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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Oct 05. 2022

비가 오길래 쓰레기를 모아 마구 내다 버렸다

60일 전 일이다. 모두에게서 잊힌 그날 저녁의 찰랑이는 기억 


어리둥절. 물벼락을 여기저기 쏘아대던 물번개가 수직으로 떨어져 정수리 가운데 꽂혔다. 어푸.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서인지 놀란 척하지만, 두 눈을 꼭 감고 머리를 빠르게 굴린다. 대충 다들 알고 있는 눈치다. 우리가 이렇게 다짜고짜 속수무책으로 물세례를 당한 이유는 뻔하다. 탓할 대상이 없다. 


기후 변화든, 기후 위기든, 기후 공포든, 그저 남의 일로만 생각했다. 미국의 사막이 1,000년 만에 홍수에 잠기고, 유럽이 500년 만에 불바다에 휩싸였다는 뉴스를 듣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고, 딱히 할 말을 생각해 내지 못했던 우리다. 


어쩌면 이건 너와 나의 일이 아니라고 암묵적으로 합의를 본 건지도 모르겠다. 

‘기후의 변화는 우리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어차피 나의 세대가 겪을 일은 아니다. 이 골칫거리는 나의 시간과 공간에 침투할 가능성이 낮다. 그러므로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해두자.’ 대충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2022년 8월,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우리의 ‘지금과 여기가’ 물에 잠겼다. 웅성웅성. 사람들의 표정이 시시때때로 변하고 갑자기 말도 많이 졌다. 



<2022. 8. 10.(수) 일기>


나는 조금 억울하지만, 다 같이 혼나는데 혼자만 빠질 수는 없다. 오늘의 대재앙 디데이로부터 마이너스 4년. 채식과 제로웨이트스트를 취미로 삼아왔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미활동이라고 생각했기에 남에게 강요를 하거나 추천을 한 적은 없다. 무언가를 더 했어야 하나? 아니면 무언가를 덜 했어야 하나?  


실시간 재난 뉴스를 틀어두고 천천히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옷장, 화장대, 부엌 찬장, 화장실 선반과 거실 서랍을 열어보며 애매한 물건을 다 꺼냈다. 


쓰지 않는 물건은 새 주인을 찾아줘야 하고, 다시 쓸 수 없는 물건은 최대한 작은 부피로 만들어 사라지게 만들어야 한다. 아직 사지 않은 물건까지 전부 다 버리는 게 중요하다. 오랜만에 쿠팡 장바구니 손잡이에 '0'이라는 낯선 숫자가 걸렸다. 


비는 바싹바싹 튀겨지다 못해 탄내를 내기 시작했고, 나는 조급한 마음으로 쓰레기를 더 모았다. 지금 당장 나의 소유욕을 다 내다 버리지 않으면 비는 영영 멈추지 않을 것만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분주해졌다. 박스와 분리수거통을 챙기고 있는데, 경비실 안내방송이 빗소리를 뚫고 잔잔하게 울렸다. 


"주민 여러분, 00시 쓰레기 매립장이 침수되었습니다. 쓰레기를 방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주민 여러분, 쓰레기를 방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00시 쓰레기 매립장이 침수되었습니다.”


타이머가 꺼졌다. 

늦게나마 뭐라도 해보려고 했는데 이미 늦어버린 거다. 






그날의 축축했던 기억은 마른행주처럼 빳빳하게 뒤틀려 말라있다. 

하마터면 박스에 넣어 같이 버릴 뻔했는데, 소중한 물건인 양 남겨져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해진다. 

혹시 그날의 기억만 버린 건 아닐까? 


내년 여름까지 300일 정도 남았다.

마지막 여름비가 내리는 오늘, 사람들의 버려진 기억을 건져 올려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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