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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조건 영주권 획득

영주권을 받기까지..

by 너나나나

내가 받은 파트너 워크비자는 1년짜리였지만 최대 2년까지 신청할 수 있는 비자였기 때문에 이 비자가 끝나면 다시 같은 파트너 비자로 1년 더 신청해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의 경우 이미 1년 비자를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1년 더 신청하면 신청비를 다시 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다가왔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뉴질랜드에 머무를 수 있는 방법은 크게 4가지였다.


첫째, 회사를 통해 워크비자를 받는다.

둘째, 학교나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해야만 하는 학생비자를 받는다.

셋째, 3개월 여행비자를 받는다.

넷째, 파트너 영주권을 신청한다.


이중에 여행이나 공부를 할 생각은 전혀 없었고 회사를 통해 받는 워크비자는 현재 회사 사정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였음으로 나에게는 마지막 방법인 파트너 영주권을 신청하는 것뿐이었다. 영주권 승인은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3개월까지도 소요되기 때문에 현재 가지고 있는 파트너 워크비자가 만료되기 6개월 전 부랴부랴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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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영주권자인 파트너를 통해 신청할 수 있는 '파트너 영주권'은 '파트너 워크비자' 신청과 거의 흡사했으나 하나 다른 점은 신청 당사자와 파트너 둘 다 6개월 이내 받은 범죄경력 증명서를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의 파트너 마이클은 2018년 뉴질랜드에 이민을 오면서 제출했던 남아공 시민으로서의 범죄경력 증명서뿐이었는데, 이민 후에 뉴질랜드 밖으로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파트너 워크비자 신청 시, 마이클의 범죄경력 증명서 개정본을 제출하지 않아도 괜찮았었다. 그러나 파트너 영주권의 경우는 그런 예외사항 없이 반드시 제출해야 했다. 불행히도 남아공은 해외에 거주하는 당국의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범죄경력 증명서 서비스가 상상이상으로 느리고 복잡하며 비싸기까지 했는데, 우리나라처럼 인터넷 발급으로 그 자리에서 받거나, 영사관이나 대사관에 신분증을 들고 가서 무료로 5일 후에 받는 그런 간편한 시스템이 아니었다. 일단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몇 개 없는 지문 포렌식 검사장에 가서 손가락 지문 열개 지장을 모두 찍고 그 문서를 따로 고용한 조력자를 통해 남아공으로 수일 혹은 수주가 걸려서 보낸다. 남아공 해당 기관이 확인 후 범죄경력 증명서를 다시 수일 혹은 수주에 걸려서 뉴질랜드에서 내가 고용했던 조력자에게 보내주면 그 사람이 마이클 집으로 우편 배송을 해준다. 운이 좋으면 최소 2주, 최대 8주까지도 소요될 수 있고 비용도 한화로 약 26만으로 빠르고 간편한 한국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나는 시스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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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워크비자를 준비하면서 제출했던 자료들과 그 이후 함께 더 살았던 날들에 대한 추가 자료를 첨부해서 영주권 비자를 신청했다. 워드 40페이지에 달하는 파일이 서너 개는 되고, 운이 좋게도 3주 만에 받은 마이클의 26만 원짜리 범죄경력 증명서와 이외에도 지인 추천서, 미래 계획서 등을 추가 제출했다. 사람들은 영주권과 같은 중요한 비자는 보통 변호사나 조력자를 붙여서 신청하지만 나는 파트너 워크비자를 받았던 자신감을 갖고 영주권도 나 스스로의 힘으로 신청했다. 현재 갖고 있는 파트너 워크비자 만료는 11월 말. 영주권신청은 4월 말에 들어갔으니 아무리 빨라도 10월 말부터 결과에 대한 소식이 들려올 예정이었다. 만약 이번에 신청한 영주권이 현재 갖고 있는 파트너 워크비자가 만료된 이후에도 승인되지 않는다면 나는 11월 말이 지난 후에는 뉴질랜드에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없게 된다. 물론 1년 더 파트너 워크비자를 신청할 수도 있지만 적게는 몇 주, 길게는 서너 달을 버티자고 얼마 전에 거의 두배로 인상된 파트너 워크비자 신청비를 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큰 지출이었기에, 간절히 두 손 모아 영주권이 11월 말 이전에 나오길 빌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9월, 이민성(뉴질랜드 비자를 관장하는 곳)은 내가 제출했던 여권 사진이 모서리까지 스캔이 되지 않았다면서 여권 사진 재첨부와 최근 3개월 동안 함께 살았다는 증빙서류를 추가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내게 보내왔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흘러 10월. 이제 점점 숨통을 조여 오는 시간게임이 시작됐다. 그렇게 피를 말리며 하루하루 지내던 나날 중 드디어 뉴질랜드 이민성으로부터 전화 인터뷰 날짜를 고지받았다. 인터뷰는 나와 마이클 각각 따로 진행되며 내가 혹여나 영어 질문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서 한국인 통역사까지 준비하겠다고 고지했다. 인터뷰는 뭘 물어볼지 몰라서 딱히 준비할 것은 없었지만 나와 파트너 각각 따로 진행한다는 것을 보니 우리가 서로 뭔가 다른 이야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함께 살면서 겪었던 일들 (이사, 이직, 여행 등) 그리고 서로의 과거 연애사를 포괄적으로 정리해서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 몰랐던 부분이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혹시나 있는지 꼼꼼히 되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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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중순, 드디어 인터뷰 날이 되었다. 4월에 서류 신청을 한 후 거의 6개월 만에 인터뷰까지 왔으니 생각보다 빨리 일처리가 돼서 솔직히 놀랐다. 인터뷰 당일 아침, 예정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전화가 오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10분 정도가 지나서 이민성 직원이 내게 이메일로 현재, 한국인 통역사와의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전화 인터뷰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고 했다. 내가 한국인 통역사가 사실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혹시 몰라 한국인 통역사가 필요하다면서 그 직원은 굳이 구태여 한국인 통역사와의 통화연결을 성공시켰다. 예정 인터뷰 시간보다 20분가량 늦어졌고 긴장감이 더 고조된 상태에서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질문 내용으로는


