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뮌헨 가얏고 Feb 12. 2021

16도의 겨울같은 여름

친하게 지내보자꾸나,  뮌헨!!

2015년 8월 22일
뮌헨 공항 도착
기온 16도


'으~~~ 추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옷깃을 여미게 된다.

예상은 했었지만 춥다.  뜨거운 여름 날씨 속에 지겹도록 있다 와서 그런지 그나마 싫지는 않다.


13년간의 싱가포르 삶에 쉼표를 찍고 뮌헨으로 이사 온 첫날이다.  사람들은 이사란 말에 의아해 하지만,  뮌헨에 계속 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이민이 아니라 이사 온 거다.


기온이 16도인 뮌헨의 여름 날씨가 크게 놀랍진 않다.  들쑥날쑥한 뮌헨의 여름 날씨는 이미 경험했었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한 가디건을 걸치긴 했지만,  여름용 가디건이라 비행기 탑승교(air bridge)를 지나 공항 안으로 들어갈 동안의 차가운 공기를 모두 막아주진 못했다.  그러나 뜨거운 여름을 보내다 와서 그런지 추운 여름은 살짝 반갑기도 했다.




지은 죄도 없는데, 입국심사를 통과할 땐 늘 긴장이 된다.  수많은 사람들을 체크하느라 지친 직원들의 무표정한 얼굴이 더 그렇게 만든다.  언제나 친절하게 맞이하는 싱가포르와는 많이 대조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없는 나에게 질문공세가 터져 나온다. 핸드폰에 저장된 '독일 거주증(German registration)'을 보여 주니 다른 동료까지  불러 한참을 들여다본 후에야  통과시켜 준다. 휴~~~~~




짐을 찾고 남편을 만나고 나서야 긴장이 풀렸다.  약 2달 만의 상봉이다. 남편은 우리보다  먼저 뮌헨에 도착해서 이삿짐을 받았고 싱가포르에서 이삿짐을 부치는 것도 혼자서 했다. 난  이삿짐센터가 도착하기 전에 짐을 분리하는 작업만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갔었다.


남편이 혼자 살 때부터 쌓아온, 약 20년 되는 살림을 모두 꺼내 놓으니 엄청나게 많았다.  부족함이 많다 싶었던 살림도 꺼내 놓으니 엄청나구나!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는지 고민하는 데만 시간이 꽤 걸렸다. 싱가포르로 다시 돌아올 수도 있으니 싱가포르에 남겨둘 것, 버릴 것, 뮌헨으로 보낼 것 그리고 한국으로 가져갈 것으로 분리하는 작업만 며칠 걸렸다.  


나머지는 혼자 하겠다며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에 가있다가 뮌헨에서 만나자고 했다.  독일로 가게 되면 한국을 자주 못 갈 수도 있으니 충분히 있다 오라고 했다.  오랜만에 한국에 오래 머물 수 있어서 좋긴 했지만, 남편에게 다 맡기고 떠나는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햐~~ 이렇게 배려심이 많다니 고맙기도 한데, 순전히 등 떠밀려 가는 기분이다.   


'빠트린 거 없이 잘 부쳤겠지?'  
'메이드에게 다 떠맡기고 사라지지 말라고 했는데,  어쩌고 있을는지..'
'이삿짐센터에서 오면 지켜보고 있으라고 했는데, 잘하고 있겠지?'


한국에 가있는 동안에도 어찌하고 있을지 불안 불안하더니,  역시나 버리라고 한 건 가져오고, 가져오라고 한 건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짐을 저렇게 두고 한국 가라고 더 불안했고, 정신없어서 동네 마실 가는 차림으로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특히 우리 아들의 슬리퍼는 좀 더 심했다




싱가포르의 생활도 참 좋았지만,  사계절이 있다는 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깨달았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쭉 자라온 아이들이 어느 날 문득 "엄마 한국이 참 좋아" 그런다. 왜 좋냐고 물어보니,  땀을 안 흘려서 좋다고 했다.  계절을 인식하는 나이가 된 아이들에게 사계절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활기가 넘치는 여름을 흔히 축제의 계절이라고 한다. 가을을 심하게 타는 나에게 싱가포르의 생활은 축제만 있는 천국 같았다.  첫 5년 동안은  여기가 지상낙원이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는데, 늘 축제 같은 일상은 나를 나태하게 만들기도 했다.


추운 것도 싫지만, 여름이 끝나 갈 즈음부터 가을을 타기 시작한다. 올 한 해 어떻게 보냈는지를 돌이켜보며 반성하기도 했다.  새해 첫날의 일출을 보며 비장한 각오로 새해 다짐도 하게 되는데, 적도 근처의 싱가포르는 일출이 없다.  일 년 내내 7시가 되면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데, 계란 노른자처럼 떠오르는 그런 일출을 볼 수는  없다. 날이 밝아진다 싶으면 어느덧 태양은 머리 위를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이런 여름만 있으니  한 해가 바뀌는 느낌도 없고 그냥 즐거운 새해맞이 파티만  내게 있었다.  




뮌헨행 이사를 결정하게 된 이유 중에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바람도 있었다. 싱가포르도 보태닉 가든이나 바닷가 근처에  멋진 놀이터가 있긴 했지만, 덥고 습한 날씨와 갑자기 쏟아지는 게릴라성 폭우 때문에 이용하는 게 자유롭진 못했다. 그리고 뎅기모기 같은 위험한 모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렇다 보니,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놀이 시설들이 고맙고 반갑기도 했지만,  아이들이 쇼핑 문화에 먼저 접하는 게 싫기도 했다.  뮌헨에 여행 왔을 때 호수에서 수영하는 걸 보고 감격받았던 적이 있다.  인공적이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속에서, 돈 들이지 않고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이런 환경이 정말 좋았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뜨거운 햇살 때문에 생기는 잡티와 실내에만 있어도 까매지는 내 피부를 다시 하얗게 돌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그래서 흐리고 쌀쌀한 여름이 괜찮았는지도 모른다.


추운 여름이 피서 같아서 좋다고는 했지만, 짐을 푸는데 발이 시렸다. 8월 한 여름에 추워서 발이 시리다니..... 여름이 이 정도인데 가을이나 겨울이 되면 얼마나 추울까? 추운 건 더운 것보다 더 싫은데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맑은 날의 햇살은 여기가 더 뜨겁다. 여기 사람들은 비타민 D 복용을  중요시할 정도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싫다고 했다.  비가 계속 오는 날엔 나에게 괜히 이런 날만 경험하게 해서 미안하다고까지 했지만 난 좋다고 했다.  흐려서 얼굴에 잡티 생길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햇살이 정말 뜨겁다.  겨울도 맑은 날엔 햇살이 엄청 강하다.  이건 예상 못했다. 이런~~~~~


그렇지만
뮌헨, 우리 친하게 지내보자꾸나!!


이전 03화 어떻게 양배추랑 양상추가 헷갈리냐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