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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Oct 24. 2021

비건 뷰티 & 자기 합리화 비스트


환경운동을 취미로 시작하고 나서 타인의 시선보다 훨씬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눈빛이 있다. 바로 나의 본능과 생각을 따르는 자기 신뢰, 그다음이 양심이다. 겹겹이 포장된 물건을 집을 때, 불 끄는 걸 잊고 외출했을 때, 꽉 찬 쓰레기통을 비울 때마다 나는 꽤 자주 ‘생각과 행동이 다른 사람’이 된다. 가장 믿었던 내가 양심 없는 행동을 해 버린 거다. 


무엇을 시작하든 처음부터 가장 어렵게 느껴지는 영역이 있는데, 나에게는 그게 바로 화장대와 욕실의 변화다. 일상 속의 개인 공간이 내 삶의 변화에 따라 모습을 바꾼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두 곳에는 과거의 내가 그대로 남아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화장품과 소모품을 사고,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욕실의 빈 통을 채운다. 어느 날 갑자기 화장품 선물을 받기도 하고, 월급날에는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로 눈, 입술과 볼에 바른 색조 제품을 몇 개씩 산다. 정기적으로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내 품에 쌓이는 뷰티 제품들은 우리 집 다른 물건들과는 굉장히 데면데면한 사이다. 결이 다르다.   


채식과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로 바꾸면 뭐하나. 매일 아침과 저녁 루틴에 등장하는 화장품과 욕실용품은 거의 다 예전에 쓰던 것들이다. 친환경 대체품이 시중에 많이 나와있는데도 선뜻 바꾸지 못하고 있다. 중요한 건 몇 번이고 시도를 했지만, 내가 왜 친환경 뷰티 제품을 사지 않는지에 대해 변명할 거리만 늘어나고 있다. 아쉽게도 이미 자기 합리화가 끝난 단계다. 


비건 화장품 브랜드 이름에 대한 이어 말하기 대회를 한다면 준우승 정도는 할 자신이 있다. 오랫동안 에코 대체품을 찾아보았고, 상품평이 좋은 제품은 실제로 사서 써보기도 한다. 이런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나의 얇고 여린 민감성 피부는 조금만 성분이 안 맞아도 성을 낸다. 트러블이 올라오기 전에 얼른 화장품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큰 화를 입는 패턴이 이어졌다. 이런저런 이유로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굉장히 오랫동안 쓰고 있고, 열 통 이상 썼던 검증된 제품만이 화장대에 살아남아 있다. 



그간 피부 상태가 좋을 때마다 비건 크림과 토너, 마스크를 한두 번씩 써보긴 했지만, 한껏 예민해진 피부는 옐로카드를 들어 올리고 뾰루지를 한두 개 터트리며 경고했다. 샴푸바 도전의 결과는 훨씬 더 참담했다. 민감한 두피는 레드카드 색깔의 각질층을 만들어내더니 병원까지 가게 만들었다. 바디용품, 손세정제와 비누의 사정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원래 쓰던 제품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피부가 예전의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로 돌아왔다. 지난 10여 년간 대체품을 못 찾았는데, 아무리 선량한 비건 화장품이라고 할지언정 한 번에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일단 구매 상품평에는 별 다섯 개를 달고, ‘환경을 사랑하는 착한 제품이네요’라는 3인칭 혼잣말을 남긴다. 비건 뷰티 제품의 성분과 효능 그리고 가치에 대해서 진솔한 후기를 남기고 싶지만, 1인칭 경험이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소가죽 재킷을 입고 비닐봉지를 흔들며 당차게 길을 걷는 사람, 그리고 환경오염을 유발하는 화장품을 집에서 (몰래) 바르는 사람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 부인하고 싶지만 특별한 차이가 없다. 나 스스로 오랜 시간 시도와 실패에 익숙해지면서 자기 합리화에 빠져버린 게 아닌가 싶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나의 행동과 신념 간에 모순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한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지나쳐버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나마 심적인 여유가 있을 때는 양심, 자기 신뢰, 자기 합리화, 인지부조화 같은 심오한 단어들을 줄줄이 꺼내며 답이 없는 철학서 같은 결말을 내곤 한다. 이 또한 씁쓸하다. 자기합리화를 내려놓고, 계속 시도를 해 볼 생각이다. 


“취미생활을 즐길 때는 보통 시간과 돈이 걸림돌이 되곤 하죠. 가장 어려운 게 뭔가요?” 

“제 대답은요. 양심이요.” 




* [내 취미와 취향은 환경운동] 주제별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별도로 정리 중입니다. 잘 준비

해서 공유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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