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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Jan 29. 2021

이러려고 돈 쓴 건 아닐 텐데...

뮌헨 가얏고의 독일 적응기 - 우리 눈은 언제 치워줄 건가요?

펑~~~ 펑 눈이 옵니다~
하늘에서 눈이 옵니다~
계속 계속 눈이 옵니다~

자고 일어나니 온천지가 눈에 파묻혀 마치 겨울 왕국에서 잠을 깬 기분이다.  올해는 눈이 안 온다 싶었는데,  역시나 1월에 접어드니 자주 내린다. 이번 2박 3일간 쉴 새 없이 내린 눈을 보고 있자니,  그해 겨울이 생각났다. 그때도 1월이었다.


2018년 1월에 폭설로 주말 포함해서 6일간 휴교령이 내려진 적이 있다.  집 앞을 다니는 트램도 끊어진 상태라 영화 ‘투모로우'처럼  세상에서 고립된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폭설주의보가 내리려나 하는 생각도 잠시, 현재 뮌헨은  4개월째 코로나로 인해  봉쇄된 지금 상황이라 폭설주의보가 내려진다 해도  집콕하는 지금의 일상과 달라질게 뭐가 있겠어?  


'아~~~ 이쁘다'라며 눈 내리는 풍경을 평화롭게 바라보는 나와 달리,  남편에게는 '눈? 올 테면 와봐라!'라는 식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월동준비를 끝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흐뭇함 내지 편안함 같은 거다.

2018년 1월.


그해 겨울, 눈을 치우느라  무척 고생한 남편은 겨울이 오기 전부터 걱정을 하더니, 결국 눈 치워 줄 사람을 고용했다고 한다.  뮌헨에는 가정집 앞의 눈을 치워 주는 일을 하는 사람( 겨울 서비스, Winterdienst)이 있다.  틈새시장을 공략한 이런 직업은 눈이 자주 오는 곳이라면 어디건 있지 않을까 싶다.


오랫동안 적도 근처의 싱가포르에서 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도 눈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던 지역에만 살았던 우리는 눈을 치워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요령도 없어서 그해 겨울엔 남편과 아이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나마 모든 게 놀이처럼 생각되는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남편에겐  고생한 기억뿐이다.


눈이 내리면 수시로 치워줘야 수월했는데,  눈이 그치기만을 기다렸다가 꽁꽁 얼어버린 거다. 뒤늦게 얼어붙은 눈을 깨면서 치우느라 여간 고생이 아니었나 보다.  나한테는 걱정 말고 편히 있으라고 하더니...


뮌헨은 눈은 자주 와도 기온이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닌데, 그해 겨울은 유독 춥기까지 했었다.


밤새 내린 눈이 지하로 내려가는 주차장 입구를  막아 버려 차를 꺼낼 수도 없었다. 게다가 눈을 열심히 치우고 돌아서는데,  제설차량이  도로 위에 쌓인 눈을 옆으로 밀어내며 지나가는 바람에,  도로의 눈이 우리 집 앞으로 다시 쌓였다고 했다.  허탈해하는 남편과 눈이 마주친 제설차량 운전기사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어깨를 으쓱하며 지나가더란다.

2박 3일간 쉴 새 없이 내린 후 겨울왕국으로 변해 있었다.


눈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사람들에게  영웅담처럼  그때 이야기를 하던 남편이 눈을 치워주는 사람이 있다는 희소식을 들었다. 대신에 눈을 치울 때마다 돈을 주는 게 아니라  월정액을 지불해야 한다. 눈이 오지 않으면 그 돈은 그냥 날아가는 게 보험과 같다. 그래도 상관없다며 옆집이랑 서로 반반씩 부담하는 조건으로  합의하여 12월에 사람을 고용했다.  흔쾌히 승낙하는 걸 보면, 옆집 아저씨도 그동안 눈 치우느라 고생이 많았나 보다.  


머피의 법칙


12월엔 눈이 잘 안 오는 편이긴 하지만, 올해는 유독 더 안 왔다.  1월에 접어들어 첫눈이라고 내린 눈은 진눈깨비였고 그 이후엔 싸라기 눈이다. 며칠 오나 싶더니  그다음 며칠간은 기온이 영상으로 바뀌면서 저절로 녹았다.


이럴 줄 알았다. 머피의 법칙은 늘 우리를 따라다니지.


드디어 함박눈이 내린 날, 눈 치워주는 아저씨가 올 생각을 안 한다. 전화를  받지도 않는다.  결국 가장 일찍 출근하는 옆집 아줌마가 차를 빼야 하니 혼자서 눈을 치웠다고 했다.


이집저집 눈 치우느라 동분서주하는 아저씨,  우리가 필요할 때 바로 와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당연히 우리 집뿐 아니라 다른 집들도 아저씨와 계약했을 텐데,  그 생각을 못했다. 혼자서 일하시는 건가? 그리고 눈이 3cm 이상 쌓였을 때만 오고 하루에  딱 한 번만 온다고 했다.   


이건 우리가 기대한 거랑 다르잖아!

아저씨가 다녀간 다음에 눈이 안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눈이 하루 종일 온다. 쉴 새 없이 온다.


결론은 눈이 계속 온다면 아쉬운 우리가 치워야 한다는 거다. 결국 이 아저씨는 옆집 아저씨에 의해 잘렸고 새로운 사람이랑 계약을 했다고 한다. 교체되는 그 사이에 또 폭설이 내렸다. 그것도 2박 3일간 쉴 새 없이.


이번에 새로 계약한 아저씨에게 기대를 가졌는데,  이번 조건도 썩 마음에 들진 않는다.

공간 넓은 대문 앞과 현관 앞을 치우면 추가 비용이 든다고 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인도 부분만 치워달라고 했단다. 이게 뭐야?  


결국은 현관 앞과  대문 밖은 남편과 아이들의 몫이다. 이런 겨울 서비스는  왜 신청했지?


이제 우리 애들은 눈 치우는 전문가가 됐다.  현관 앞 눈은 아이들의 몫이다. 눈이 오면 알아서 잘 치워놓는다.  기특한 아이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너스를 줘야겠다.


대문 밖 눈을 담당하는 남편도 이제 익숙해진 거 같다. 어제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치우니 힘들다기 보단 운동을 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올해로 뮌헨 생활 6년 차에 접어든 우리는 이제 눈도 접수했다


눈이 내린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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