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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Jan 27. 2021

나는 북한 사람이 아닙니다

독일 운전면허 발급 - 뮌헨 가얏고의 독일 적응기

Ich komme aus Südkorea
나는 남한에서 왔어요


북한 사람으로 오해받아 낭패를 볼 뻔한 적이 있었다.


나에겐 한국, 싱가포르, 독일 이렇게 운전 면허증이 3개가 있다.

 

싱가포르 운전면허를 따던 그 당시(2004년)에는,  한국 운전 면허증을 갖고 있으면서 싱가포르의 거주 비자를 발급받은 지 1년 이내라면,  필기시험만 치르면 됐었다.  그 이후엔  제도가 바뀌어 한국 면허증 유무와 상관없이 필기랑 실기 시험을 모두 봐야 했다.


싱가포르에서 운전 면허증을 딴다는 게  가격도 비쌌지만 합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얘길 많이 들은지라 필기시험만 보면 된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렇긴 해도 필기시험이 나에게 결코 쉬운 건 아녔다.  운전면허 시험은 곧 나에게는 영어 시험이나 마찬가지였다.  


문제에 함정도 많아서  만만하게 보다가  떨어졌다는 지인들이 많았다.  1년 안에 면허를 따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재수생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도로법을 외우기 전에 단어부터 찾아가며 1주일간 열심히 공부를 했고 다행히 단번에 붙었다.


면허 발급받은 지  10년 후에는 ‘10년 무사고 운전자’라며  교통경찰청인지 어디에서 무사고 축하 편지까지 받았다.  무척 뿌듯하고 기분 좋았다. 한국에선 2종 면허로 취득 후, 10년 무사고라며 1종 면허로 갱신해 줬는데,  싱가포르엔 그런 갱신은 없었다.


그런 반면, 독일은 더 간편했는데,  싱가포르처럼 비자를 발급받은 지 1년 이내라면, 공증받은 한국 면허증을 독일 면허증과 교환해준다고 했다.  이는 모든 나라의  면허 소지자에게 해당되진 않았다. 또 미국의 경우는 주마다 다르다고 들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은 지인은 무면허자처럼 학원부터 다시 다니면서 모든 시험을 다 봐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뮌헨에 사는 몇 년간은 뚜벅이 생활을 한다고 했다.


독일 면허 취득은 세계에서 제일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물론 가격도 비싸서  잠시 살다 가는 주재원 중에는 독일에서 운전을 안 하는 경우도 흔하게 있다.  그런데  한국 면허증 소지자는 공증만 받으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우리나라 좋은 나라! 우리나라와 독일 간의 외교관계에 대해 뿌듯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렇게 간편한데,  
북한 사람으로 오해를 하고 신체검사부터 죄다 다시 받아 오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하다니!!!


내가 살고 있는 뮌헨은 대사관도 영사관도 없어서, 가까운 프랑크 푸르트 영사관으로 관련 서류와 해당 수수료를 보내면 영사관에서 번역된 내용을 공증해서 보내 준다.  


2015년도 당시에 필요한 서류는 여권, 한국 운전 면허증 번역본, 면허증 사본, 거주증 사본이었으며,  수수료와 함께 영사관에서 나에게 우편으로 보낼 우표도 같이 동봉해서 보내면 됐다.  

독일 운전 면허증 번역도  크게 어렵지가 않았다. 영사관 홈페이지에서 관련 파일을 다운로드하고 견본을 보면서 번역하면 되기 때문에 독일어를 몰라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준비된 모든 서류를 들고 뮌헨 도로 교통청으로 갔다.  오전 7시 30분에 문을 여는데,  혹시나 사람이 붐빌까 싶어 7시쯤 도착했다. 접수 후 아이들을 등교시켜주려고 그 날은 새벽 6시부터 서둘렀었다.  7시에도 이미 문이 열리도록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200m는 넘어 보였다.  

아니 여기 선진국 맞아?


독일은 관공서가 하루 종일 근무를 하는 게 아니고 오전 7시 반에는 문을 열어서 오전 근무만 하고 끝난다. 요일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는 것은 그 날 처음 알았다.  우린 여전히 독일 시스템에 적응을 하고 있는 과정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  아이들과 덜덜 떨면서 문이 열리도록 기다리고 있었고 남편은 주차하러 간 상태였었다.


드디어 문이 열렸고 내 순서가 되어서 준비한 서류를 접수처에 내미니,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묻고는 대뜸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황스러웠다.  

'신체검사를 받아야 한다니. 도대체 그건 어디서 받고, 10살과 7살의 아직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식구가 이 고생을 또 해야 돼?'

주차하러 간 남편은 30분 넘게 감감무소식이고 혼자서 완전 멘붕에 빠진 상태였었다.


그때 남한이라고 말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Ich komme aus Südkorea" 힘차게 외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아니 더 심했다. 학원을 다시 다녀야 한다는 거다. 내 면허증을 인정해 줄 수가 없다는 거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이건 분명 뭔가가 잘못된 게 확실하다. 내가 알기론 면허증 번역본 공증서류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하니,

이것 보라며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당당하게 보여준다.  빼곡히 적힌 도표 속의 글들은 당황하니 얼른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장님 등불 보듯 눈만 껌뻑 껌뻑 거리며 컴퓨터 화면을 보고 서있는데, 다행히 그때 주차를 끝낸 남편이 등장했다.


남편이 화면을 보고는 직원에게 이건 북한이잖아요 그런다.

아마도 그 직원이 Südkorea가  Republik Korea (남한, 영어로는 Republic of Korea)인지

Demokratische Volksrepublik Korea (북한, 영어로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인지  헷갈렸나 보다.


컴퓨터 항목에는 Südkorea(남한),  Nordkorea(북한)으로 표기되어 있는 게 아녔다.


저 ‘Demokratisch(민주적, Democratic)’란 단어 때문에 헷갈렸나 보다.  하긴 외국에서 사용되는 남한이나 북한의 공식 명칭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저 사건으로 인해 북한의 공식 명칭을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의 공식 명칭은 여권에 적혀 있으니 알고 있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북한 표기법을 알고 있을까마는 그렇다고 할지라도 어찌 담당 공무원이 그게 헷갈릴까!!  아무튼 나를  졸지에 북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꼭두새벽부터 멘붕이 오게끔 만들었던 사건이었다.


덕분에 나의 독일 적응기에 쓸 또 하나의 소재를 제공해 줬지만, 만약 그때 남편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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