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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린 Mar 10. 2024

5년 차 직장인, 프리랜서가 되기로 결심하다

합격 통보를 시원하게 걷어 찬 이유

작년 봄, 만 5년 경력을 채우고 퇴사를 했다. 원래 프리랜서가 될 생각은 없었다. 2년 차 때, 직장 선배와 동반 퇴사하고 프리랜서에 도전했다가 돈벌이가 안 돼서 1년 만에 다시 취직을 했었기 때문에, 프리랜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회사를 다니던 중 환승 이직을 위해 다른 회사의 면접을 봤었고, 3차 임원 면접 합격 후 연봉 협상도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죄송합니다. 입사 진행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소중한 인터뷰 기회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나는 합격 통보를 시원하게 걷어찼다(!)

아니 이럴 거면 고생, 고생해서 면접은 왜 본 거야? 뭐, 물론 아쉬운 게 없는 자리는 아니었다. 일단 집에서 거리가 멀고, 연봉이 오르긴 해도 퍽 마음에 드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또 업계 동료들에게 회사 내부 분위기를 들어보니, 지금 있는 곳과 별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명백한 대감집이고 그 이름값 때문에 베스트 커리어로 선망하던 곳이었기에 고민이 깊었으나, 결국 가지 않기로 했다. 난생처음 써보는 입사 거절 메일에 손이 덜덜 떨렸다.


당시의 거절 메일...! ⓒ마린 Marin



'... 에라 모르겠다!'

이 메일 하나가 내 커리어의 미래를 담판 짓는 것 같아 눈앞이 아찔했지만... 결국 전송 버튼을 눌렀고 게임은 끝났다. 어찌 보면 무모하다 싶은 결정이지만, 이런 결기 어린 선택을 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가위바위보도 삼세판, 참을 인도 세 번이면 살인을 면한다고 그간 작은 회사, 큰 회사, 중견 회사를 모두 섭렵하며 어떻게든 나를 직장에 끼워 맞춰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과는 실패, 실패, 또 실패였기 때문이다.


퇴사 후 만난 석촌호수의 풍경 ⓒ마린 Marin


모두가 그렇겠지만 나 또한 회사 생활을 하며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몸과 마음이 상할 일이 많았고, 결국 내가 내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이르렀었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나 지금 너무 못났다, 너무 별로다'라는 생각이 마음 한 켠을 돌덩이처럼 눌러앉혔다. 또 어느 회사를 가든, 10년 차 팀장님, 과장님들의 모습이 그다지 행복해보이지 않았는데 그게 내 미래라는 생각을 하면... 더 이상 회사에 내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STOP. 잠시 멈춰야 할 때였다.


"그래, 일단... 쉬자."

그런데 나도 참... 대책 없긴 했다. 모아둔 돈도 얼마 없으면서 퇴직금이 들어왔으니 일단 비행기 티켓부터 질렀다. 또 마침 때는 꽃 피는 봄. 따뜻하고 포근한 날씨를 핑계 삼아 일본 오사카로, 전남 보성으로, 날아다니고 굴러다니며 스트레스의 묵은 때를 씻었다.


퇴사 후 돌아다닌 기록들 ⓒ마린 Marin


그렇게 3, 4개월 정도 지났을까? 어디선가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간 다 죽어~~!~!" 소리의 진원지는 통장 잔고. 몇 년을 소중히 모아둔 곶감을 하루아침에 다 뺏겨버린 통장이 비어버린 곳간 바닥을 땅땅 내리치며 제발 정신 차리라고 절규를 했고 나는 또 취직의 유혹에 빠졌다. '다른 업계로 이직을 해볼까?', '스타트업을 가볼까?'. 프리랜서도 1년 잠깐 해본 게 전부, 사회생활을 오롯이 회사에서만 배웠으니 다르게 돈 버는 법을 알 턱이 있나. 일단 국민취업지원제도를 신청해 유예시간을 벌며 별 수 없이 취직 자리를 찾아보는데, 전전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직장 선배에게 반가운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얼굴 좀 볼까요? 할 얘기도 있고."

같은 회사에 다닐 때 조금 과장을 덧붙여 '롤모델'처럼 생각했던 선배였다. 2년 만에 만난 선배는 '차장님'에서 어느새 1인 기업의 '대표님'이 되어 있었고, 내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프리랜서 마케터 해볼 생각 없어요?
마린 씨가 온라인 마케팅 쪽을
맡아줬으면 좋겠는데...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보니 출근 없이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형태인 데다가, 하는 업무도 이전까지 회사에서 늘 해왔던 일과 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같은 일을 회사가 아닌 내 집, 내 방에서 한다는 것뿐. 게다가 수입도 이전에 프리랜서를 할 때보다 훨씬 나았다. 그때는 단순 외주 제작 업무여서 기본 단가가 낮았지만, 지금은 마케팅 전략 & 운영 대행까지 커버가 가능해서 그에 맞게 비용이 자연스럽게 상승한 것이다.


'신이시여, 저를 버리지 않으셨군요...!'

좋은 기회였고 덥석 잡아야 할 찬스였지만,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회사 이름을 등에 업고 일해왔던 지라, 브랜딩 파워가 0인 회사의 마케팅을 내가 잘 쌓아 올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내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자 선배는 말했다.



"괜찮아요. 나도 대표가 처음이에요.
마린 씨도 이제 프리랜서니까 대표나 다름없잖아요?
우리 같이 도우면서 성장해 봐요."


귀인이란, 이런 사람을 두고 쓰는 말이 아닐는지. 너무나도 감사한 선배의 응원에 힘입어 제안을 수락했고,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우린 여전히 든든한 러닝 메이트로 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며 따로, 또 같이 성장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거래처를 하나 뚫어서, 프리랜서 수입으로 이전 회사의 월급을 넘어서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앞으로를 쉬이 장담할 수 없는 게 프리랜서 밥벌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장에 다닐 때보다 훨씬 만족스럽고, 여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만족한다.


내 방이자 작업실 ⓒ마린 Marin


만약 그때 이직을 했더라면, 퇴사를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이직한 회사에 잘 적응해서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의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내 커리어를 드라이빙하고 있다는 느낌, 내 인생의 운전대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잡고 있다는 이 감각을 되찾았다는 것만으로도 지금 프리랜서로 성장하는 시간이 앞으로의 기나긴 인생길에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과 삶의 형태를 유지하고 싶기 때문에, 프리랜서로 독립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차근차근 이곳에 연재해보려고 한다. 직접 경험해 본 직장인과 프리랜서의 장단점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프리랜서에 대해 걱정하는 부분들, 또 내가 프리랜서를 하며 불안을 느끼는 상황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 등 프리랜서 마케터 삶의 명과 암을 모두 기록할 것이다.


이 글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에겐 작은 지지와 응원이, 이 삶이 궁금한 사람에겐 작은 힌트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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