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로 들어오고 2020 코로나가 발발했다. 2022년 한국에 들어가서 쓸개 절개 수술을 받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온 후 2025년 드디어 한국땅을 다시 밟았다. 햇수로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비자에 쓴 돈만 해서 몇백만 원은 될 것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 파트너 워크비자, 회사 워크비자, 파트너 워크비자 총 4번의 비자로 5년을 연명하다가 마지막에 남편을 만나 드디어 영주권을 받았다. 그동안 돈만 쓴 것이 아니라 골머리도 함께 써 왔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워크비자가 불안정했기 때문에 언제든지 한국에 돌아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불안한 직장과 비자, 내 집 하나 없이 이 집 저 집 떠돌아다니며 이사만 7번을 했다. 5년 동안 불안정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그냥 다 잊어버리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때마다 나를 뉴질랜드에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던 원동력은 내 남자친구였다. 내가 당장 한국에 가버리면 이대로 헤어져야 하는데 내 인생을 걸만큼 소중했던 사람이었기에 그것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주권을 받았다. 파트너 영주권 신청을 하고 6개월이 걸렸다. 영주권을 받으면 가장 좋은 것은 비자문제로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것은 영주권 획득이 내 심신에 안정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는 항상 뉴질랜드에 이방인이었고 이 나라에 속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 나라의 복지를 조금이나마 받게 되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그전에는 의사를 보러 가는 것이 비용 문제 때문에 상당히 부담스러웠는데 이제는 그런 부담이 줄었고 임신을 하면서 국가에서 임산부에게 지원하는 혜택들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뉴질랜드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때에도 한번 나가서 못 들어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없이 자유롭게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현재는 거주 영주권이라서 뉴질랜드에서 거주해야 하는 정해진 기간이 있기 하나, 한 달 두 달 정도는 자유롭게 나갔다 올 수 있다.
영주권이 뭐라고, 이게 뭐라고 여태 그렇게 힘들게 살았나 싶다. 사실 영주권을 받으려고 뉴질랜드에 처음 왔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워킹홀리데이를 하면서 이 나라에서 사는 건 어떤지 경험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 살다 보니 우연한 기회로 워홀이 끝난 후에도 더 지낼 수 있게 되었고 그러한 우연이 또 다른 행운으로 이어져 간신히 숨을 연명하게 되었다. 1년이 2년이 되고 2년이 3년이 되면서 조금만 더 있다 보면 언젠가는 나도 영주권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과 함께 큰 욕심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뉴질랜드 속 터지는 의료체계나 차량치안 문제, 대중교통의 허술함 등 하루가 멀다 하고 나쁜 점만 꼬집어서 불평불만을 쏟아 내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권을 받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어느 나라건 좋은 점 나쁜 점이 분명히 존재하듯이 뉴질랜드도 분명 좋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신을 하고 보니 내 아이가 어릴 때에는 뉴질랜드에서 자랐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학교나 학원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그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영주권을 받았고 임신을 했기 때문에 나의 아이를 그런 환경에서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을 30년 넘게 살다 보니 내가 계획하지 않았던 생각조차 해 보지 않았던 길로 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신기하다.
만약 워킹홀리데이 1년만 하고 전부 미련 없이 버리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다면 어땠을까? 한국에서 다시 물리치료사를 하면서 평일에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주말에는 취미활동을 하면서 부모님과 함께 다시 살고 있지 않았을까. 남자친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여느 부부처럼 은행 대출을 내고 작은 아파트 하나를 사서 아기를 낳고 살아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노처녀가 되진 않았을까. 한국에서의 삶이 어떠했을지 생각보다 너무 잘 그려져서 그래서 더욱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한국에서 살면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여유를 사치로 여기면서도 친구와 일 끝나고 밤에 카페에 가서 직장 상사, 동료 험담을 하면서 살았을 게 뻔하다. 그런 삶은 이미 경험해 보았고 또, 그게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기에 나는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 다시 돌아가지 않았던 것은 내 의지와 상광 없이 운이 좋았던 것뿐이었지만 내가 여기에 머물 운명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나는 애초에 뉴질랜드에서 이렇게 살아가게 되어있었던 것이다. 누군가는 말했다. 어딘가에 있고자 하면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마음만으로는 있을 수 없고 운이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운이 매우 좋은 여자임에는 틀림없다.
뉴질랜드에 와서 온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던 이유가 딱 2가지가 있었는데, 첫째는 뉴질랜드가 너무 심심하고 할 게 없어서였고, 둘째는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처음에는 돈도 안 받고 무료로 한국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10달러를 받고 15달러, 20달러, 이제는 5년 경력이 생겨 30달러까지 받고 있다. 처음에 나는 새로운 것을 이것저것 해 보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던 중 한국어 수업을 시작했고 그렇게 내 인생이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어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뉴질랜드에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지금 내 남편은 한국어 수업을 통해 만났다. 세상에 이런 천사를 남편으로 얻게 된 것 또한 천운이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운이 좋아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인생이 바뀌길 원한다면 지금 당장 뭐라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재미로 시작했지만 이젠 거의 업으로 하고 있다. 그 덕분에 결혼과 임신도 했고 영주권까지 받게 됐다. 뭔가를 이루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안 해 봤던 일에 도전해 보고 새로운 것을 마냥 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에 변화를 주고 싶다면 사소한 것부터 뭐든지 시작해야 한다.
그 시작이 나비효과가 되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