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의 현실

by 너나나나

서른이 다 되어서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것에는 가장 큰 단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한국 직장문화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했던 직장 생활 3년은 짧고도 긴 시간이었다. 나의 연봉은 또래 친구들보다 높았고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일을 했기에 나의 직업은 나름대로 대우받으며 일하는 직종이었다. 그러니 뉴질랜드에 도착하자마자 했던 호텔 하우스키핑은 내겐 그저 체험 삶의 현장 같은 느낌이 들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경험해보는 느낌으로 일을 했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현실을 자각함에 따라 자괴감이 들었고 결국 호텔일은 3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일을 관둔 후 통장 잔고는 점점 비어갔고 동시에 마음도 같이 조급해져 갔다. 차는 없고 버스나 택시는 비싸니, 걸어서 하루 2~3시간씩 다운 타운 내에 있는 카페와 식당에 이력서를 뿌리고 다녔다.


"안녕하세요 혹시 직원 뽑으세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면 일을 구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누가 그랬던가. 두 달 내내 20곳이 넘는 곳에 CV를 내고 다녔지만 단 한 곳에서도 취직할 순 없었다. 이력서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 정말 한 군데서도 나를 부르지 않자 그제야 워킹홀리데이의 현실이 얼마나 가혹한지 깨달았다. 사실 호텔에서 일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게 얻었었고 직접 발로 뛰면 얼마든지 일은 빨리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 세계적인 감염병인 코로나가 터진 이후라서 그런지 더더욱 워킹홀리데이로 지내는 신분으로 일 자리 구하기란 여긴 어려운 게 아니었다.


"워홀 비자는 안 뽑아요 죄송합니다"


어차피 1년도 안돼서 그만 둘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 cv를 보고 전화를 준 사장들도 나의 비자가 워홀 비자라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퇴자 놓기 일쑤였다.

내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물리치료도 이 나라에서는 면허증 발급기관이 다르니 써먹을 수가 없고 바리스타나 컴퓨터, 하물며 경영이나 행정, 마케팅에 관련해서 공부해 본 적도 없기 때문에 뉴질랜드에서 나는 아무런 기술도 능력도 없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카운터 직원이나 전화를 받는 일은 지원조차 어려웠다. 설거지, 청소, 공사장, 농장에서 돈을 벌 수 있었지만 문제는 제 분수를 모르고 콧대만 높은 나의 자존심이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서른 가까운 나이에 뉴질랜드라는 나라에 와서 남의 똥오줌 치우고 먹다 남은 음식물 치우며 설거지로 돈을 벌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대단히 속상했다. '나는 죽어도 다신 청소하는 일은 안 해!' 이렇게 억지를 부리면서 콧대만 세우다가 3개월이 지났다. 통장 잔고는 기어코 마이너스를 찍고 말았고 집세 낼 돈이 없어 호스텔을 전전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결국 나의 자존심을 꺾은 것은 '돈'이었다. 돈이 없으니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려웠다. 한국에서 벌어둔 돈을 환전해서 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뉴질랜드에 왔으니 여기서 결판을 짓겠다는 심산이었기 때문이다.

"오, 이력서가 좋네요! 당신이 내일부터 바로 일할 수 있게 알아볼게요"


결국, 바로 취직이 된다는 공사장 에이전시에 찾아가 계약서까지 썼지만 바로 일을 찾아서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던 에이전시는 몇 주가 지나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전화로 상황을 물어보고 다시 찾아가 보기도 했지만 여자인 내게 지금 당장 줄 일거리가 없다는 식이었다. 여자든 남자든 하고 싶다고 말만 하면 바로 내일부터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이 바로 공사장 일인데, 나에게는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나와의 자존심 싸움에서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다운타운에서 버스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식당의 주방 설거지일을 시작했다. 페이스북에서 급하게 사람을 구한다는 글을 보고 바로 연락해서 면접을 보러 간 그날 바로 일을 시작했다. 면접도 교육도 필요 없고 그냥 하고 싶다고 말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타지에 와서 능력도 없이 오기만 부리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3개월 동안 호되게 배웠다. 워킹홀리데이의 현실은 가혹했다. 사실은 기술이 없으니 서빙이나 청소, 설거지 등의 일을 하면서 최저 임금 받아 생활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나는 그 당연한 것을 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뉴질랜드에 온 순간부터 줄곧 우울했다. 삶의 체험현장은 석 달만에 끝이 났고 나는 더 이상 체험이 아닌 현실을 살아야 하는 개미일 뿐이었다. 자존감이 무너졌고 영어로 말하기도 무서웠으며 일이 구해지지 않는 것이 온전히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 하루하루가 우울했다. 나 스스로를 어둠의 구렁텅이에 집어넣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키친 핸드로 설거지 일을 시작하면서 다시 일어나 보기로 했다. 뉴질랜드 워킹홀리데이는 현지 체험을 하면서 여행을 오래 할 사람들에게 적합한 제도다. 최저시급이 높지만 그만큼 물가도 비싸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다면 최저임금을 받으며 개미처럼 살아야 한다.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쉽지 않았지만 여기서 이렇게 포기하면 앞으로 더 힘든 고난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싶어 참고 견뎌보기로 했다.

자존심은 나를 배 불리게 하지 않고 돈은 나를 배고프게 하지 않는다.

keyword
이전 03화엄마, 거기 그대로 있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