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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Apr 08. 2024

카스테라

- 가난한 엄마의 사랑 

홍제역 2번 출구 며칠 전까지 보이던 반찬가게가 문을 닫더니 대만왕카스테라 가게가 오픈시식을 해보라며 시끌 벅적하다. 과거로부터 걸려온 무전신호로 시작한 '시그널' 드라마가  흥미진진하던 그 해,

전국은 대만왕카스테라 지점이 몇 백미터를 사이에 두고도 생긴다 할 만큼 난리도 아니었다.


카펫은 아니나 러그 크기의 저 큰 카스테라를 오픈주방보다 더 가까이 도로 앞에 내어두고 그 보드라움만을 뽐내 듯, 아저씨의 표정은 자신만만하다.

카스테라 표면이 부들부들, 한 입 먹어보면 그 푹신함이 고3 여학생이 들고 다니는 빨간색 의자방석 같았다. 그런데 그 부드러움이 내게는 매력이 없다.


첫 입에 닿을 때 겉표면을 조금 더 익혀서 단단하게 해줘야 그 견고함을 느끼며, 카스테라 내면의 부드러움에 감사하게 될 터인데 시종일관 부드러운 식감만을 자랑한다.


엄마의 카스테라는 이렇지 않았다. 어느 날은 조금 더 바짝 익혀서 탄 듯도 하였으나, 탄 것이 아니라 캐러멜화 되어 짙은 책상의 색깔을 띄곤 했으며, 표면의 두께는 살짝 두꺼워질 듯 하다가, 이내 개나리 노란 빛깔처럼 속은 노란 보드라움이 반겨주었다.


골목에 작은 철문 한 짝이 열리면 바로 부엌이 보이고, 주저앉아 쌀을 씻던 아줌마들이 골목에 나와 외판원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기프라이팬 '파티쿠커' 로 카스테라를 만들어서 애들 군것질을 하게 하세요. 2시에 여기 순영이 아줌마 집에서 만들어 보일 테니 맛을 봐보세요. "


엄마는 월부로 프라이팬을 구입한다. 아빠한테 프라이팬을 샀다고 타박을 들을까봐 다락에 숨겨두고 우리에겐 입단속을 시켰다. 등교 이부제로 오전반일 때마다 그 주에는 카스테라를 만들어주곤 하셨다. 12시 땡 종소리가 크게 울리면 나는 뛰다시피 집으로 달려왔다.


다른 집은 제사 때 전 부치는 용도로 바뀌었지만, 엄마는 달걀과 설탕, 소다, 밀가루를 부엌 찬장 앞에서 열씸히 젓고 저어서 프라이팬에 조심스레 부었다. 우유도 비쌌던 터라 대신 전지분유를 밀가루 못지 않게 많이 넣어 만들었고, 반죽을 할 때마다 나는 그 전지분유를 입에 넣어 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지금처럼 바닐라 같은 향신료가 없었기에 설탕과 달걀노른자가 어울려 익어가는 냄새는 달콤하고 살짝 비릿했다.


지름이 두 뼘이 채 되지 않는 전기프라이팬으로 만든 카스테라가 다 익으면 엄마는 다락문을 열고 두 세 계단을 올라가야 손이 닿는 곳에 올려두고 식혀두었다. 그리고 지금의 피자를 8등분 하듯 8조각을 내어두곤 하였다.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다짐을 받곤 했다.

"엄마가 줄 때만 먹는거다."

"이번 주 내내 먹는 거다."

어쩌다 다락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가서 망설이다, 카스테라 귀퉁이를 손톱크기만큼 떼어 먹고 아닌 척 능청을 떨기도 하였다.


엄마가 프라이팬 월부값을 다 갚을 때까지 우리는 아빠 몰래  '세 모녀 카스테라 공조'의 완벽한 팀이었다.
그 후에도 엄마의 허락이 있어야만 카스테라를 먹기 위해 다락에 올라설 수 있었다.


비밀의 맛, 카스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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