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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Apr 01. 2024

꽃산병

-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기도하는 자식바라기 

방앗간에 돌로라나, 대형제분기가 있던 떡집들이 사라진 지 오래다. 한 팔 길이만큼 숭덩숭덩 나오던 가래떡을 잘라내던 풍경을 보는 것도 매우 드문 일이다. 재래시장에도 한 집이나 남아 있으면 다행일 것이다. 프랜차이즈 이름이 달린 떡집들은 포장에 더 신경을 쓴 것 같고, 가게 안에는 이미 다 만들어진 떡만 진열할 뿐이다. 시간에 맞춰 하루 두 번 나오는 떡.


단골떡집은 홍은시장 두 골목을 지나 구석진 골목에 있다. 백그램씩 소분해서 비닐로 감싸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매번 어려우면서도 말을 하게 되는 건 성실한 아들사장님 덕분이다.


까칠한 손님의 까다로운 주문사항으로 멥쌀로 만든 절편 이전의 쌀덩어리를 사장님의 어머님은 투덜거리면서도 매번 도와주신다. "지역아동센터에 재능기부한다는데, 해줘야지, 이왕 팔아도 나도 좋은 일 하는 것 같잖아요" 


치자가루를 섞어서 노란 반죽, 비트가루를 섞은 핑크 반죽, 쑥가루를 섞어서 더 쫀득한 진초록 반죽을 각각 백그램씩 소분한다. 백그램의 한덩이를 25그램 정도씩 4등분하여 한 개의 떡을 만든다. 


추석을 기다리는 9월 2주경, 아들 둘과 조카 그리고 아들 친구들까지 집으로 불러모아 이 떡놀이를 즐기곤 했다. 일로서는 학교도 가고, 센터도 가고 했지만 집에서는 번거로운 일이라 연중행사로 부른다.

반죽이 손에 들러붙어 끈적임이 심하지 않고, 기온이 낮아 반죽을 아이들이 주무르기에 빨리 굳지 않는 시기에 떡을 만들어야 그 즐거움이 배가가 되고, 거기에 한복까지 입고 하면 안성맞춤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격자무늬, 청렴하기를 바라는 국화무늬, 매화는 군자의 마음. 그 중에 격자무늬가 외부의 나쁜 공기를 막아 병에 걸리지 않도록 하는 뜻이 담겨, 그 뜻을 창호살에 사용함을 알고 '참, 지혜롭다. 감탄!! 격자무늬 떡도장이 가장 분명한 자욱을 남긴다. 선들이 정확히 찍혀 나오므로 아이들도 가장 좋아한다. 


동생이 모래알을 파먹던 네 살부터 나는 내 동생에 대한 확실한 사랑이 있었다. 그냥 좋은 사람.
그 동생이 8년만에 귀하게 늦게 낳은 조카는 내 엄지발가락을 닮았다. 그녀가 매번 신나한 떡만들기는 "꽃산병" , 귀하게 만났으니, 그녀를 위한 기도로 나는 떡 위에 꽃을 얹었다. 무탈하고 건강하도록.



떡 위에 꽃을 얹고, 

동그란 떡모양이 수레바퀴처럼 술술 잘 풀려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충청도의 떡.
꽃산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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