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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Apr 15. 2024

만두

- 복을 부르는 보자기

김장을 마치고 나면 김치 네 포기를 베란다에 내어놓고 사오일 동안 푹 익기를 기다리곤 했다. 작년 담근 김치가 남아 있지도 않지만, 묵은지보다는 그 해 담근 김장김치를 감칠 맛나게 익힌 후 만두를 빚어 먹을 생각에 남편과 아이들은 들뜨곤 했다.


만두빚는 일은 연례행사처럼 김장을 마친 후와 정월대보름이 막 지나고 김장김치가 '쨍'하고 맛있는 2월 즈음 빚어 먹는 것으로 우리 집의 즐거운 행사였다.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5대 5로 넣고, 김치는 흐르는 물에 양념을 털어내고 씻은 후에 물에 반나절 담가두었다가 광목천에 꼭 짜내어 속을 만든다. 두부와 숙주 그리고 불려둔 당면을, 빚다가 삐져나오지 않도록 손가락 한 마디 길이로 잘게 잘게 다져둔다. 유부보자기 마냥 우리집 만두에는 당면을 많이 넣어 잡채같기도 하고 그 질감을 좋아라 하니 많이 넣게 된다. 건강에 좋다는 마늘도 아이들 볼새라 다져서 많이 넣고, 참기름을 듬뿍넣어 고소함을 배가한다. 5킬로그램에 육박하는 만두 속을 만들어두고 저걸 언제 다 빚지 하면서도 입꼬리는 이미 귀에 걸려있다.


무선포트에 물을 끓여 밀가루에 조금씩 부어본다. 만두피는 굳이 익반죽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들었지만, '송편은 꼭 익반죽이어야 해요' 했던 EBS의 요리방송을 보고는 송편의 그 쫄깃함이 만두피에도 똑같을거야 하는 마음으로 항상 물을 끓여서 반죽을 시작하였다. 요즘은 포도씨유가 유행이지만, 스물 몇해 전에는 식용유를 세 네방울 반죽에 떨어뜨려 반죽을 더 부드럽게 하곤 했다.


제빵재료를 파는 곳에서 하얗게 생긴 밀대를 세 네개를 사서 아이들 손에 주고 만두피를 밀게 했지만, 시집올 때 엄마가 준 기다랗고 투박한 도깨비방망이로 반죽을 넓게 넓게 밀어내면, 주전자 뚜껑, 스텐 밥공기 뚜껑으로 아이들은 도장을 찍어내고 만두피를 만들고는 했다. 서너 해가 지나고는 그마저도 이제는 숙련이 되어서 반죽을 길게 길게 막대모양으로 만들고는 듬성듬성 썰어서 밀대로 두 번 밀면 동그란 만두피가 만들어지곤 했다.


커다란 전골냄비에 물을 가득 붓고 디포리 멸치 세 네마리를 넣고 끓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끓이다가 식용유 두 방울을 떨어뜨린다. 작은 아들 엉덩이 모양으로 야무지게 빚어낸 만두 스무알을 냄비에 넣는다. 쪄내어 먹어보기도 하고, 빚은 만두를 바로 냉동실에 넣어도 보았지만, 뜨거운 물에 바로 삶아내어 밀가루가 여기저기 묻어 있는 거실바닥에 둘러앉아 간장에 찍어먹는 그 만두를 우리식구들은 사랑한다.


다른 집에서는 엄두도 안날 일이지만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만두 이 백여개를 빚어내고는 지퍼백에 열 개씩 소분하여 담는다고 하여도 결국 그 날 저녁 냉동실에 들어가는 만두는 여섯봉지를 넘지 않는다. 빚으면서 내내 어서 만두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며 , 큰 접시에 담아내어도 순식간에 먹어치우는 아이들과 남편의 먹방은 복을 부르는 일이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를 들어간  그 해부터 다섯 해의 겨울은 만두를 빚지 않았다. 비싼 과학학원 원비를 대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고 나는 새벽부터 저녁식사 시간을 지나 집에 돌아오곤 했다. 금요일 밤이면 아이들은 치킨을 먹거나, 냉장고를 열고 무엇이 있는지 뒤져보곤 했다.


'타임세일입니다. 서두르세요'  등 뒤에서 씩씩한 마트직원의 소리가 들린다. 어느 순간마트 냉동코너를 돌면서 피가 얇다는 고기만두, 왕만두, 새우와 홍게살을 넣었다며 자랑스레 가격이 더 비쌈을 강조한 스티커가 눈에 띄어 만두봉지를 카트에 넣어보곤 한다. 한 숟가락에 한 알 올라가는 알알이 물만두도 한 봉지 담아본다.

그 맛이 그 맛이다. 분명 김치만두이고, 부추만두이고, 고기만두인데 옅게 지나가는 밀가루냄새와 혀 끝에서의 느낌은 '나 만두여요' 하지만 우리 식구들은 이내 한 봉지를 한 번에 다 털어서 먹고는 한동안 냉동실에 있는 만두를 꺼내지 않는다. 그 만두봉지는 이후로 한달여 그대로 있다.


불현듯 만두빚기가 생각이 난다. 모레가 설날이다. 지금 김치를 씻어 만두소를 준비하면 모레 새해 아침 떡국에 만두 두 알씩 띄울 수 있을까.

올해 식구들의 건강과 만복을 가득 담아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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