의 색깔을 진지하게 고민하던 그는 자신의 아들 파벨의 눈을 떠올리고는 은은한 녹색을 채워 넣었다. 그로선 전혀 짐작도 못했겠지만 바로 그 마지막 붓터치로부터 그림은 생명을 가지게 되었고 그 생명은 평생토록 죽음을 먹고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미래를 화가는 볼 수 없었다.


만족스러운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모리치는 성공적인 습작으로서 그림을 간직했다. 세상에 바로 내놓기에는 아직 자신이 없기도 했고, 죽은 사람을 그렸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족스러운 습작을 그렸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어버렸다. 가뭄에 콩 나듯이 들어오던 그림 주문이 갑자기 쇄도 탓이었다. 무슨 소문을 듣고 왔는지 낯선 고객들이 초상화, 풍경화, 정물화를 정신없이 의뢰해댔다. 모리치는 순식간에 부유해졌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성공을 겪은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사람들이 몰렸다가 빠져나가는 순간 큰 전시를 마치고 난 후에 전보다 깊은 허기와 초조함을 느꼈다. 이런 결핍을 그는 더욱 화려한 전시장의 대관료를 선지불 하거나 술값으로 돈을 탕진하며 채우고자 했다.


어느 날 이웃한 귀족 부인의 초상화 작업에 열중하던 모리치는 드레스 묘사에 이르러 지난 습작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천에 덮여있던 옛 그림들을 하나 둘 들추다가 구슬 망토를 걸친 소년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분명 달라진 점이 있는데 바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 열심히 그려 넣은 눈이 도로 감겨있었다.


모리치는 예전에도 종종 보드카와 스타르카(폴란드의 숙성 위스키)를 마시고 줄곧 나른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려왔으므로 눈을 조금 뜨게 한 다음 눈동자 색을 채워 넣은 것 역시 꿈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다시 정성스레 눈을 그렸다. 아들의 눈을 닮은 연한 옥색의 눈을. 그러나 다음 날 아침 그림 속 아이의 두 눈은 굳게 닫혀있었다…. 화가의 목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스승이 망자를 그림에 담아서는 안된다고 했던 말이 뒤늦게 떠올랐다. 그의 말 언제나 모순 투성이었던 것도 떠올랐다. 모리치는 맑은 정신을 위하여 술을 줄여가면서까지 몇 번이나 같은 시도를 해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보지 말아야 할 거라도 있는 거냐? 응?"


화가는 무서움을 떨치려고 다시 술에 취하여 몽롱해진 상태가 되었고, 그럴 때면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그림에 시비를 걸었다. 물론 그림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럴 때면 모리치는 그림 위에 천을 덮어두는 것도 잊은 채 작업실을 떠나서 침대로 기어 들어갔다.


나른한 여름 오후. 화가의 아들 파벨은 여느 때처럼 테라스에 발을 끼우고 앉아 지나가는 행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자신의 집 현관으로 데굴데굴 굴러 들어오는 구슬을 발견했다. 그는 문 앞으로 달려 나가 물건을 흘렸을 법한 또래 아이들을 찾아보았지만 거리엔 가죽구두를 신은 거인들뿐이었다. 복도에 멈춰있던 구슬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구르다가 서기를 반복하며 파벨을 아버지의 작업실로 인도하더니 잠들어 있는 소년의 그림 앞에서 우뚝 멈추어 섰다. 어린이들은 모든 신비로운 일들의 이면을 볼 줄 아는 법이다. 파벨 역시 외로운 그림이 자신을 부른 것임을 직감했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리를 비울 때마다 그림 속 친구가 심심하지 않도록 그의 앞에 앉아 놀았다.


처음엔 그저 말수 적은 소꿉친구가 하나 생겼다고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깊은 꿈에 잠겨있는 소년에게 호기심을 느끼고 매료되어갔다.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이토록 생생한 인물을 그려낸 아버지가 자랑스러워 가슴이 벅차올랐다. 파벨은 그림 속 소년의 눈꺼풀에 검지 손가락을 슬며시 가져다 대었다. 그 섬섬한 눈썹들이 한 올씩 만져지는 것 같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푸른색, 붉은색, 보라색…. 망토 위에 그려진 오색의 신비로운 구슬들이 강렬한 빛을 발하더니 기쁨, 분노, 슬픔이 뒤섞인 눈동자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잠든 소년이 홀로 감당하기에 그 감정들은 너무도 무거울 것 같았다. 파벨은 그를 돕고 싶었다. 하나뿐인 친구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이 간절해진 나머지 무심코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네 옆에 누워보고 싶어. 그럼 그 무거운 망토를 혼자 덮고 있지 않아도 될 텐데.”


