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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Feb 10. 2021

새로운 취미를 텀블러에 담았다


‘하아구, 또 깜빡했네.’


150 데시벨 혼잣말에 깜짝 놀라 온몸이 욱신거렸다.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내적 한숨소리가  커질수록 식은땀이 피부 안쪽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평온한 표정 커피숍 계산대 앞에 서있지만,  마음속은 와글와글 소란스럽다. '텀블러가 없어......’



매일 아침 텀블러를 챙기기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었다. 무게 200g의 가벼운 취미활동이다. 단지 개인의 취미생활이기에 잘해도 못해도 상관없고, 그저 여유가 생길 때 조금 더 배우고 즐기면 된다. 만약 내가 환경운동을 거창한 도전으로 시작했다면 아마도 꽤 오래전에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다. 두 달 치 체험일기 정도는 남겼을까? 다이어리에는 신념, 소신, 실패와 포기라는 쑥스러운 단어들이 도미노처럼 엉켜 쓰러져 있었을 테지.




텀블러와 친해지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첫 만남에 감흥이 없어서였을까. 체감상 10년 전쯤이다. 바깥세상은 나에게 지구 반대편 북극곰과 아마존 밀림이 울고 있다며 환경에 관심을 좀 가져보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1m 앞 내 그림자를 겨우 쫓아다니던 나이였고, 추운 여름을 상상해 볼 1초의 여유가 없었다. ‘우리들’에게는 더운 겨울을 떠올려 볼 상상력과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바깥세상이 눈치챈 걸까. 미디어는 섭씨, 화씨 이야기를 멈추더니만 일단 텀블러를 하나씩 사보라고 했다.



텀블러 하나에 소나무 160 그루를 심는 효과, 꼬박 2년을 쓰면 온실가스가 33배 줄어드는 효과라...... 여전히   사람이 만들 ‘미약한 효과 가늠하기가 애매했고,  물통을 돈 주고 살지 말지부터 고민이 되었다. ‘나 혼자 사는 세상도 아닌데 평생 플라스틱을 안 쓰고 사는 게 가능하려나.’ '하루 종일 집에만 있었는데 일회용품 쓰레기가 왜 이리 많이 나오지.' ‘텀블러 하나로 세상이 바뀌겠어?' 계속 이어지는 물음표 굴절에 초점이 사라졌다. 일단은 바깥세상이 시키는 대로 물통을 하나 사게 되었다.



습관으로 만들려 하니 시작이 버거웠다. 검은 물통을 들고 다니는 것 자체가 귀찮았다. 관리 또한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정석대로라면 베이킹 소다나 식초를 넣고 10분 이상 담갔다가 중성세제로 헹궈야 한다고 한다. 식기세척기, 락스와 수세미 사용은 피해야 하고, 스테인리스라서 탄화규소를 잘 닦아 써야 한다. 은근히 신경 쓸 게 많다. 한편 나는 텀블러를 플라스틱 물통보다 더 정 없이 대했다. 주인을 잘 못 만난 가여운 내 물통은 온종일 찌든 커피를 머금고 구석에서 뒹굴고는 했다.




습관을 포기하니 집착이 사라졌다. 대신 취미생활처럼 그저 내 마음대로 기분 내킬 때만 텀블러를 들고 다녀보기로 했다. 중요한 모임이 있는 날, 혹시라도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기억될까 싶어서 일부러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 산책을 나간 날, 텀블러에 따뜻한 볕과 얼음을 담아 잘 섞이게끔 열심히 흔들며 걸었다. 물통을 챙겨서 나가는 빈도가 점점 늘고, 물건을 ‘사용하는 게’ 즐거워질 때쯤, 새로운 취미생활을 즐기는 나 자신과 마주치게 되었다. 카페에 불쑥 들어가 MD 상품을 구경하고, 여기저기 검색창에 텀블러 세 글자를 적어보고, 그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에게 가지게 된 관심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누군가의 텀블러를 볼 때마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옮겨 그 사람의 마음을 힐끗 본다. 작은 물통 하나는 한 사람에 대해서 꽤나 진지한 이야기를 해준다. 텀블러의 모양이 다 비슷비슷한 만큼 주인들의 심상, 마음 생김새도 서로 닮아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연과 환경을 지켜주고 있는 사람들. 말갛고 깨끗한 향의 환경 감수성을 폴폴 풍기는 사람들. 저마다의 이유로 환경운동을 시작했을 테고 각자의 속도로 무게를 더해가겠지. 그중에는 나처럼 200g 텀블러 정도의 가벼운 마음으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는 사람도 많을 듯싶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취미 목록' 보통 운동, 영화감상, 여행, 독서와 같은 익숙한 활동들로 채워져 있다. 이 목록에 환경운동이 들어갈 날이 곧 오지 않을까 싶어서 브런치 글을 쓰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족, 작은 성취감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환경운동을 즐기게 된다면? 심심할 때마다 유튜브에 친환경 세 글자를 검색해보고, 이틀만 고기 없이 배를 채워보고, 자연을 입고 바르며 정체성을 한껏 꾸며보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이 누리게 된다면? 


주의사항은 딱 한 가지다. 어디까지나 사적인 취미생활 이기에 자기만족을 가장 중시해야 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좋겠다. 세상 모든 이가 나와 똑같은 취미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다. 나는 환경운동을 즐기고, 당신은 영화와 맛집 탐방을 좋아하고.



환경운동은 홀로 조용히 즐길수록 자존감과 성취감이 커지는 나만의 소중한 취미생활이다. 그간 혼자 보는 일기에 환경운동에 대한 앎, 삶, 함, 꿈을 기록해왔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 실수 아닌 실수를 했다. 브런치를 읽다가 무심코 나의 일상을 툭 쳤는데, 텀블러에 담겨있던 이야기가 확 쏟아져 버린 거다. 지금, 여기,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흥건하게 번져있고, 다시 주워 담으려니 감정이 복잡 미묘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나의 일기장을 이곳에 조금씩 옮겨 적어볼까 한다. 공적인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나의 취미와 취향: 환경운동] 시리즈 관련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별도로 정리 중입니다. 나중에 공유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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