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리앤느 Jun 18. 2022

네 인생도 충분히 아름답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의 의미

프랑스에 온 뒤로 봄이면 깻잎을 심는다.


뭔가를 기르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지만, 우연찮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씨앗을 선물 받은 게 계기가 되어 시작한 소박한 취미 생활이었다.


씨앗을 심고 애타게 기다렸던 첫 해,

어렵사리 난 싹이 물만 주는 데도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게 어찌나 감동이 되던지, 해주는 게 없는 데도 이렇게 자라 주는 모습에 매일 깻잎에게 고맙다는 말로 하루를 시작하곤 했었다.


뭐 그렇게 자란 정든 깻잎은 결과적으론 우리 가족의 맛있고도 건강한 식재료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그 기억이 좋았던지, 올해도 커뮤니티에 올라온 깻잎 씨앗 나눈다는 글에 소심한 쪽지 한 통을 보냈고 정성 가득 담긴 나눔을 받았다.


뿌듯한 마음으로 흙을 사고, 화분에 솔솔솔 씨앗을 뿌렸다. 다 심자니 너무 많아서 반만 심기로 했는데도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 같다.


고민하다 에라 모르겠다, 하곤 화분에 흩어가며 여기저기 뿌려놓는다.


작년에 한 번 해 봤다고 조금 자신감이 생긴 걸까? 거침이 없다. 이게 맞나 가슴 두근두근 하며 인터넷 뒤지는 수고도 없이 그냥 투박스럽게 씨앗을 심고 하루 이틀 기다렸을까, 금세 싹을 틔우고 자라 가는 모습에 얼마나 기뻤던지.





그렇게 올해도,

우리 집 창틀에서는 깻잎이 자라고 있다.


자라는 깻잎을 향해

올해도 매일 고맙다고 말해주고 있다.


물만 주는데도 쑥쑥 자라 주는 그 모습이,

한 번 제대로 식물을 길러본 적도 없는 서툰 내 손길을 의지해서도 싱그럽게 자라는 그 모습이,

뿌리를 마음껏 내릴 수 있는 너른 땅도 아닌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서,

아무렇게나 뿌려놓은 씨앗으로부터 난 싹들이 서로 뒤엉켜 자랄 수밖에 없는 초라한 공간을 지지대 삼아 그렇게 자신의 줄기를 뻗어가는 그 모양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때론 줄기를 이리 비틀고 저리 비틀어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고 기어이 필요한 만큼의 빛을 얻어내는 그 모양이,


이번 생은 아닌가 보다 하고 일찌감치 포기하는 몇몇 줄기들 사이를 비집고 그래도 기어이 자신의 길을 가는 그 단단함이 매일 아침 나를 감동시킨다.


그렇게 깻잎은 올해도 싱그럽게 자라 간다.

크고 작은 감동을 내게 안겨주며,

내 마음 안에서 아름답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여름이 오면 하루 해가 너무 길어지는 프랑스, 밤 10시나 되어야 해가 지는 긴긴 하루를 보낸다.


게다가 서향인 우리 집 창틀은 밤 9시가 되면 화려하게 빛이 난다.  하루는 잠자리에 들려다가 지는 해가 너무 따가워서 혹여 깻잎이 상할까 얼른 달려가  바닥에 내려놓고 잠에 들었다.


눈을 뜨자마자 또 깻잎에게 달려갔다.

제자리를 찾아주고 싶은 마음에 눈도 뜨지 못하고 달려갔는데 아뿔싸 내 성급한 마음에 그만 싱그럽게 잘 자라던 한 줄기가 미처 다 걷지 못한 커튼에 가려 완전히 꺾이고 말았다.

에구 이걸 어쩌나... 눈물이 핑 돌았다.

잘 자라던 녀석을 내가 괜히...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뽑아버리지 않았다.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꺾인 모양 그대로 화분에 남겨두고 하루, 이틀을 보냈다.


"우와, 엄마 이것 좀 봐!"


그 깻잎이었다.

화분 맨 끄트머리에서 가장 곧게 줄기를 뻗고 있던 녀석이 꺾인 뒤 그 자리에서 다시 하늘을 향해 방향을 틀어 자라고 있었다.


꺾여졌던  줄기는 더욱 단단하게 회복되었고 옆에 있던 다른 녀석들보다 더 꼳꼳해졌다. 굴곡 진 줄기의 모양새가 여느 것처럼 평범하지는 않았지만, 내 눈엔 그게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랬다.

늘 내게 주어지지 못한 그 풍성함이 아쉬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는 그 풍성함이 그토록 아쉬웠다.


내게 주어진 척박한 땅이 아쉬웠고,

늘 부족하기만 했던, 목말랐던 그 무언가가 아쉬웠다.


그것이 있으면 더 아름답게 꽃 피울 수 있었을 거라는 미련은 늘 마음 한편 어딘가를 배회했다.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평온하고 순적한 환경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무수한 책들을 통해서 읽었고 많은 이들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던 이 보편적 진리를,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것을 깻잎에게서 배웠다.



깻잎은

그 짧은 생의 한가운데를 지나며 보여주었다.


좁은 플라스틱 화분, 얕은 흙,

서툰 손길과 때론 너무 센 바람,

부족한 물과 지나치게 따가운 햇살,


그 모든 어려움들 속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굳게 살아가는 그것,  

끝내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고,

자신을 길러내고,

마침내는 살아가야 할 목적,

더 아름다운 생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더 풍성한 아름다움일지도 모르겠다고 기어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나는 오늘도 깻잎에 물을 준다.

내 서툰 손길로 한쪽이 휘어진 채 그러나 다시 태양을 향해 자신을 이끌어 가는 깻잎을 오랫동안 지그시 바라본다. 나 같은 그 깻잎을 쓰다듬으며, 나는 다시 나에게 말해준다.


그러니, 네 인생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매거진의 이전글 돈 걱정은 걱정도 아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