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세계여행을 마친 후 한국으로 돌아가 3개월간의 휴식기를 가졌다.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유일하게 가지 못했던 오세아니아 대륙. 이번에는 여행이 아니라 1년 동안 발을 붙이고 살아보고자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했다. 뉴질랜드를 워킹홀리데이 국가로 정한 이유는 복지가 좋고 사람 살기 좋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유럽 여행을 마친 후, 아이슬란드처럼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이면서 아이슬란드보다는 조금 더 발전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찾다 보니 세계에서 아이슬란드 같은 대자연이 있고 안전하며 평온한 곳이 3 군대 있었는데 바로, 유럽의 아이슬란드, 남미의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지역,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뉴질랜드였다. 영어를 말하면서 살아보고 싶은 꿈은 항상 있었기 때문에 워킹홀리데이를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별로 큰 고민이 아니었다.
매해 3천 명만 선착순으로 선발한다는 지침에 비자 신청 당일 아버지와 함께 전쟁을 치렀다. 며칠 전부터 미리 신청서 작성 순서를 암기하고 인쇄한 후 공부하고 신청서에 들어갈 개인 정보들을 미리 다른 파일에작성해놓는 치밀함까지 완벽히 했다. 그러나 새벽부터 치른 전쟁은 생각보다 일찍 끝났다. 하루 반나절이 꼬박 걸려서 간신히 비자를 받았다는 작년 후기 때문에 혹시나 3천 명 안에 들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게 웬걸? 나중에 알고 보니 작년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총기사건과 몇 해 전 크라이스트 처치에서 있었던 지진의 영향 때문인지 올해는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신청자가 급감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나는 정말 천운을 타고났다.
뉴질랜드로 떠나는 비행기 안, 17개월 전에 지금처럼 홀로 비행기를 타고 세계여행을 시작했었다. 새로운 삶이 바로 조금 전 시작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설레는 마음으로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했다. 뉴질랜드는 여행 난이도로 치자면 '하'에 속할 만큼 안전하고 깨끗하며 사람들도 친절하다. 일단 카우치 서핑 호스트 개리 집으로 향했다. 여행할 때 버릇 못 버리고 역시나 새로운 지역에서는 무조건 카우치서핑이다. 공항에서 18불 한화로 약 14,000원 상당의 버스를 탄 후 개리 집 앞에서 내렸다. 어차피 워킹홀리데이가 끝나면 다시 배낭가방을 메고 여행을 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비싸게 돈 주고 캐리어를 사고 싶지 않아 이민가방이라고 불리는 싼 녀석을 사서 가져왔다. 바닥에 달린 조그맣고 동그란 바퀴 6개가 나의 무거운 짐을 수월하게 날라줄 거라 굳게 믿었지만 재앙은 공항버스에서 내려서부터 시작됐다.
내려서 지도를 다시 확인해 보니 개리의 집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야 했다. 고작 한 정거장 더 가려고 18불 공항버스를 다시 타거나 우버 택시를 부른다는 것은 내 사전에 없는 말이었다. 한 정거장이 얼마나 멀겠냐 싶어 걸어서 가자고 마음먹었는데 짐이 무거워서인지 이민가방 바닥에 있는 작은 바퀴 6개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한걸음 움직일 때마다 가방이 힘없이 푹푹 쓰러졌다. 그렇게 30분을 낑낑거리며 가다가 결국 인내심이 폭발하며 바퀴와 상관없이 가방을 땅에 질질 끌고 갔다. 그렇게 내 몸보다 큰 이민가방과 씨름을 하며 걷길 1시간째, 맨바닥에 질질 끌려오던 가방은 군데군데 구멍이 났고 그 안에 있던 내 짐도 더러워졌다. 이미 몸이 지칠 대로 지쳐있는 상태에서 그 광경을 보자 화가 났다. 이젠 더 이상 못 걷는다며 도로에 멈춰 히치하이킹을 시도했다. 이미 해가 저물어 저녁 9시를 향하는 시간, 대형 이민가방을 옆에 끼고 땀범벅의 꼴이 사나운 여자를 태워줄 사람은 없었다. 진짜 너무 힘들고 지치고 내가 여기서 지금 뭘 하는 건지 싶어 택시를 부르려고 핸드폰을 켰더니 야속한 구글 지도는 이제 500m만 가면 개리의 집이라고 알려주고 있었다. 내가 왜 이민가방을 사서 가져왔을까 후회를 해도 이미 너무나 늦었다. 가방을 등으로 밀면서 기어가다시피 하여 드디어 개리 집에 도착했다. 이런 나의 사정을 알 리 없는 개리는 평온하게 TV를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반겨주었다. 불행히도 재앙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개리와 개리 아내는 인도에서 온 사람들로 우리는 간단히 이야기를 나눈 후 개리 아내는 내가 잘 수 있게끔 에어매트 튜브를 거실에 깔아주었다. 어릴 적 가족여행으로 해변에 가면 텐트를 치고 그 안에서 에어메트를 깔고 잠을 자던 것이 떠올랐다. 재밌겠다며 신이 나있던 찰나, 개리 부인이 밤에는 많이 추울 거라며 담요를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가. 추우면 얼마나 춥겠냐 싶어 개리 부인의 말을 흘려들은 후 한국에서 가져온 겨울용 침낭을 에어매트 위에 깔았다. 나는 튼튼하고 따뜻한 나의 침낭 하나만 믿었다. 그리고 맨바닥도 아닌 에어매트 위에 깔았으니 추울 수가 없을 거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이날 밤 이야기의 결말은, 거의 입이 돌아갈 지경이었다는 것. 새벽이 되자 에어매트 안에 있는 공기가 얼음장처럼 차가워져서 얼음 위에 누워있는 꼴이 된 것이다. 아무리 침낭 성능이 좋아도 바닥에서 찬기가 올라와 에어매트 위에서는 도저히 잠을 수가 없었다.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있던 나는 콧잔등이 너무나 시려 숨 쉬기조차 어려웠고 그렇게 추위 속에서 뒤척이며 밤새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뉴질랜드의 겨울은 온도상으로는 춥지 않지만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이기에 바람이 어마어마하게 차갑다는 것을 재앙이 휩쓸고 간 다음날에서야 알게 됐다. 특히나 오래된 집이 많아 밤에는 온열기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는 수준이다. 나는 뉴질랜드에 도착한 첫날 그렇게 호되게 당한 후에야 정신을 차리고 둘째 날부터는 한국에서 가져온 온갖 옷을 껴입고 잠을 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추워서 개리 집에 지내는 내내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