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뮌헨 가얏고 Jun 21. 2021

이웃인데, 화장실 좀 써도 되나요?

정말 도둑이 염탐하러 온걸까?

4월 초쯤, 혼자 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비디오 화면을 보니 웬 남자분이 서 계셨다.

누구냐는 질문에 본인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독일어라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독일 6년째 살고 있지만, 독일어는 여전히 낯설다)

"미안하지만 난 독어를 못 합니다. 영어 할 줄 아세요?"(이쯤 되면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은 그냥 떠난다).

그러나 이분,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자기는 이웃인데 화장실 좀 사용할 수 있겠냐는 거 였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우리 옆집 사람은 분명 아녔다. 공중화장실이 잘 없는 독일이라 나도 화장실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많아서 딱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긴 했지만 혼자 있는 집에 낯선 남자를 들이긴 불안했다. 현관문 옆에 손님용 화장실이 있긴 했지만, 모르는 남자가 들어 와서 그 화장실을 사용하는 게 찝찝하기도 했다. 게다가 남자분이니 왠지 작은 일 보려고 남의 집 초인종을 누르진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집 밖에 화장실이 있었다면 사용하라 했을지도 모르겠다.


얼마나 급했으면 남의 집 초인종을 눌렀을까? 하는 마음부터 이건 독일 방식인가? 하는 생각까지. 짧은 순간 불편한 마음과 안쓰러운 마음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지만, 죄송하다고 말했다. 알겠다며 돌아서는 남자를 보니 내가 너무 야박했나 싶은 게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의 불편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시작된 생각들이 점점 불길한 생각으로 바꼈다.


'아니 근처에 맥도널드도 있는데, 왜 남의 가정집의 벨을 누른 거지? ', '근처에 병원도 있고 레스토랑도 있잖아, 이상한 사람 아냐?', '그래,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그런데 진짜 화장실 사용이 목적이었을까? '


 순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남편한테 전화했다.


"방금 누가 화장실 좀 쓸 수 있냐고 초인종을 눌렀어. 주위의 독일인들에게 이런 경우가 흔한 건지 물어봐"
"어떻게 그런 황당한 일이 있어? 많이 놀랐겠다, 괜찮아?"
"응, 나 순간 무서워서 쓰레기도 못 버리고 집 안에만 있어"
"그래, 나가지 마, 그 사람 수상해. 쓰레기는 내가 가서 버릴게. 내가 한 번 알아보고 다시 연락할게. 봐서 경찰에 신고라도 하자'

 

휴~ ~~ 문 안열어주길 잘 한 거였다. 몇 년 전 같았으면 딱한 마음에 문을 덜컥 열어 줬을 지도 모른다. 




2015년 9월 초쯤, 뮌헨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이다.

뮌헨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1960년대 지어진 집으로 엄청나게 크고 멋지긴 했지만, 집안의 시스템들은 구식이라 비디오 인터폰이 없었다. 게다가 독어도 못 하니 벨을 누르면 무조건 문을 열고 확인을 했었다. 치안이 잘된 싱가포르에 오래 살다 보니 내가 무뎌진 점도 있었고, 뮌헨도 안전한 치안으로 유명한지라 큰 의심 없이 문을 열었다.


여전히 더운 날씨인데 긴 코트를 입고 웬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걸인이라고 하기엔 깔끔해 보였고 신사라고 하기엔 남루한 모습이었다. 패션도 상당히 독특했다. 손엔 장갑을 꼈는데 손가락 부분은 뚫려있는 그런 장갑이었다. 멋쟁이 집시같았다.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밝은 목소리로 'Hallo!' 라고 했다. 그 당시 내가 알고있는 몇 안되는 독어다. 나의 '안녕하세요' 속에는 누구냐? 뭣때문에 왔냐?가 다 포함되어 있다. 아저씨도 문을 열어준 이가 독어도 못하는 아시아인이라 살짝 당황한 눈치였다. 독어로 현관 앞 화단을 가리키며 뭐라 뭐라 설명을 했다. 오랫동안 비워둔 집에 이사 온 거라 집을 손보러 온 사람인가 싶었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며 현관문은 활짝 열어둔 채 아저씨를 세워두고 2층 방으로 가서 핸드폰을 가져왔다. 남편에게 전화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나쁜 사람이었으면 어쩌려고?' 지금 그 생각을 하면 아찔하다.  그 당시엔 아저씨를 세워두고 문을 닫는 게 예의가 아니란 생각 밖엔 없었다. 현관문을 활짝 열어두고 사라진 나를 보며 아저씨도 황당했을 거 같다. 그 아저씨는 잔디관리를 하는 거름 같은 걸 팔러 온 상인이라고 남편이 나중에 말해줬다. 별일 없어서 천만다행이었다. 




