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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Feb 16. 2021

곰손 남편

곰손 남편에겐 내가 맥가이버!

얼마 전에 곰손, 흙손, 금손이란 용어를 들었다.  손재주가 없는 사람을 곰손, 흙손, 심하게는 똥손이라 부른다고 한다. 반대로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금손이라고 한단다.


금손이 많기로 유명한 독일 땅에서 살고 있는 남편은 곰손이다. 곰손 중에서도 좀 더 심한, 차마 내 입으로 말하기 뭐한 '심한 곰손'이다.  남의 집 남편들은  차 수리뿐 아니라  집안 인테리어나 집수리 정도는 알아서 척척  잘한다는데, 우리 집 남편은 그쪽 방면엔 완전 젬병이다.  


스웨덴 가구 회사 IKEA는 이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 덕에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대신 DIY 제품이라  소비자가 직접 운반하고 조립해야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직접 조립하는 시스템인데, 남편은 웃돈 주고 사람을 불러 배송부터 조립까지 다 부탁을 한다. 이 가구회사를 이용하는 최대 장점을 우린 활용하지 못하는 거다.   독일 지점은  금손이 많아서인지 돈을 줘도 그런  서비스는 받을 수 없다.


언젠가는 새로 사 온 선풍기의 포장 박스를 열자마자  바로 터져나오는 남편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었다.  박스 안에는 분해된 선풍기가 들어있었다. 선풍기를 직접 조립하는 과정에서 아래의 받침대와 기둥 부분의 전기선도 직접 연결을 해야 했다. 대충 봐도 전선을  빨간색끼리 연결하고 파란색끼리만 연결하면 될 거 같은데, 남편은 건드리지도 못하게 하고 사람을 부르겠단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다.


아니, 학교 다닐 때  '기술 ' 안 배웠어?!!  


그런 곰손이 금손 많은 독일 땅에 이사를 왔으니 이사 온 초기엔 매일매일이 멘붕이었다. 

우리 집 천장등은 전부 할로겐 매입등이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고, 전기공을 불렀다.


독일은 전기공들이 매우 바빠서 부른다고 바로 달려오는 경우는 드물다.  다행히 우리 집은  전기뿐 아니라 수도, 보일러, 정원 등등 관리를 해주는 담당자가 있다.  한 회사가 수도나 난방시스템 쪽을 관리해 주고, 정원이나 전기 쪽을 관리해 주는 전문가들이 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집주인에게 연락하지 않아도 되니 무척 편하다.  

이런 업체들은 우리 집처럼 곰손 남편을 둔 가정을 공략한 틈새시장인 거다.


집 지하실에 전문 목공소는 저리 가라 할 정도의 훌륭한 작업실을 가지고 있는 금손들이 독일에는 꽤  많다. 그들에게는 일종의 취미 생활이라고 했다. 그러나 모든 독일인이 금손이란 선입견은 버려야 한다.  우리 옆집 아저씨도 곰손이다. 옆집뿐 아니라 내 주위 사람들 죄다 곰손이다. 이런 거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물어보면 다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니 담당 업체에 전화하라고 한다.  어쩌면 우리 동네는 곰손들의 집성촌일 수도 있다.




수명을 다 한 할로겐 등의 교체를 위해  전기공이  3~4번 정도는 왔다 갔다.  매번 출장으로 바쁜 남편은 예약만 해두고 집엔 늘 없었는데,  어느 날 전기공 아저씨가  조용히 날 부른다.


할로겐 매입등 교체 정도는 누구든 쉽게 할 수 있으니 비싼 돈 들여 자기를 부르지 말고 앞으로는 직접 갈라고 한다.  허걱~~! 하긴 아저씨 같은 고급 인력이 고난도의 전기 문제를 해결해줘야 뿌듯하겠지.  돈도 좋지만 바쁜데 와서 천장의 전구만 갈고 가는 건 고급 인력의 낭비란 생각도 들었을 거다. 그리고 상당히 합리적인 독일 사람의 눈엔 헛돈 쓰고 있는 우리가 안타까웠을 수도 있었을  거다.


곰손 남편이랑 사는 나는야  맥가이버!


곰손 남편이 출장 간 어느 날, 또 교체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어차피 남편이 있어도 별 도움은 안될 터라  전기공 아저씨한테 미리 사둔 비상용 전구로 내가 직접 갈아보기로 했다.


처음 갈아보는 거라 전등을 어떻게 빼내는지도 몰랐지만, 친구가  보내 준 유튜브 영상을 보며 교체했다. 처음이 힘들었지, 알고 나니 너무 쉬워서 웃음이 났다.  교체 후  출장 갔다 돌아온 남편에게 자랑했더니, 잘했다며 칭찬을 하고는 다음 날 전구를 왕창 사 와서 고장 난 거 전부 교체하라며 안겨준다. 이런 황당한 경우가!!! 왠지 낚인 기분이었다.



며칠 전에는 딸이 자기 방의 불을 켜는 게  갑자기 감전이 됐다고 했다. 심하진 않았지만  처음 있는 일이라 놀라기도 하고 따끔했다고 한다.  그러곤 애들 방이 있는 2층 전체에 정전이 되었다. 아무래도 누전 같은데, 이유는 모르겠다. 내려간 누전 차단 버튼을 그냥 올리면 될 거 같은데, 누전 차단기가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한참 후  

겁먹은 남편이 사진을 찍어 보여주는데, 누전 차단기 사진이었다.  


역시 차단기가 내려가 있었다. 나를 못 믿고  다음날 전기공을 부르겠다는 남편을 다독여 차단기를 올리게 하니,  역시나  바로  불이 들어왔다.  남편과 아이들은 거의 심마니가 산삼을 발견하고, '심봤다'를 외쳐대는 수준의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런 모습을 보니 내 두 어깨가 으슥해진다. 난 우리 집의 맥가이버가 됐다. 




곰손 남편의 진가는 퀴즈 나이트(quiz night)에나 참석해야  발휘된다. 각종 퀴즈 나이트에 참석한 우리 팀을 늘 우수한 성적으로 각종 상품을 받게 해 주는데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남편이다. 작년 애들 학교 행사에서는 영예의 1등이 되어 상품도 많이 받았다. 그렇지만 퀴즈 나이트가 없는 평소엔 남편의 박학다식은 큰 쓸모가 없다. 박학다식한 남편보다 금손 남편이 살림엔 도움이 되니 더 좋다. 


우리 또래  남학생들은  '기술'을 학교에서 배웠는데,  외국 나와서 살아보니 우리가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 배웠던 교과 과정은  참 훌륭했단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안부 차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가  남편의 지독한 곰손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시어머니 왈 '미안하지만 이제 A/S 기간이 끝났으니 적당히 업그레이드시켜서 잘 데리고 살라'고 하신다.


시어머니의 유쾌한 답변에 내가 빵 터져서
남편을 잘 업그레이드시키기로 했다.


우리 집에는 이런 전기 단자함(컨트럴 박스)이 여러 개가 있다. 이런 걸 보면 덜컹 겁이 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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