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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Apr 01. 2024

붓을 씻다

- 기본이 중요하다.

"붓을 제대로 깨끗이 씻어야 해"


홍선생은 물통에 붓을 담그고 살살 휘젓는다. 두 명의 아이들은 노란 물통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붓끝을 보았다가 홍선생의 콧망울을 번갈아 본다. 지연이가 칠한 부분을 보니 노란색 뒤로 파란색이 그림자처럼 배어 나온다. "자, 제대로 씻어내지 않으면 이전에 묻힌 물감의 색이 이렇게 배어 나오지, 색깔이 단색이 아니라 혼합색도 아니고 어정쩡해져요.

칠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고, 기초를 제대로 해야 해, 붓을 제대로 씻어야 원하는 색이 나오는 거야" 다시 한번 물통에 붓을 담가 색을 씻어낸다. "물감도 빠레트에서 비비고 색을 확인하지 않은 채 짠 그대로 바로 도화지에 대면, 어때? 물감 덩어리만 지고 이뿌지 않지! 그림이 되지 않는단다. 


상담실 바로 앞 교실, 홍선생님은 단아하고, 예술가의 아우라가 우아하게 나오는 사람이다.

그녀의 억양은 크지도 작지도 않다. 특히 칭찬을 할 때는 리듬을 타며 학생의 이름을 부른다. "누구야,, 너무 잘하는 데, 이렇게 터치한 부분이 좋았어, 선을 잘 다룬다" 구체적이면서도 아이들마다의 장점을 잘 말해준다.


붓을 잘 씻지 않으면 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말한 것처럼, 태도에 관한 기본기를 갖추는 방법을 말할 때는 단호하나, 단문을 사용하여 일곱여덟살 아이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한다. 사용한 미술도구들은 수업 마치기 오분전에 스스로 정리하도록 가르친다. 내용보다 때론 형식, 가장 중요하게 기본태도를 갖추게 한다.


그녀의 클래스는 개강하게 되면 세 네명이 첫 수업부터 잘 꾸려져서 일 년 이상 그 반이 재원유지가 된다.

그건 아마도 그녀의 충실한 수업준비와 사용하는 어휘들이 전문성이 담겨진 용어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 아이를 맡기게 되어 좋다"를 넘어선 수업 내용 뿐만 아니라 브리핑의 내용도 매우 충실한 이유에서 그녀의 반을 개설할 때는 어깨에 힘을 주어도 된다.


실력있고 더하여 아이들의 태도까지 가꾸어주는 선생님의 말이라면 학부모님들은 저절로 너그러워진다. 그 반 학부모님들을 보노라면 결국 "따뜻한 관심의 영향력은 참 크다"라는 생각이 든다.


재료를 탐색한다는 명분아래 물감을 진탕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번짐과 물의 양에 따라 퍼짐의 정도, 충실하게 씻어내는 붓질. 그 농도를 가늠하게 하는 것은 아이들에게 기다림과 적정함을 가르치는 일이다.


이번 수업은 화병 하나를 두고 여섯살, 일곱살 친구들이 콘테로 그려본 크로기 수업이었다.

콘테로 선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문질러 번지게 하면서 그려본다. 

굵게 선을 그리고 손가락으로 많이 문지르면 진하게 나오고
얇게 그려 살짝 문지르면 옅게 나오는

스스로 강약을 조절하며 그리는 그림


아이들은 붓을 씻는 것처럼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얼룩이 생기지 않도록 연습을 한다. 

내 작품, 내 그림을 위해서 기본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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