이사 온 첫해엔 우리 집 차고 문의 자동 여닫힘 센서가 고장이 난지도 모르고 외출했던 적이 있었다. 집으로 왔을 때 활짝 열린 차고 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분명 문이 닫히는 걸 봤는데 아녔나? 나의 착각인가 싶었다. 첫 번째는 내 실수인 줄 알았는데, 두 번째 그런 일이 또 생기고 나서야 센서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었다. 다행히 두 번 다 우리 집은 무사했었다.


그렇게 여긴 안전한 곳이라 방심하고 있었는데 크리스마스 즈음 경찰서에서 안내문이 날아왔었다. 크리스마스 기간에 빈집을 노린 도둑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니 절대 초인종이 울렸다고 바로 문을 열어주지 말고 꼭 스크린으로 확인을 하라는 안내문이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 사람 사는 지역에 도둑이 없을 순 없겠지. 그동안 난 참 운이 좋았구나했다. 그 이후엔 절대 함부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화장실 좀 쓰자는 그 남자가 가고 남편과 통화를 한지 10분쯤 후에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방학 기간이라 빈집인지 확인하기 위해 도둑이 돌아다닐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 남자가 초인종을 눌렀을 때 독일학교는 방학 중이었다. 외국엔 3월 말이나 4월 초쯤 부활절 방학이 있다. 우리 애들은 국제학교에 다니기 때문에 독일학교와 방학시기가 약간씩 다르다. 옆집은 휴가중이었다. 아마 옆집이 비었다는 걸 알고 우리집을 확인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빈집털이 범의 수법이 미리 와서 초인종을 눌러보고 빈집이란 게 확인이 되면 대문에다가 자기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사인을 해두고 나중에 집을 털러 온다고 했다. 오늘 그 남자도 염탐하러 왔다가 벨을 눌렀는데 내가 답을 하니 그냥 횡설수설했을 거란 거다. 아마 그런 범죄가 종종 있나 보다. 


'그래, 세상에 100% 안전이란 게 어딨겠어?!' 우리 집엔 옆집에서 설치한 CCTV가 있고 집안엔 보안시스템도 설치되어있다. 아직까진 별 탈 없이 지냈지만,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겠다. 혼자있기에 살짝 무섭기도 했다. 독일에서 제일 살기 좋은 도시가 뮌헨이라고 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치안이 잘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 있는 집에 도둑이나 강도가 침범할 정도로 위험한 지역은 아니겠지? 어쩼든 그런 사람이 다신 안 찾아왔으면 좋겠다.


안타까운 마음에 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했다. 그 남자가 정말 염탐 나온 도둑이라 가정하에 상상을 해보면, 도둑도 영어까지 사용해야 먹고 살 수(?) 있는 건가? 물론 독일인이 아녔을 수도 있다. 또 그 와중에 나는 위험하단 생각보단 낯선 남자가 우리 집 화장실에서 큰일 보고 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먼저했다는 것도 우습다. 낯선 남자가 우리 집 화장실을 좀 사용하자는 촌극에 혼자 별별 상상을 다 해본 하루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독일 음식에서 향수를 달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브런치 시작하기

카카오계정으로 간편하게 가입하고
좋은 글과 작가를 만나보세요

카카오계정으로 시작하기
페이스북·트위터로 가입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