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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Mar 09. 2021

코로나 세끼와 채愛식


“1년째 채-愛식을 하고 있어요. 취미로 생각하면 나름 할 만해요"


-’자를 길게 발음하며  꼬리를 살짝 끌어당겨본다. 어색해진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어졌을까. 1 넘게 고기 없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지만, 스스로 채식주의자라고 부르는  여전히 쑥스럽다. 눈썰미 있는 누군가 물어오면 그제야 나의 취미 생활을 가볍게 소개해본다.


분명 과거의 나는 채식 자체를 무겁고 어려운 숙제로만 여겼다. 기후변화 관련 책과 다큐접할 때마다 축산업에 대한 경각심을 크게 삼켰고, 감정을 소화시킬 틈도 없이 급하게 채식을 시작하곤 했다. 매번 특별한 이유도 없이 채식을 중단했던 멋쩍은 기억만 남아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주저했던 채식 라이프는 정작 아주 ‘엉뚱한 계기’로 쉽고 가볍게 시작되었다. 




코로나 19 탓에? 때문에? 아니 덕분에 채식을 시작할 수 있었다.

     

2020 2, 낯선 외래어  글자는 세상을 데우며 모두를 낯선 공간과 시간에 가두었다.  또한 먹고 자는 원초적 행동을 반복할 , 허기진 마음으로 의욕 결핍의 일상을 보냈다. 무표정으로 재택근무를 하면서 유일하게  꼬리가 움직이는 순간은 식사를 챙길 때뿐이었다. 잠옷을 입고 드라마 배우와 마주 앉아 먹는 세끼는 마냥 편했고, 유일하게  마음대로 통제 가능한 '감염되지 않은 일과' 되었다.  더구나 하루 세끼 식단을 100% 자의로 선택할  있게  상황은 ‘자유 자체였다. 즐거운 감정은 항상 구미를 당긴다. 


'그래, 남 눈치 볼일도 없겠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채식이나 한번 해볼까?’


애초부무리하지 않았다. 육류를 제외한 모든 식재료를 마음껏 즐기고 있고, 든든한  끼를 챙기고 싶을 때는 해산물을 찾는다. 채식을  아는 사람들은 나를 페스코 베지테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아하고 세련된 단어가 꽤나 마음에 들지만,  입맛에는 맞지 않다. 나는 그저 하루   취미생활로서 탐구적인 식사를 계속 즐기고 있다.


 세계 온실가스의 20% 뿜어내고 있는 , 돼지와 닭을 나의 한 끼 식단에 낑겨 넣지 않아도, 비싼 비건 음식이나 대체육을 애써 찾아다니지 않아도, 건강하고 배부르게 세끼를  챙길  있다. 하루 세 번, 무의식 중에 환경을 생각하며 곱씹는 음식들은 나의 미각과 생각을 깨운다. '코로나 세끼' 물리지 않도록 매일같이 신선한 자극을 주고 있다.


코로나 전과 후를 비교하자면 내 몸과 정신은 훨씬 더 건강해졌다.




다시 회사에 나가 과거의 일상을 흉내 내기 시작한 무렵, 고기의 비극,  고비가 찾아왔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 메뉴를 고를 때마다 나의 뇌는 극심한 체기를 느꼈다. 분명 고기가 없는 식단 만드는  그렇게나 쉬웠는데, 고기가 있는 식단을 피하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나의 모든 끼니에는 타인의 배려심  덩어리가 추가되는 느낌이었고, 덩어리가 커질수록 속이 더부룩해졌다. ‘고기 먹으러 가도 되는데. 된장찌개랑 쌈도 있는데...’ ‘백반, 짬뽕, 파스타, 떡볶이  먹을  있는데. 고맙지만,  신경 쓰지 .’

     

심지어 고기를 삼킬 뻔한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회식 자리에서 누군가의 푸념을 씹고 있던 도중, 입안에서 같이 씹히고 있는 닭고기  점을 발견했다. 고기를 뱉어내는 순간,  나의 무의식이 무섭게 느껴졌다. 아무도 보지  했다 쳐도 그게 중요한  아니었다. 회식 내내 살코기로 채워진 생각 풍선을 머리에 달고 멍하니 앉아있었다.


채식이 힘든 이유는 타인의 시선이나 식탐 때문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어렵다. 스스로를 믿어주고, 의식을 계속 살피는  생각보다 어렵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채愛식을 하면서  자신과의 관계가 전보다  나아졌다.




생각 회로는 가끔씩 꼬일 때가 있지만, 다행히  몸은 채식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급격히 늙어가던 위장은 회춘을 해서 가볍게 꿀렁이기 시작했고, 피부와 손톱은 점점 자연의 결을 닮아가고 있다. 어제보다 오늘  건강해진 나의 몸은 “you are what you eat” 주문대로 바지런히 움직인다. 텀블러를  , 에코백을 걸친 어깨, 걷기를 선택한 다리, 깨끗한 심장은 자연의 연료를 태우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  


'채식을 하다 보니 내 몸 전체가 환경 감수성으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게 느껴져. I am what I eat.'


엄격한 비건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 그저 지금처럼 채소를 고기보다 좋아하며 愛식 유지하는 정도가  좋겠다. 틈틈이 채식 관련 책과 잡지, 맛집 검색 어플, 비건 쇼핑몰을 찾아내고, 환경을 사랑하는 비건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나만의 취미생활을 이어갈 생각이다. 다행인 건지 고기가 먹고 싶었던 적은 아직   번도 없다. 나는 내 취미생활에 대해 생각보다 굉장히 진심인  같다.


지난 14개월  보이지 않는 공포에 감염되어 마음속에 깊고 넓은 그늘이 생겼지만, 채식을 하면서 그 여느 때보다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다. 새로운 취미 생활로 인해 일상의 맛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다. 싱겁고 밍밍했던 내 인생에 독특한 풍미가 더해졌다.




* [내 취미와 취향은 환경운동] 주제별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정리 중입니다. 잘 준비해서 공유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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