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뉴질랜드에 들어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동안 은행에 가서 계좌를 오픈했고, 일할 때 반드시 필요한 IRD넘버를 받은 후, 정착해서 살아갈 플랫(공유 하우스)을 알아보고 다녔다. 은행에 가서 현지 계좌를 열고, 일과 집을 구하며 기본적인 정착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워낙 잘 발달된 인터넷 덕분에 막히는 부분 없이 술술 혼자서도 잘할 수 있었다. 유학원에 고액의 돈을 주고 이 과정을 대신해달라고 맡기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던데 나도 돈만 많으면 그렇게 하고 싶다만, 금수저도 아닌 가난한 워홀러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다.
호텔 4군데에 하우스키핑(청소부)으로 이력서를 넣어두었다. 겨울이라서 워킹홀리데이로 오는 사람들이 여름에 비해 적기 때문에 일 자리가 잘 구해진다는 말을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4군데 중 한 곳에서 면접을 오라는 연락을 바로 받았다. 태어나 영어 면접이 처음이라 긴장되었지만 세계여행에서 얻은 생존 영어실력을 뽐내며 최종 합격을 하게 되었다. 워홀로 와서 일자리 구하기가 생각보다 쉽구나 생각하며 면접을 봤던 그다음 주에 호텔에 다시 가서 계약서 서류 뭉치를 받아왔다. 5성급 호텔답게 복장 규정과 사내 세세한 모든 규정이 적혀있었고 10번 정도 사인을 한 후에야 계약서가 마무리되었다. 원래는 하우스키핑(방 청소부)으로 지원을 했지만 청소 경험이 없다고 Public Area Agent(공용 공간 청소부)로 고용이 되었다. 일단 카우치서핑으로 외국인 친구들 집에서 지내는 것도 한계가 있고 플랫에 들어가 내가 사는 집의 방세를 내려면 돈이 필요했다. 그러니 청소든 뭐든 일단 무슨 일이든 시작해야만 했다.
호텔에 가서 발품 팔아 이력서(CV) 제출 후 구두면접, 계약서 작성 그리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는 것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호텔일의 최대 단점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직원 채용까지 과정이 너무나 길다는 것이다. 당장 돈이 필요해서 일을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지만 막상 5성급 호텔에 번쩍번쩍한 건물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초조해하지 않고 한 달간 잘 참았다. 멋지고 이름 있는 호텔이라고 해서 다른 직업에 비해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은 아니었다. 최저시급에서 시급 5백 원을 더 받을 수 있지만 구색 맞추기의 시급일 뿐 청소일은 정말 고되고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어릴 적 TV에서 워킹홀리데이로 호주에 가서 호텔 하우스키핑으로 일하는 사람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나중에 워킹홀리데이를 가면 꼭 호텔에서 청소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그때 다짐했었다. 내 바람처럼 원하던 호텔 청소를 시작하면서 처음 한 달간은 정말 행복했다. 화장실과 로비 복도 등을 청소하면서 그 자체로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은연중 사람들의 하대가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는 손님으로부터 오는 것 보다도 같이 일하는 호텔 다른 파트 직원들로부터 받는 일이 더 잦았다.
"이봐, 여기 자국 좀 닦아"
"세미나실에 청소가 제대로 안 된 것 같으니까 다시 가서 한번 더 해"
"지금 당장 엘리베이터 거울 지문 좀 닦아, 더러워서 거울을 볼 수가 없어"
"식당에 구석 테이블 아래 다시 청소해 거기 누가 방금 음식을 흘렸어"
5성급 호텔에 준하는 청결함을 유지하는 것이 임무이긴 했지만, 사람들의 말하는 태도와 억양이 조금씩 나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해서 마무리했어도 직후에 손님이 더럽혀 놓으면 다른 층을 청소하다가도 불려 가서 내가 마치 청소를 제대로 안 해놓았다는 식의 핀잔받아야 했다. 막상 불려 가서 보면 해당 파트의 직원들 중 한 명이라도 그냥 빗자루로 한 번만 쓸면 끝나는 사소한 일들까지도 나를 불러댔다. 정장을 빼입은 직원들이 티셔츠 하나에 청소도구함 트레이를 끌고 다니는 나를 보는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격지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람들의 똥오줌을 닦고 냄새를 맡으면서 '내가 지금 뉴질랜드에 와서 뭐 하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은 소변기에 소변을 본 후 오줌을 바닥에 질질 흘리기 때문에 오줌을 직접 닦아내야 했고, 남녀 불문하고 대변이 묻은 대변기 안쪽을 솔로 문질러 닦아내는 일 역시 오로지 나의 업무였다. 대소변이 더러운 게 아니라, 누군가 처리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공용 공간을 더럽게 사용하는 생각이 더러운 것이다. 세상에서 정말 더러운 건 사람이다. 비싼 옷을 입어서 겉 보습이 멋져 보여도 내면과 사고가 더러운 사람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을 이번 일을 하면서 수도 없이 느꼈다.
영어가 온전하지 못해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할 때마다 내성적이고 조용한 아이로 변해가는 나 자신이 싫었고 자격지심과 자존심이 바닥을 쳐서 결국 일을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청소직을 그만두었다. 당장 돈을 벌어 집세를 내야 했지만 돈이 없어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이렇게는 더 이상 못살겠다 싶었다. 그나마 5성급 호텔이었기에 더 추한 꼴 당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더 더럽고 힘들게 일하는 사람이 많은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이 일을 하고 느낀 것은 청소하는 사람들의 임금이 다른 누구보다 더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임과 동시에 아무도 하기 싫어하고 냄새나고 더러운 일을 손수 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부의 임금은 절대적으로 높아야 한다. 물론 돈만 많이 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인식 또한 변화해야 한다. 청소부는 당신이 하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니다. 제발 오줌을 바닥에 질질 흘리지 좀 말자. 당신도 더러워하는 당신의 오물을 그 누가 좋아하겠냐 말이다. 제발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고 인간이 되자.
우리가 잘 살아가기 위해 사회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생각하고 있다면 하우스키핑은 꼭 한번 해 보길 권한다. 분명 당신 인생에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