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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지워지지 않는 길, 사라지지 않는 빛

by 강라마

태국 칸차나부리.

그곳에는 콰이강 위에 놓인 오래된 철교가 있다.

나는 아픈 역사를 품은 이 다리를 다시 찾았다.

다리 위를 직접 걸을 수 있는 철길.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그곳에, 문득 저 멀리서 하나의 점이 나타났다.

이내 기차의 희미한 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육중한 몸을 이끌고 철교 위로 기차가 천천히 다가왔다.

뜻밖의 만남이었지만, 그 불빛은 아픈 역사를 딛고 힘차게 나아가는 듯한 느낌을 주어 반가움마저 일었다.

이 다리는 단순한 철교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의해 건설된 '죽음의 철도'의 일부다.

연합군 전쟁포로들과 아시아 민간인 수십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고, 열악한 환경과 무자비한 노동으로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었다.

콰이강의 다리는 땀과 피, 죽음으로 이어진 궤도의 상징이 되었다.

여러 차례 폭격으로 파괴되기도 했지만, 전후 복원되어 지금도 이 철길 위로 기차가 지난다.

역사는 때때로 그렇게 복원된다.

고통의 흔적은 말끔히 지워지지 않지만, 현재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사진 명소'로 남기도 한다.

이 다리 위를 걷는 이들은 그날의 비명보다 셔터 소리에 더 익숙하다.

전쟁의 상흔을 배경 삼아 평화로운 풍경을 기록한다.

하지만 나는, 다가오는 기차의 불빛에서 과거를 딛고 나아가려는 의지를 읽었다.

이 다리는 단지 과거의 아픔을 기념하는 자리가 아니다.

그것은 아픔을 실어 나르며 오늘로 향하는 기억의 선로다.

그리고 그 선로 위를 걷는 우리의 발걸음은, 잊지 않으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새겨 넣는 행위일 것이다.

콰이강의 다리는 그렇게, 흐르지 않는 듯 흐르는 시간을 묵묵히 건너고 있었다.

P5988932.JPG <마중> 2025.07 | Thailand_Kanchanaburi | Copyright © llama.foto(JeongH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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