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6.15.
두 눈을 좀 의심했다.
나에게 걸맞지 않은 시간.
서둘러 기상 인증 사진을 찍고 '미라클 모닝 단톡방'에 올렸다.
서둘러야 한다.
한 주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수건을 찾는다. 항상 나는 내가 쓰던 수건이 뭔지 잘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하늘색!'
손가락으로 고복(鼓腹)의 때를 열심히 밀고 있는데 마늘이 문을 연다.
"오빠 뭐 하니?"
하!
깨달았다. 오늘은 처치 데이다.
월요일인 줄 알고 서둘렀던 나였다. 마저 씻고 홍삼꿀차를 탄다.
어제의 정신 소모량이 너무 많았던 탓인 것 같다.
육체적 운동 뿐 아니라 정신적 운동도 숙면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의 숙면은 그저께 여의도에서 마늘과 세무서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 식사를 하고 있던 중 밤 11시 넘어 윗집 노총각 전화기로 온 엄마의 전화로 시작된 '짧고 긴 소모의 시작' 때문인 것 같다.
어제 오전에 나는 갈현동 엄마 빌라로 향했다.
엄마집 윗층(4층) 아저씨를 만났다. 아침에 전화가 와서 엄마집에 오면 잠깐 올라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세 아이를 낳았고 큰애가 올해 고3에 올라간다고 한다. 20년 넘은 오래된 이웃이다. 내가 결혼 전부터 뵈오던 서글서글 선량한 분이다.
이웃님의 어머님 말씀을 꺼내신다. 의정부에 홀로 지내시던 어머니께서 24년 1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급격히 정신 상태가 안 좋아져 아들도 못 알아볼 정도가 되어 갈현동으로 모시고 온게 작년 7월이었다고, '치매'는 답이 없으니 자제분이 자주 와주시는 방법 뿐이라는 등의 여러 말씀을 30분 넘게 해주셨다.
"그런데 저희 엄마가 잘 아시겠지만 독특하고 완고하세요. 병원의 병 자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키세요."
이미 나의 엄마는 그 빌라의 명물이다. 20년 넘게 그 빌라의 9세대는 어느 집도 이사를 가지 않았다.
그 중 우리 엄마는 단연 최고 명물이다.
매일 아침 우편함에 'Korea times'가 배달되어 있는.(7년 전부터 갈현동에서 종이 신문으로 그 신문을 보는 유일한 분이란다.)
내가 같이 살 때. 장애인 아들은 툭 하면 새벽에 1층 출입 화단에서 담배를 꼬나 문채 만취해서 졸고 있는.
새벽에 나가면 밤 10시가 넘어가서야 들어오는.(초인종이 의미 없는. 매일 도서관을 가신다.)
가끔 집에 계실 때도 불이 켜지지 않는.(그저 절약. 겨울에도 보일러비가 4,000원 나온다.)
과일을 사서 툭 하면 이 집 저 집 문 앞에 놓는.(정이 많으심.)
윗집 남편분과 출구 전략을 쉽게 찾지 못 하고 얕은 탄식을 더한 후 내려 오는 길에 1층에서 그 집 부인분을 만나서 또 20분 얘기를 나눴다.
"어머니한테 양해만 구해 주시면 제가 매일 밤 내려가 치매 패치를 붙여 드릴께요. 24시간 효과 있대요."
불가한 시나리오를 읽으셨다.
어제 밤에 친구 집에서 잔 딸래미를 장모님 집으로 데려다 놓으려 마늘 친구 집에 갔다.
"오빠. 밥 안 먹었지? 내가 처음으로 시도한 김치 수제비야 잡숴봐."
탄식이 또 나온다. 그 친구년은 내가 젤 좋아하는 마늘 친구년인데(세무사 + intp) 요리 솜씨는 조리돌림급이었기 때문이다. 예상 외로 먹을 만했다.
나오는 길에 하니 머리가 푸석해 보였다.
"머리는 감은거임?"
딸은 벌컥 화를 낸다.
"아빠. 기분 참 나쁘다. 내가 아침에 감았어. 농담할 기분 아니거든. 장난도 한두번이지!"
나.야.말.로. 농담할 기분은 아니었는데...
딸은 차 뒷자리에 앉는다. 거울로 살짝 보니 입이 삐죽 나왔다. 시선을 던지니 안 보이는 구석 자리로 옮긴다.
나도 버튼이 눌러졌다. "너. 왜 그렇게 예민한거야! 아빠야말로 농담할 기분이 아니었는데!"
그 이후는 더 엉망이었다. 딸은 울면서 장모님 집으로 올라갔다.
