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인 요리사들이 있는 서양식 레스토랑에서 키친 핸드로 한 달 정도 일을 했을 때였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 남미까지 번져 전 세계적인 전염병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에 뉴질랜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초기에 한국과 중국에서 감염자들이 증폭하고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건 전적으로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뉴질랜드에서도 어느 순간부터 하루에 수십 명씩 감염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발 빠르게 가장 강력한 4단계 전국 봉쇄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뉴질랜드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 갇혀 살게 되었고 나는 백수 시절 집에서 구인 글만 쳐다보던 그때처럼 집안의 곰팡이 신세가 되어버렸다. 사회 경제가 전면 중단되면서 나를 포함해 자택 근무가 어려운 사람들은 그저 집에서 손가락만 빠는 신세로 전락했다. 일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지만 다행히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주어 생계유지에는 걱정이 없었다. 보조금은 주 20시간을 기준으로 20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 20시간 이하로 일하는 사람으로 나뉘어서 지급되었다. 키친 핸드로 일하는 것뿐만 아니라 종종 이벤트 회사에서 일일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는 이벤트 회사에서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고, 키친 핸드와 비슷한 시기에 일 시작했던 제약회사에서도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일을 하지 않고도 내가 받아야 하는 업무 수당을 주마다 끊기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즉, 악몽 같은 코로나 시대의 예상치 못한, 최대 수혜자가 된 셈이다.
하루는 한국에 계신 엄마가 어느 날 내게 전화를 걸어, 본인이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를 받았다고 말씀하셨다. 외숙모와 어제 점심을 함께 했는데 바로 오늘 외숙모가 며칠 전 했던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검사 결과가 양성으로 나왔다고 했다. 부랴부랴 엄마도 오늘 급하게 검사를 받았고 이 사실은 우리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지 내 주변에 걸린 사람이 나올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엄마는 다행히 검사 결과 음성으로 나오긴 했지만 2주 자가격리를 해야 했고 일은 당연히 할 수 없었을뿐더러 밖에 나가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코로나가 이렇게 무섭고 사람 피를 말리는 감염병이라는 것을 내 주변인들이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그 사태의 심각성을 비로소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코로나로 인해 백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잃었다. 그나마 나라에서 도움을 주면 다행이지만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한 나라는 보조금은커녕 확산 방지 대책도 미흡한 상태로 상황은 악화되어만 갔다. 그런데 이런 끔찍한 대 참사 속에서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스트레스 하나 없이 돈만 잘 버는 사람. 그게 바로 나였다.
인생이라는 것이 좋고 나쁜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백수로 일을 못 구해서 극한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오던 것을 보상이라도 해주는 듯, 백수 청산을 하고 바로 한 달 뒤 코로나가 터졌다. 워킹홀리데이로 뉴질랜드를 선택한 덕분에 풍족한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조금 없이 일한 만큼 돈을 벌어야 했지만 나는 집에서 일을 할 수 없는 직업군이었기 때문에 (키친 핸드, 이벤트 행사보조)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가만히 많아서 보조금을 받으며 돈을 벌 수 있었다. 뉴질랜드의 총리 자신다는 국민들이 대 혼란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자 보조금을 지급했고 몇 달 후 있을 선거를 공략한 이러한 정치적인 행보들이 결과적으로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혜택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백수로 오래 지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이었다. 통장 마이너스를 본 후, 어떻게든 이겨내고 잘 살아보고자 자존심은 다 버리고 닥치는 대로 일을 잡았다. 키친 핸드 일을 필두로 연구실 보조, 행사보조, 웨이터 서빙 등 기회가 닿기만 하면 바로바로 면접을 보고 계약서를 썼다. 여기저기 하루 알바 일거리가 있는 곳을 빠짐없이 다니면서 간신히 주 40시간 맞추었고 그 덕분에 정부 보조금도 여기저기서 조금씩 받을 수 있었다. 백수로 지내며 일을 못 구해서 자괴감에 빠져 지내던 나날들을 돌아보니 이렇게 되려고 그런 힘든 나날들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뼈 빠지게 일해서 돈을 벌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일을 전혀 하지 않는데도 돈을 받는다는 것이 참으로 행복했다.
보조금 이외에도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3개월 자동 연장되는 행운도 얻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하여금 정부 차원에서 비자를 일괄 자동 연장시켜줌으로써 원래 같았으면 2020년 6월에 이 나라를 떠야 했지만 20년 9월까지 지낼 수 있게 됐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 총 15개월 중 5분의 1은 호텔에서 일하다 관두고, 또 다른 5분의 1은 여행하며 백수로 지내고 또 다른 5분의 1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집에서만 박혀 지냈다. 연장된 비자 덕분에 조금 더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