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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무송 주 Oct 24. 2021

쓰레기를 단 0.1g도 만들지 않은 오늘 하루

   


‘김 모씨는 하루 종일 쓰레기를 단 1g도 만들지 않았답니다. 끝.’ 촘촘하고 완벽한 가상 시나리오를 머릿속에 그려두고, 현실감 있는 대사를 찾아내기 위해 24시간 셀프 챌린지에 도전했다. 장을 보지만 않는다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가벼운 하루, 이렇게 뻔한 결말을 내심 기대했는데 모든 게 이상하게 흘러갔다.  


나의 체험기가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은 이유는 한 가지 큰 허점 때문이었다. 애초에 쓰레기가 무엇인지 정의를 내리지 않고 도전을 시작한 거다. 이것도 쓰레기인가? 저것도 쓰레기일까?라는 질문을 휴지통에 계속 던지다가 하루를 일찍 끝내버렸다. 




머릿속 대본은 딱 첫 페이지까지만 쓸모가 있었다. 출근 직후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자리에 앉으며 텅 빈 쓰레기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메일을 열고 첨부된 문서를 출력하려던 순간, 오른손 검지가 차가워졌다. 종이는 쓰레기다. 종이도 쓰레기다. 우선 보고용 문서만 출력해서 다급하게 제출했다. 내 손을 떠난 건 나의 쓰레기가 아니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며 얼른 자리에 앉았다. ‘남을 위해 소비하고 건네준 물건도 결국엔 나의 쓰레기인 거 아닌가? 맞지...’  


당이 떨어지는데 포장된 과자를 먹을 수 없다? 이 정도는 예상했다. 다회용 실리콘 파우치에 담아온 고구마를 씹으며 책상 위에 놓인 초콜릿과 탄산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내일이면 금박 껍데기 그리고 폐병으로 남을 물건들이다. 일단 시야에서 없애야겠다는 생각에 과자들을 주섬주섬 챙겨 공용 냉장고에 넣어버렸다. 


오후에는 타 부서에서 전 직원에게 행사 기념 에코백을 나눠줬다. 가방을 열어보니 역시 각종 포장재로 싸인 기념품과 컬러풀한 행사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내일 아침에 꺼내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책상 맨 아래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어차피 곧 쓰고 버릴 거잖아. 결국에는 오늘 자로 만들어진 쓰레기인 거지...'


점심시간은 의외로 난이도가 쉬웠다. 나는 평소에도 습관적으로 반찬을 먹을 만큼만 담아오고 거의 남기지 않는다. 그날만큼은 휴지와 물티슈도 쓰지 않았다. 문제는 요플레였다. 잠시나마 엉뚱한 상상을 해보았다. 작은 플라스틱 수저를 쓰지 않고 요플레를 물처럼 마시는 거다. 귀여운 통은 깔끔하게 씻어서 요긴하게 쓰려면... 쓰려면... 쓰려면... 말줄임표 끝에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다. 우리 집 찬장에 모아둔 먼지 쌓인 공병들이 떠올랐다. ‘다시 쓰고 싶어도 실제로 쓸 일이 없다면 결국에는 다 쓰레기 아닌가? 맞지. 쓰레기지...’




퇴근길에는 장을 보러 일부러 마트에 들렀다. 챌린지 성공은 이미 관심 밖이었고, 그간 일상에서 당연시 흘러갔던 장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보고 싶었다. 입구 쪽 생활용품 코너에서는 담을 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식품코너에는 건질 게 있을까 싶었지만, 민망한 손으로 그물 백을 주섬주섬 다시 가방에 넣었다. 



모든 채소와 과일은 투명한 봉투나 포장재에 깔끔하게 담겨 있었다. 이미 플라스틱에 담긴 물건을 비닐봉지 대신 에코백에 넣어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유럽에서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채소 표면에 직접 바코드를 새기고, 동남아시아에서는 바나나 잎에 식품을 담아서 판다고 한다. 그날따라 운이 없었는지 친환경 포장재에 담긴 식재료를 찾지 못했다. 유일하게 포장지가 없던 바나나조차 예쁜 플라스틱 띠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다. 


집 근처 세탁소에 들러서 가을 외투를 찾아와야 했다. 당연히 세탁물보다는 비닐 커버와 플라스틱 옷걸이가 먼저 떠올랐고, 옷은 일단 포기했다. 저녁거리로 샌드위치나 죽을 사 오고 싶었지만, 이 또한 고민할 것도 없이 발길을 돌렸다. 오늘 하루 쓰레기를 0.1g도 만들지 않았다는 결론을 먼저 내고 집으로 향했다. 일부러 짧게 줄여버린 하루가 다급하게 끝나가고 있었다. 




일상에서 일시정지 버튼을 몇 차례 눌러보니 그간 나의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는 썩 훌륭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무의식 중에 정말 다양하고 많은 폐기물을 조용히 뿜어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일같이 1인당 1.09kg의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일회용 비닐봉지는 일 년에 410개 이상씩 쓴다고 한다. 내가 전체 평균치를 낮추고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2019년 CNN에서 발표한 ‘플라스틱 소비 세계 1위 국가, 넘버원 코리아’ 기사 속 주인공인지 객관적으로 나 자신을 평가해 본 시간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현관문 앞에 택배 상자가 두 개나 놓여있었다. 

박스를 그 자리에 놓아두고 서둘러 문을 닫았다. 




* [내 취미와 취향은 환경운동주제별 정보와 취미생활 팁을 별도로 정리 중입니다잘 준비해서 공유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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