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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주의자였던 나의 작은 결혼식

Life goes on

by 너나나나 Mar 09. 2025

 한국에서 12년 교육 과정을 착실하게 끝낸 후, 3년간 혹독한 직장 생활로 한국에 대한 온갖 정나미가 다 떨어졌을 때 나는 자유를 찾아 떠났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국에서 도망쳐 나왔다. 그 후,세계여행과 뉴질랜드에서의 삶은 나에게 자유와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여러 친구들도 사귀고 정착된 곳 없이 떠돌아다니는 일상을 즐기며 1년 넘게 살고 난 후 뉴질랜드에 와서 5년 넘게 악착같이 살았다. 여행과 타지 생활을 하면 할수록 느꼈던 것은, 이렇게 세상이 넓고 인간은 많고 할 것도 많은데 결혼이라는 굴레에 속박되어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비혼주의자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 결혼을 하지 않고 연애만 하면서 재밌게 살 거야라고 했던 다짐은 뉴질랜드에 와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전까지 이어졌다.


 뉴질랜드에서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틈틈이 온라인 한국어 수업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일주일에 최소한 한 두 명이라도 꾸준히 가르쳐온 게 5년. 그중에 만난 어느 백인은 처음 본 그 순간부터 다른 사람들과는 아주 달랐다. 이미 한국어 패치가 어느 정도 되어있었고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겨 아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머리가 길어서 묶어놓은 형상이 마치 여자아이인 것 같았다. 주의력 결핍 부족이 조금 있어 보이는 이 아이는 내 수업이 재밌는지 연신 몸을 전후 좌우로 흔들며 수업을 할 때마다 즐거워했다. 그땐 그 귀여운 아이를 남편으로 두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동거를 시작하고 몇 년 후, 우리는 귀한 생명을 얻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난 후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로토루아에 있는 작은 집을 은행 대출로 사게 되었다. 영주권을 받은  임신도 하고 집도 생겼는데 하나 빠진 것이 있었으니 바로 결혼이었다. 사실 뉴질랜드에서는 결혼을 딱히 하지 않고도 남녀가 1년 이상 같이 살면 파트너로 인정해 준다. 우리나라처럼 집 매매나 육아 등 법적 부부에게 주어지는 혜택이나 조건들이 뉴질랜드에서는 거의 없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굳이 결혼식이나 혼인신고를 해서 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뉴질랜드는 혼인을 하지 않아도 파트너 관계라면 부부처럼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집을 사거나 임신 출산을 하는 경우에도 문제가 없다. 그래서 우리도 결혼을 여태 미뤄온 것이었지만 최근에 한국에 잠시 방문하고 나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만약 나중에 한국에 가서 살게 되면 당장 장기로 거주할 비자가 필요한데 혼인 관계라면 남편이 결혼비자를 받을 수가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는 우리 아기가 한국 대사관에 가서 출생신고를 할 때 우리가 혼인신고를 먼저 해놓아야 절차가 덜 복잡하다고 한다. 우리가 한국이 아닌 해외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혼인신고 없이 출생신고만 하는 것은 어렵다고 한다.


 세 번째 이유는 우리가 이미 같이 살고 있고 서로 평생을 약속했기 때문에 결혼을 또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 혼인신고 절차와 달리 뉴질랜드에서는 먼저 혼인 라이센스를 150불을 주고 온라인으로 신청해야 한다. 그 후 혼인 신고를 진행하는 사람을 직접 만나 90불을 주고 간단한 서약식을 진행한다. 이때 증인 2명이 필요하고 서약서를 낭독하고 사인하면 혼인신고가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33불을 내고 혼인신고서 원본을 주문하면 뉴질랜드에서 법적 부부가 되었다는 증명서를 받게된다. 한국이었으면 2300만 원 넘게 돈을 써서 결혼식을 한 후 부부가 되는데 우리 부부는  결혼식 없이 약 한화로 23만 원을 내고 부부가 되었다. 이 나라에서는 우리처럼 결혼식을 아예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거나 아니면 아예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아이 낳고 살거나 아니면 아이가 조금 자라고 나중에 식을 올리는 경우도 많다.


 서약식은 10분 내지 15분 만에 끝이 났고 우리는 그렇게 부부가 되었다. 뱃속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에 그래도 부부가 되었으니 한국인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나마 안도하지 않으실까 싶다.


 뉴질랜드에 와서 이렇게 정착해서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한국에 살면서 비혼주의자를 자청했던 내가 임신에 결혼까지 하는 걸 보면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냐에 따라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이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남산만 한 만삭의 배를 보면서 내 남편이라는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게 이게 진짜인지 현실 감각이 떨어질 때가 있다.


생이 바뀌는 과정을 몸소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

임신을 하고 나서야 부모님이 어떻게 나를 여태 키워오신 건지 비로소 이해하는 것.

평생 함께할 동반자를 만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보잘것없고 미천한 한 목숨이지만 그 속에서 인생을 배워나가는 것.


이 모든 과정과 시간에 감사할 따름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하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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