갈현동으로 돌아가니 충북 진천에서 올라온 형이 있었다.
아까 그 4층 집 아저씨한테 전화가 왔다.
"아드님 밑 주차장 어떤 차 위에 있던 어머니 폰을 찾았어요. 가지러 오세요."
2년 전. 연신내 sk 대리점에서 눈탱이 당한 30만원 짜리 남색 폰. 엄마 것이 맞았다.
엄마는 전자 문명, 스마트 폰을 경멸하는 분이라 그냥 딱 구형 피처폰이다. 누가 훔쳐갈 이유가 없다.
아침 연신내 지구대에서 내게 온 전화 내용 앞부분은 성립될 수가 없다.
"연신내 지구대 경찰입니다. 아드님 되시죠? 어머니가 전화기를 잃어버렸다고 범인을 찾아달라 하십니다. 어머니가 평소 지병이 있으신가요?"
형이 문자를 살피더니 오후 2시 45분 상암동 cu편의점에서의 결제 이력을 발견했다.
엄마가 자주 가시는 '한국 영상자료원' 앞이었다. 형제는 안도했다.
저녁 8시 반까지 기다리던 형제는 서오릉으로 향해 통돼지 두루치기를 먹고 돌아왔다. 맨날 형아가 사줬는데 내가 계산했다. 형은 좋아했다. 기분 좋은 둘은 행복한 오늘의 마무리를 기대했다.
집에 왔더니 오늘의 '핵주인공'이 입장해 계셨다. 나는 주차를 하고 조금 늦게 올라갔다.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거니? 아들들아. 미안하다."
어제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셨다.
"집에 들어오려는데 처음 보는 놈이 우리 빌라 공동 현관문이 고장났다고 했어. 그 나쁜 놈이 내 핸드폰에서 뭘 찾기 시작하더라구."
"엄마. 핸드폰이 왜 그 남자 손에 간거에요?" 형이 물었다.
"몰라. 내가 그 부분이 기억이 안 나"
조금 주저하다가 작심한 내가 말했다.
"엄마. 오해 마세요. 이건 엄마에 대한 공격이 아니에요. 월요일에 병원에 가서 검사만 좀 받으시자구요."
성급했음을 후회하던 찰나 엄마는 돌변했다. 바닥을 발로 쿵쿵 내리 찍으시며
"내가 딸을 낳았어야 했다. 오래전부터 한 생각이다."
"동생아. 글렀다. 넌 집에 가라" 형이 말했다.
"너도 썩 꺼져라. 배은 망덕한 것들. 감히 너희들이 나를 입원시키려 그래?"
"아니 엄마는 지금 저희 걱정을 그렇게 받아들이신거에요? 젠장. 그만 둡시다. 맘대로 하시고." 내가 말했다.
"엄마 전화기 복원해도 저한테 문자 같은거 보내지 마세요." 형이 말했다.
엄마는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며칠 동안 두고두고 공격형 한탄 문자를 수십 개씩 보내신다.
"정말 너희들하고 다시는 안 보고 싶어. 제발 나가줘. 부탁이다."
엄마는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형은 엄마 집에서 자고 내려 가려고 짐이 많았다.
둘 다 각자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나마 아까 내가 계산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 정도만 스쳤고 형제는 묵묵부답 속에 빠르게 헤어졌다.
어제 나는 한 명과만 화해 했다.
형과 저녁을 먹다가
"아빠가 아까 미안해. 아빠가 아침부터 마음이 복잡하고 무거웠는데 아빠가 잘못한 거야. 우리 딸 사랑하고 이따가 보자. 사랑해."
"응 아빠. 할머니 안아 드리고 빨리 와. 코 자자"
방금 형한테 카톡이 왔다.
'어제 고생했다. 너도 나도 속상하니까 마음이 앞섰던 듯. 엄마한테는 한 번 정도는 어제 정도로 얘기하고 나오는 것도 괜찮지 싶네.'
'그래 형 그냥 내려간 생각하니까 마음이 안 좋더라. 엄마한테 아침에 가보려다 말았어. 싸울 것 같아서.'
'괜찮아. 마음 고맙다. 어쨌든 오늘은 아닌 듯. 수고~'
'응 형도 수고.'
엄마의 과거는 좀 어두웠고.
엄마의 현재는 좀 혼란스러운데.
엄마의 미래는 부디 머리곰 비취오시길.
갈현동에 가서 이제는 빌라 이웃들에게 드릴 과일을 내가 좀 사야겠다.
대화를 뒤돌아 보니 어제. 두 형제는 묵묵히 들어주기만 했어야 한다. 형제는 결국 공격만 했다.
엄마는 나의 1각형인데.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