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 요리사 암릿을 피하세요

주방 키친 핸드

by 너나나나

백수로 3개월을 지내다가 결국 꼬리를 내리고 선택한 일은 '키친 핸드'였다. 이젠 청소든 공장이든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다. 페이스북에 올라온 구인 글에 메시지를 보냈고 그날 저녁 바로 면접을 보기 위해 버스를 타고 40분을 이동했다. 오후 5시에 도착해서 주방에 들어가자마자 내 눈에 들어온 풍경은 가득 쌓인 설거지 그릇들을 인도인 남자 두 명이 열심히 치우고 있는 모습이었다. 키친 핸드로 일하던 사람이 갑자기 일을 관두면서 요리사인 이들이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로 면접이랄 것도 없이 인도인 중 한 명은 내게 어떤 식기류를 어디에 놓야하는지 대충 알려준 후 바로 설거지를 시켰다. 그렇게 얼떨결에 시작된 주방일.

밤 10시, 일이 다 끝나고 쉬는 날이라 출근을 안 했다던 암릿이라는 이름의 주방장 (헤드 셰프)이 가게 앞에서 나를 잠시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이 식당은 서양식 식당인데 주방 요리사 4명 중 3명이 인도인이었다. 왜 이렇게 인도인 셰프가 많은 건지 처음부터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이내 내가 상관 할바가 아니라 생각하며 암릿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주방장은 머리에 터번을 쓰고 차가운 인상에 웃음기 없는 얼굴로 몇 가지 질문을 하곤 바로 내일부터 일을 하라고 말했다. 그렇게 계약서도 없이 구두 계약으로 시작한 키친 핸드 일은 처음 한 두 달 까지는 흥미롭고 심지어 재미있기까지 했다. 주방에서 설거지도 하고 각종 채소를 손질하는 일이 처음이라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최저임금을 받고 일했지만 손님이 없어 한가할 때에는 하는 일 없이 그냥 서 있으면 되었고 주방장이 없는 날에는 다른 요리사들이랑 수다를 떨면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또한 저녁식사로 요리사들이 만들어주는 피자나 치킨, 감자튀김을 공짜로 먹을 수 있었기에 더욱 일할 맛이 났다. 무엇보다도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버스 대신 중고 전기 스쿠터를 구입해서 밤 10시에 일이 끝나면 스쿠터를 타고 40분씩 걸려 집까지 밤바람을 맞으며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도 잠시, 일하는 날이 늘어가면서 문제가 하나씩 생기기 시작했는데,


"네가 쓰는 장갑들은 내가 사비로 내는 거야, 더 필요하면 네가 니 돈 주고 사서 써"


고무장갑이 찢어지거나 다 늘어나서 더 이상 쓸 수 없을 때마다 나는 주방장에게 새 고무장갑을 구입해도 되냐고 물었고 그런 나의 요청이 매번 불만이었던 주방장은 결국 내게 더 이상 장갑을 제공해주지 않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주방에서 구입하는 식재료 및 안전장비들은 모두 식당 주인의 법인 카드로 계산되는 것으로 아는데 내가 쓰는 장갑이 주방장 사비로 나간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주방장 돈이든 식당 주인 돈이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업무 환경에 맞는 안전 장비를 구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주방에서 뜨거운 물과 냄비, 식기류들을 만지는 키친 핸드에게 고무장갑은 공사장의 헬멧과 같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장비다. 결국 고무장갑 없이 일을 하면서 뜨거운 냄비에 손목이 데면서 꽤 심한 화상을 입기도 했고 뜨거운 식기류들을 맨손으로 만지면서 손이 성할 날이 없었다.

하루는 물이 너무 뜨거워 도저히 맨손으로 만질 수가 없어서 찬물로 그릇들을 씻고 있었는데 주방장이 오더니 물 온도가 뜨거워야 식기 세척기에 들어갔을 때 음식물이 잘 지워진다며 찬물 사용을 하지 말라고 나를 혼내기도 했다. 뜨거운 물을 쓰라고 하면서도 고무장갑은 사주기 싫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장갑을 요구하면 그제야 한 번씩 사라고 법인 카드를 주긴 했지만 마트에서 가장 저렴한 2달러짜리를 사라고 말했으며 (싼 값만큼 잘 찢어진다는 단점이 있다.) 사달라고 할 때마다 핀잔을 주며 사지 말라고 하는 주방장 덕분에 나는 나의 안전을 지키는 것에 대해 매번 눈치를 봐야 했고 오늘은 사줄까 마음 졸이며 일을 해야 했다.

고무장갑 사건뿐 아니었다. 주방 전체 부주의로 생긴 실수에 대해서 오로지 나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며 개인 사비로 손해를 물어내라고 하거나, 요리사들이 고지해주지 않아 생긴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실수에 몹시 화를 내며 말과 언행으로 분노를 표출하곤 했다.


"멍청하긴! 뇌를 좀 써! 집에나 가"

다시 일을 시작해서 행복했던 시간은 어느새 지나고 일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만 갔다. 주말에 바쁜 시간대로 재 배치가 되면서 2명이 해야 할 할당량의 업무를 오로지 나 혼자 해야 했고 주방장 기분에 따라 저녁식사를 간신히 얻어먹을 수가 있었으며 이마저도 주방장이 내 식사를 잊어버리면 그날은 굶는 날이다. 주방장과 일을 같이 하는 요일은 배고픈 상태로 시간 쉬는 시간 1 분도 없이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이 세다. 대화가 안 통하고 건의사항을 말해도 듣는 척도 안 하며 되려 화를 낸다. 누가 인도인에게 영어를 하게 만들었냐고 우스개 소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여태껏 사람들이 하는 이런 우스개 말들이 사실라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직접 겪어보니 인도인과 함께 일하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나의 모든 인도인 친구들까지 묶여서 '인도인'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음 아프지만, 그동안 당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전까지는 인도인이라고 칭해야 할 것 같다.


인도인 주방장 암릿 덕분에 이렇게 또 5개월 만에 일을 때려치웠다. 한국뿐 아니라 남의 돈 벌기란 정말 쉽지 않다.


혹시나 누군가 뉴질랜드에 와서 일을 한다면 이 사람을 꼭 피하라고 일러두고 싶다.


'인도인 요리사 암릿 (Amrit)을 피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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