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홀리데이를 온 애초에 목표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여행해서 한국으로 돌아가자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돈을 벌어야 여행을 할 텐데 돈 버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말이 좋아 워킹홀리데이지 우리나라 말로 하면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 신새로 1년을 타지에서 지내는 것이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이상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에게 무슨 일을 맡기겠냐는 말이다. 더군다나 의사소통까지 원활하지 않다면 업주 입장에서는 굳이 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을 쓸 이유가 없다. 처음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한 달 만에 시작했던 호텔 청소는 기본 시급보다 500원 정도 높았기에 나름 만족하며 일을 했지만 날이 갈수록 자존감이 낮아져서 끝내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내 할 일만 마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결국 돈을 못 벌어서 거지가 되거나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해도 그 호텔일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기에 석 달만에 일을 관두었다. 3개월 동안 일주일 40시간씩 일을 하면서 번 돈은 플랫 렌트비를 제외하고 6000달러 정도, 한화로 450만 원 남짓한 돈이다. 매주 장 보고 식비로 나가는 돈을 제외하면 3개월 동안 350만 원 정도를 벌었다. 한 달에 순익 120만 원도 안 되는 이 생활을 3개월이나 지속했던 이유는 나와 처지가 같은 외국인들과 뉴질랜드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함께 일한다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 되면 근교 여행을 갈 수 있지만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고 호텔일을 관둔 후에는 더욱 사정이 어려워졌다. 백수로 살면서 그마저 벌어놨던 돈 마저 축내고 있었고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바에야 여행이라도 제대로 해야겠다 생각했다. 그리하여 엄마를 초대해 뉴질랜드 남섬에 함께 간서 가서 석 달 번 돈을 모두 탕진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사정이 더 좋지 않았기에 이젠 똥이든 오줌이든 가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지원하는 곳마다 내가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퇴자를 놓기 일쑤였다. '우리는 워홀 비자 안 써요 어차피 1년도 안돼서 그만둘 거잖아요. 우리는 오래 일할 사람 구하거든요'. 인터뷰할 기회 조차 얻지 못하고 그렇게 퇴자 맞는 것이 익숙해질 때 즈음 간신히 어느 서양 식당 주방일을 시작했는데 일 시작 한 달 만에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다행히 정부 지원금이 나와 일을 하지 못해도 돈을 벌 수 있고 그때부터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지속될수록 나는 일도 안 하고 지원금을 받아 생활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몸과 마음 편히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리곤 매주 통장에 쌓여가는 돈을 보면서 세상은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돈이 벌고 싶다고 열망할 때는 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워 항상 퇴자를 맞았는데 이젠 놀면서도 돈이 들어온다. 그렇게 나의 1년 워홀 중 3개월은 호텔 일로, 3개월은 백수와 여행으로, 6개월은 코로나로 끝나게 되었다. 하지만 뉴질랜드가 코로나 사태에 대처를 발 빠르게 해 주어 나의 워홀 비자는 3개월 자동 연장되었고 봉쇄가 풀린 후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 괴롭히는 주방장 때문에 그만둔 주방일 후에는 운이 좋게도 바로 한국 식당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비자 만료가 3개월 남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장님은 나를 고용해주었고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도 잘 살고 있다.
워킹홀리데이 1년 3개월 동안 돈을 많이 벌긴 매우 어려웠다. 첫째로 워킹홀리데이 비자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 때문이다. 얼마 못가 일을 그만둘 사람이라는 인식 때문에 고용주가 워홀러 고용을 꺼릴수록 워홀러들은 단기적이고 단순한 업무 분야로 빠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농장에서 과일을 따거나 공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나르거나 설거지 혹은 청소를 하는 것과 같은 단순 노동들이다. 혹은 조금 더 상황이 나아지면 호텔 서빙, 웨이터, 카페, 마트, 주방 등에서 일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워홀 비자로는 일을 시작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둘째로 돈을 많이 벌기 어려운 이유는 현지 물가가 한몫을 차지한다. 아무리 시급이 높아도 외식비, 교통비 등 일상생활에 들어가는 돈이 꽤 많이 나간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 얼마나 저축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짠순이인 내가 안 쓰고 안 먹어서 아낀 순이익이 한 달에 120만 원이었다. 근교로 여행 한 번만 다녀오려고 해도 혼자 가긴 비용적으로 부담스러우니 여행사를 통해 가도 하루에 10만 원 가까이 써야 한다. 에어비엔비 , 호텔, 호스텔 등 숙박 업체들 가격이 너무 비싸서 1박 2일 여행 가는 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한다. 그래서 현지 물가를 탓하기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그러려니 받아 들어야 한다.
결론은 뉴질랜드 워킹 홀리데이를 하면서 큰돈을 모으겠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 워홀과 돈을 분리하여 그저 경험. 여행. 봉사. 인내 이러한 마음으로 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워킹홀리데이가 될 것이다. 1년밖에 살지 못해 고용주로부터 문전박대당한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문을 두드린다면 언젠가는 나를 구제해주는 소중한 고용주를 만날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경험들, 매일 봐도 경이로운 아름다운 풍경들, 서두르지 않고 인생을 즐기는 사람들의 여유로움까지 뉴질랜드에서 1년씩이나 살 수 있는 기회기 존재한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살면서 죽기 전까지 한 번도 해보지 못해 봤을 수도 있는 일들에 도전하고 오로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자립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뉴질랜드에서 하고 있다는 것. 이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의 워홀은 대성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