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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도설 Apr 15. 2024

재수생을 대하는 태도

- 재수생 대접, 피드백 

서울 교육특구의 한 재수학원 

강의실 가장 왼쪽 열 구석 끝자리. 

하얀색 필름지 책상 표면이 더 눈에 뜨인다. 에너지음료 캔 8개가 전시를 해둔 듯 일렬로 책장 앞에 세워져 있다. 왼쪽이 벽인 이 열에 앉은 나머지 네 명의 학생들이 끝자리인 이 책상을 유심히 보자고 하면 볼 수 있다. 여기저기 닦고 버린 휴지들이 책상 위에 널려 있고, 분명 머리카락은 아닌 것으로 보이는, 휴지 밑으로 신체 어느 부위로 짐작되는 체모가 수북이 나뒹굴고 있다. 


오정숙 실장은 핸드폰 무음으로 촬영하고, 전국에 모든 지점 원장 회의에 참석하느라 본사에 있을 이혜원 원장에게 전화를 건다. 

"원장님, 어떻게 해요. 우선 톡에서 말씀하신대로 사진 촬영은 해두었고요. 앞에 한 학생이 민원 포스트잇을 가져왔어요. 어떻게 해요? " 오 실장은 교재 보관실에 들어와 조용히 말한다.   

혜원도 카톡을 보고는 회의 중에 잠시 나왔다. "바로 보고해 줘서 고마워요" 
"현재 대치인데, 넘어가면 1시 될 거여요. 촬영했다면 장갑 끼고 치울 수 있어요? 못할 것 같으면 종이로 덮어두세요. 내가 가서 처리할 테니, CCTV 확인할 때 바지에 손을 넣었는지 체크하고 캡처본 나한테 보내요.
꼭 
오실장 혼자 확인하고, 나한테만 피드백 주면 됩니다." 


지금 어머님께 연락해서 다른 말은 하지 마시고, 제가 생활 상담으로 2시에 전화드린다고만 해주세요." 혜원은 단호한 어조로 급히 오 실장에게 말하고는 전화를 끊는다. 혜원은 김파트장에게만 상황보고를 하고는 오전 회의만 마치고 일어난다. 


3교시 자습 시작. 


상담실 안, 학생 A와 이혜원 원장 둘이서 마주 보고 있다.

 "A씨, 민원이 들어와서요. 그 민원 내용(트레이닝복 사이로 손을 넣어 체모를 꺼내어 책상에 둔 일)이 어떤 것일지 본인이 알고 있죠. " A는 반항에 찬 얼굴이다. 혜원은 학생의 턱을 보며 말한다. "음! 나한테는 A 씨도 우리 수험생이고 다른 120여 명의 학생도 모두 중요한데, 1명의 행동으로 120명이 괴롭거나 불쾌감을 느끼는 건 안 된다고 생각해요.


6월 모의평가를 앞두고 긴장되는 거 알고, 힘들거라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기는 집이 아닙니다. 그리고 학생 자신의 방은 더더군다나 아니어요. 다른 학생들이 모를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원장은 학생에게 말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 천천히 또박또박 말한다.


"지금 이 자리는 학원에서 A 씨에게 기회를 주기 위함입니다. 당분간 1인 자습실로 좌석 이동하고요. " A는 거부 의사를 밝힌다.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어요. 좌석 이동을 권하는 사유는 공공장소에서의 불쾌할 수 있는 일로 목격자인 다른 수험생의 민원이 들어왔는데, 학원의 입장에서 어떤 조치 과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타 학생들이 민원을 계속 넣을 것이고, 결국 일이 커지게 되면 A씨 신상이 공개될 수도 있어요. 수험생들 사이에서 A씨가 곤란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스무 살 처음으로 무소속 상태인 지금이요. 대학 입학을 원하는 데, 노력하는 과정 중에 있지만, 어찌 되었든 A 씨의 무소속 상태의 불안감을 우리는 조금 이해해요. 우리는 A씨 정보는 공개하지 않아요.


A씨에게도 기회를 주고, 타학생들에도 민원에 대한 피드백을 전달해야 학원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겠죠. 민원을 제기한 학생에게만 사건에 대한 해결 과정을 설명할 뿐 서로 보호를 받도록, 이슈화되지 않도록 배려하려는 겁니다." 이혜원 원장은 말 한 마디, 한 마디 천천히 조심스레 말한다. 


A는 조금 누그러진 낯빛이다. 혜원은 A에게 수험생들 모두에게 되도록 똑같이 관심 가져주고 있음을 명확히 전달한다. 스트레스로 한 번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이후 재발생되는 순간 '아웃' 입니다. 오늘은 퇴실서약서(각서) 써두어야 합니다. 이 서약서를 사용하지 않고, 내가 CCTV를 또 확인하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그때는 내가 구제할 수 없어요.

우리는 A씨랑 수능 날까지 같이 마치고 싶어요. " 

재차 다짐을 받으며 서약서에 사인하도록 볼펜을 건넨다.


오정숙 실장은 혜원이 좋아하는 뜨거운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상담실로 들어온다. 혜원은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켜고, 심호흡을 크게 한다. 


"오실장, 절대 직원들 사이에서 '체모라더라' 말 돌지 않게 조심시키고, 타학생들에게 전달되니까 그리고 학생들에게 꼭 00씨라고 부르도록 재교육하고 최대한 존댓말 사용을 유지하도록 교육하세요. 오실장은 오늘 사건 관련 리포팅해서 CS매뉴얼 추가 작성, 금욜까지 제출하고 월욜 회의 시에 사례연구에 참고하세요." 이원장은 오실장에게 "순발력있게 바로 연락해 줘서 타이밍 놓치지 않았어요, 수고했어요!!"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운다. 오실장은 조금 전 이혜원 원장의 말을 따라 해본다.


"무늬는 어른으로 대접하고, 알맹이는 중2 대하듯 하라고. "


혜원은 일어나서 다시 심호흡을 한다.
오실장은
 "괜찮으세요?" "이렇게 단칼에 서약서까지 써야 하는지... A한테 각서까지 받은 거는...좀..심하지 않나요" 원장의 반응을 살피려고 한다. 

이원장은 오실장을 돌아보며 "열흘 집중관찰하고요" 오정숙 실장은 "네? 열흘이나요?"


혜원은 확신에 찼지만 안타까운 어투로 한마디 한다. 
"결국 학원을 나가게 될 거예요. 그 불안감이 쉽사리 사라지나요."
"내가 학부모들한테 하지 말라는 말이 하나 있는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재수 그깟 일 년이 대수냐고 괜찮다며 위로하는 그 허허로운 말, 어머님들은 하지 마시라고 하죠."

"무소속 상태로 공중에 붕 떠서 암울한 터널을 지나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애타겠어요."

"수험생 00씨 하면서 아침에 등원할 때 이름을 불러줘 봐요. 얼굴이 얼마나 환해지는지"


대한민국에서 무소속으로 살아간다는 건...

소속이 생애 처음 없는 재수생. 

막막함에 어쩔 줄 모르는 스무 살 00씨,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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