1. 본인의 가족성을 포함한 이름과 생년월일 확인

2. 파트너의 가족성과 중간이름을 포함한 전체 이름과 생년월일 확인 -> 외국인들은 중간이름이 있는데 마이클의 중간이름이 생각이 나서 매우 다행이었다.

3. 파트너의 국적과 언어가 달라서 거기서 오는 이질감이나 문화차이, 어려움등이 있는지

4. 파트너와 언쟁이나 불화가 있을 때에는 어떻게 해결하는 편인지

5. 파트너와 신청자는 서로가 받았던 비자 내역들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는지

6. 만약 영주권이 이번에 승인되지 않으면 추후의 계획이 무엇인지

7. 만약 영주권이 승인되지 않으면 파트너와 헤어질 수도 있는지


나중에 모든 인터뷰가 끝나고 마이클과 이야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둘 단에게 비슷하거나 같은 질문들을 물어봤고 다행히도 우리는 비교적 쉽게 모든 질문에 비슷한 대답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질문들을 미리 예상하고 준비할 수는 없지만 함께 2년 이상 살아온 커플이라면 이 정도 질문에는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민성은 생각하는 듯했다. 인터뷰 마지막에 질문이나 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해서 언제쯤 인터뷰 결과를 알 수 있냐고 물어봤다. 이민성 직원은 언제라고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터뷰가 영주권 승인을 위한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이상 짧게는 일주일 후에도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영주권은 그 사람 말대로 인터뷰가 있고 일주일 뒤에 승인됐다. 그리하여 현재 가지고 있던 파트너 워크비자 만료 이전에 영주권이 승인되어 비자에 관련한 모든 걱정이 한순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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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시작해, 회사에서 받은 워크비자, 파트너에게서 받은 파트너 워크비자를 거쳐 2024년, 조건 영주권까지 받았다. 조건이라는 말을 붙인 이유는 이 영주권으로 2년 동안 정해진 체류기간을 지키면서 뉴질랜드에서 살면 2년 후에 아무런 조건 없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영구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조건 영주권을 받은 후 2년 동안 뉴질랜드에서 조용히 살면 영구 영주권이 나온다는 이야기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쉽지는 않았다, 청소하는 일로 시작해 단돈 1불이라도 주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일을 했다. 언제 어떻게 이 나라에서 추방당할지 모른채 불안정한 생활을 하면서 묵묵히 일만 하며 살다가 제약회사에 들어갈 기회가 생겼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살다가 영주권까지 받게 됐다. 세계여행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내가 뉴질랜드에서 가서 이렇게 오랫동안 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냥 여행이 좋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만 했지 이렇게 아예 영주권을 받아버리는 시나리오는 내 인생에 애초에 없었다. 사람 인생은 한치앞길을 모른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나 보다. 앞으로 펼쳐질 뉴질랜드에서 나의 인생은 또 어디로 흘러갈 것인지 더 흥미진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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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마지막에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이민성 직원의 말에 우리 둘 다 공통적으로 말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가 최근에 약혼을 했고, 로토루아라는 도시에 우리 보금자리를 찾아 함께 이사를 할 계획이며 그곳에서 내 뱃속에서 자라고 있는 아기와 함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겠다고 한 것이다. 질문 내내 혹시나 영주권만 받고 헤어지거나 이 커플이 진실된 커플인지를 확인하려던 이민성 직원은 우리의 미래 계획을 듣고는 살짝 당황하는듯한 목소리로 축하한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의 당황한 목소리를 듣고 알았다, 영주권을 생각보다 더 빨리 받을 수 있겠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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