거의 무의식적으로 꺼낸 말이었지만 소원은 덜컥 이뤄졌다. 눈꺼풀이 조금씩 무거워지고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파벨은 그림의 곁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영영 깨어나지 않는 잠 속으로.


처음에 모리치는 아들이 놀다 지쳐 잠든 거라고 여겼다. 그러나 몇 시간이 흐르고 아무리 흔들어도 아이가 깨어나지 않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앞의 장면이 어느 몹쓸 화가의 그림이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꿈이길 바랐다…. 겨우 정신을 가다듬은 화가는 황급히 의사를 불렀다. 그러나 아이의 이곳저곳을 만져본 의사 역시 거부하고 싶은 사실을 확인시켜 줄 뿐 기적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며칠 후 장례가 치러졌다. 소박한 가문의 묘지에는 조문객 수보다 까마귀들의 수가 더 많았다. 집으로 돌아온 모리치는 곧장 아들의 죽음을 방관한, 또는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저주받은 그림을 태워 없애려 했다. 모든 게 그 그림 탓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심신이 쇠한 모리치는 격한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기름병을 들어 올리던 도중 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의식이 돌아왔을 때, 콧수염을 한 남자가 턱을 괸 채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림 거래상인 의 친구였다. 그는 막 깨어난 모리치의 어깨를 잡아 흔들면서 이런 명작을 왜 여태 숨겨두었냐고 나무라듯 물었다. 그리곤 화가정신을 차릴 틈도 주지 않고 거액을 그림 값을 제안했다. 화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모든 걸 잊고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넉넉한 금액이었다. 늙은 모리치에게는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운명이 자신의 손에 붓을 쥐어주는 대신 소중한 것들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고 농담처럼 말해오던 그였다. 사림이든 재물이든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렸으니 그 농담은 서글픈 사실에 가까웠다. 아내와 아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이 을 당장에 벗어나고도 싶었다. 느닷없이 떠오른 새로운 욕망으로 인해 그림을 태우겠다는 전날 밤의 결의 흔들렸다.


'파벨이 죽은 게 꼭 이 그림 때문은 아닐 수도 있잖아?’


화가는 생각했다. 그리고 서신으로 그림을 팔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상인 친구가 득의양양해서 그림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떠나자마자 모리치는 집과 집기를 모두 처분했다.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프랑스 아르데슈에 있는 친척에게 잠시 머물 방을 마련해달라고 연락을 한 다음 기차에 올랐다. 바위산에 둘러싸인 고요한 그 마을은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거기서 잠시 쉬었다가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다 보면 기운도 생기고 영감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국경을 넘는 기차 안에서 모리치는 원인 모를 불안감에 뒤척였다. 그림을 넘기기 전 마지막으로 상태를 확인했을 때, 망토 위의 구슬이 아홉 개가 아니었다는 게 떠오른 참이었다. 모리치는 둘로 나누었을 때 불균형을 이루는 홀수를 좋아했다. 아들의 나이를 떠올려 망토의 한쪽에는 구슬 네 개를, 다른 한쪽에는 다섯 개를 배치했다. 그건 틀릴 수 없었다. 그러나 상인에게 넘길 때에는 양쪽에 각각 다섯 알…. 자신이 그리지 않은 구슬이 하나 더 매달려 있었다. 모리치는 꿈속에서 그 구슬의 목소리를 들었다. 영롱하고도 슬픈 녹색 빛의 구슬이 애절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바르샤바를 떠난 기차가 파리 중앙역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모리치는 내리지 않았다. 그를 마중 나온 친척들이 기관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기차의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어디에서도 늙은 화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낡은 화구와 빛바랜 외투가 마지막 칸에서 발견되었을 뿐이었다.


대까마귀가 간직한 구슬 왕자에 관한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나는 그 기억의 줄기에서 잠시 물러섰다. 길고 긴 그림의 역사를 훑기에 한 번의 호흡은 역부족이었다. 곧 마주할 존재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키우고 싶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만물이 작게 보일 만큼 높게 날아오르는 방법이 있다. 나는 힘차게 비상하여 호숫가 마을을 크게 맴돌았다. 적당히 선선한 저녁 바람이 깃털 틈새를 간질이며 지나갔고, 멀리 지평선 너머로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건 구슬 왕자가 깨어나기 불과 며칠 전, 내가 마지막으로 누린 평화로운 하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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