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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Oct 30. 2022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창피해

“너 혹시...” 혹시라도 엄마의 차를 살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목돈이 급히 필요해 보이시는 부모님의 사정을 못 본체 지나칠 수 없다. 우선 속도를 줄이고 엄마의 걱정을 내 삶의 뒷자리에 태웠다.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차가 생긴 거다. 


‘나는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 AND 가솔린차를 끌어요.’ ‘나는 환경을 지키는 사람,  BUT 가솔린차를 끕니다.’ 이렇게 저렇게 접속사를 바꿔 끼우며 문장을 만들어보지만 논리가 없다. 긴 시간 채식을 하고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를 지향해봤자 뭐하나. 휘발유 차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금 창피하다. 


한편, 차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뚜벅이를 자처하는 주말의 일상이 조금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어디든 갈 곳이 정해진 순간, 재빨리 N사 지도 앱을 켜고 버스 아이콘부터 누른다. 


일 순위는 버스, 그다음이 지하철이라는 나름의 원칙도 있다. 예전에는 사람 많은 지하철을 이유 없이 더 좋아했는데, 이제는 나름의 명확한 이유와 근거를 대며 버스를 먼저 선택한다.  교통수단별 이산화탄소 배출 계수를 검색해본 적이 있는데, co2를 더 많이 내뿜는 순서로는 비행기, SUV차, 중형차, 고속철도, 고속버스 순으로 줄 세울 수 있다. 중형차는 0.20kg/명·km, 고속철도는 0.12kg/명·km, 고속버스는 0.07kg/명·km 순이다. 고체에 무게가 있다는 말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지만, 어쨌든 꽤나 차이가 나는 모양새다. 팩트를 알아버린 이상 모른 체하기가 힘들다. 


느낌상 2km 이내의 거리면 무조건 걸어보려고 한다. 일상에서는 익숙한 지름길을 따라 걷고, 조금 여유가 있을 때는 도로 표지판이나 랜드마크 건물을 힐끗 거리며 천천히 거닐곤 한다. 가끔 동네 탄천 길을 따라 지하철 두정거장 거리를 걷고 나면 스스로가 성능 좋고 경제적인 운송수단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km를 걷든 10km를 뛰든 거리와 시간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매연을 내뿜지 않았고 석탄이나 기름을 한 방울도 쓰지 않았으니 아무튼 자동차보다는 나은 거다. 


한편, 조금 더 먼 길을 가기 위해서는 어쨌든 전기 운송수단이 최선책이다. 언제 돈을 모아서 전기차를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가까운 거리는 최대한 많이 걷고, 먼 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대안을 찾아보고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밖을 나가야 할 때다. 오래전에 10대 환경운동가 툰베리의 책을 보다가 ‘비행기 타기 포기’라는 대목에서 황급히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스웨덴 소녀는 뉴욕에서 열리는 UN 기후행동 회의에 가기 위해 비행기를 포기하고, 2주 동안 태양광 요트로 대서양을 건넜다고 한다. 세계적인 오페라 가수인 그녀의 엄마는 더 이상 월드투어 공연을 못해서 끝내 직업을 포기했다는 사연도 담겨있었다. 툰베리의 책을 읽으며 나의 직장과 직업을 떠올리니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작아진 마음은 지금도 여전히 로터리를 빙빙 돌고 있다. 


이미 꽤 오랜 시간 4륜 차의 혜택을 누리며 살아온 문명인, 지각 예감에 택시를 잡아타는 평범한 직장인, 배 타고 해외출장을 가는 상상만으로도 피곤해지는 어른 사람, 나의 정체성과 새로운 취미 사이에는 대략 4km 거리의 길이 있다. 걷기엔 조금 멀고 차를 타기도 애매하다. 걸어갈까 아니면 먼 길을 돌아 버스 정류장에 갈까? 


고민이 거쳐 가는 경유지의 순서는 늘 똑같다. 일 순위 걷기, 버스, 지하철, 그다음이 나의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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