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내게도, 당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한 동료가 있었다. 그녀는 인도 출신의 경력 10년 차의 Backend와 infrastructure 다루는 시니어 개발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수습기간 마지막 달, 잘렸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6개월간의 Probezeit, 즉 수습기간이 있다. 이 기간에 해고되는 경우가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다. 그리고 나는 그 없지도 않은 경우를 목도한 것이다.
사실 그 동료는 일하기에 편한 상대는 아니었다. 시간관리를 잘 못해서 미팅에 늦기가 일쑤였고, 회사가 유연근무를 지원한다지만 그녀는 혼자 다른 시차로 근무해서 소통에도 종종 어려움이 있었다.
현 회사의 모든 직원은 유럽권에 거주하고 (80% 이상 독일거주) 회사는 독일에 위치하고 있다. 고로 업무는 독일 시간으로 9-18 근무 체계를 기본적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시간은 아시아 시간으로 흘러간다는 점이 문제였다.
언젠가 사수가 그녀에게 ‘솔직히 보통 하루 업무를 어떤 시간 체계로 보내세요?’라고 물었다. 당시 그녀의 대답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속으로 악소리가 절로 나왔다.
님아 그 말을 주어 담으소서-
그녀의 하루는 이런 식이었다.
보통 오전 미팅이 잡힌 시간에 일어나서(11시) 미팅하고, 업무 조금 보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업무 조금 보다가 쉬고 본격적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시간은 오후 4-6시쯤? 그때부터 탄력 받으면 늦은 시간까지 일 하기도 한다고.
사실 혼자 하는 일이고, 할당된 업무만 좋은 퀄리티로 만들어내면 유연근무를 지원하는 마당에 저런 시간관리 체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심지어 입사할 때, 시간을 어떻게 쓰는지는 나한테 달려있으니 9시-18시 근무시간을 크게 신경쓸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들었다. 하지만 어느 조직에서나 팀워크가 중요하듯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팀워크, 협업이 중요하다. 코드 작성은 혼자 하는 일 같지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내 업무도 같이 지연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내 입장에선 feature*를 마무리하고 싶어도 그녀 쪽에서 준비가 안되면 할 수 없는 경우가 있으니 나도 같이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 사실은 격일로 진행되는 전체 팀 업무보고에서 내 사수와 CTO에게까지 매번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feature: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특정한 기능; 예를 들어 사진을 편집하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것과 같은 기능
회사는 자선단체가 아니다. 회사는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상업적 기관이다. 더군다나 30명 남짓되는 스타트업에선 개개인이 하는 일이 눈에 너무나도 잘 보인다. 이곳에서 월급루팡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끝내 CTO는 그녀에게 퇴사통보를 했다. 그가 그녀를 Senior 개발자로 채용했을 땐 보다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업무나 문제를 해결하길 기대했지만 그녀의 업무 방식과 태도는 그에 걸맞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다.
직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단순히 일만 잘하는 능력에 의존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관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 기회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 자신을 어떤 동료이자 어떤 사람으로 형성할지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 있다.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라도, 매일의 작은 선택과 행동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