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우어 크라우트(SauerKraut), 내 너를 사랑하리라!
요즘은 예전에 비해 외국사는 게 크게 힘들지 않다고 생각한다. 향수병도 크게 없다. 그 이유 중에는 인터넷의 발달이 한몫한다.
다양한 메신저 앱에서 제공하는 무료 전화 덕에 통화도 맘껏 할 수가 있다. 심지어 얼굴까지 보며 통화할 수 있다. 시간이 없어서 통화를 못하지 비용이 많이 들어서 못하진 않는다. 유튜브나 넷플릭스로 한국 방송도 거의 다 볼 수 있고 각종 소셜 네트워크 활동까지 하다 보면 내가 외국 살고 있단 사실을 잊어버릴 때도 많다. 물론 오프라인 모임엔 참석할 수 없으니 그땐 아쉽다. 그런 모임도 작년과 올해엔 코로나 팬데믹때문에 금지되어서 최근엔 모임 사진 보며 아쉬워할 일도 없었다.
그 대신에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향수병에 많이 걸린다. 싱가포르에 살던 초기엔 곱창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곱창 때문에 한국 가고 싶을 정도였었다. 그러다 어느 날 까르푸에서 손질 잘된 곱창이랑 돼지 막창을 사 먹을 수 있고 난 뒤부터는 향수병이 싹 사라졌던 적도 있었다.
음식은 단순히 먹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번진다. 그럴 땐 비슷한 맛을 내는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도 잘 버틸 수가 있는데, 그렇지 못하면 향수병이 아주 심해진다.
독일 산지 6년째 접어들었지만, 정통 독일 음식을 먹어본 적은 별로 없다. 맛이 없어서라기 보단 메뉴판에 적혀있는 요리법이 크게 끌리지 않아서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땐 학센을 좋아했다. 족발이 먹고 싶으면 학센을 먹으라는 말에 관심을 가졌지만, 우리나라 족발이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바삭바삭한 껍질 부분은 맛있지만 살코기 부분은 뻑뻑해서 먹다 보면 질리기 십상이었다. 양이 많아서 여러 명이 나눠 먹으면 그나마 뻑뻑한 살코기를 많이 먹지 않아서 좋을 텐데, 우리 집 식구들은 학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많은 양 때문에 먹다가 질리기 일쑤였다. 옥토버페스트에서도 항상 치킨(반마리) 구이를 먹었고, 어쩌다 가는 독일 식당(비어가르텐)에선 보통 치킨 샐러드 같은 걸 먹었다.
얼마 전 갑자기 독일 음식이 너무 먹고 싶었다. 2년 전 독일 친구가 자기 집에 초대해서 직접 만들어준 로스트비프가 생각났다. 그날 분위기도 좋았고 음식 맛도 일품이었다. 그런 훈훈한 기억때문이었을까? 따뜻한 음식이 먹고 싶었는데, 친구의 로스트비프가 생각나면서 독일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유독 겨울이 길었고 봄엔 계속 비가 내렸다. 스산한 날씨 탓에 따뜻한 뭔가가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7개월 간의 코로나 봉쇄 후, 식당 야외석만 연다는 얘길 듣고 바로 비어가르텐을 검색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추운 날씨가 독일 정통 음식을 간절히 생각나게 했다. 화창한 날 야외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싶어서 비어가르텐을 간 적은 있지만, 독일 정통 음식이 먹고 싶어서 가고 싶은 적은 처음이었다.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난 돼지고기를 흑맥주에 절여서 만든 요리를, 아이들은 소시지를 시켰다. 아이들의 음식은 사이드 디쉬(side dish)로 자우어크라우트(Sauerkraut)가 나왔는데 아이들이 먹질 않았다. 맛을 보니 어렸을 때 먹은 볶은 김치 맛이랑 똑같아서 깜짝 놀랐다. 고춧가루가 없어서 맵지 않았지만 그 맛조차 익숙했다. 아마 어렸을 때 매운 걸 잘 못 먹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 먹어본 볶음김치 같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라따뚜이'에서 까탈스러운 미식가가 가난한 어린 시절에 엄마가 해주셨던 '라따뚜이'의 맛을 보고 감동해서 눈물을 펑펑 흘렸던 그 심정이 이해가 되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때까지 자우어 크라우트라 생각하고 먹었던 거랑 완전히 달랐다. 도대체 그동안 내가 먹은 건 뭐였지? 이때 주문한 내 음식에도 사이드 디쉬(side dish)로 나온 양배추 절임이 있었다. 난 그게 자우어 크라우트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 말로는 그건 코울슬로라고 했다. 왜 진작에 자우어 크라우트를 안 먹어봤던 걸까? 후회막심이었다. 아이들인 남긴 건 아까워서 전부 포장해 달라고 해서 며칠 동안 밥 먹을 때 먹었는데, 완전 고향의 맛이었고 밥도둑이었다.
냄새가 향수를 자극한다
사람이 습도, 온도, 색상, 냄새로 어떤 장소를 떠올릴 때가 많다. 그건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기도 하다. 향수병이란 것도 잘 견디다가도 순간적으로 훅하고 올 때가 있다. 어디선가 풍겨오는 김치찌개 냄새, 자장면 냄새 때문에 향수병이 도진 적도 있었다. 스키장에서는 어묵탕 냄새를 맡은 적도 있었다.
한국인이 거의 없는 우리 동네를 걷다가 김치찌개 냄새를 종종 맡은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 시골 외가댁에 놀러 가면, 외할머니께서 밖에서 놀다가도 밥때가 되면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시계가 없었지만 동네에서 음식 냄새가 풍기면 그때가 밥때였다. 독일의 주택가에서 밥때가 됐는데 한국음식 냄새가 풍기다니.. 어느 집일까? 한류 열풍에 빠져서 정말 김치찌개를 끓이는 걸까? 어릴 적 외가댁에 놀러 간 기억부터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그리웠고 김치찌개도 먹고 싶었다.
며칠 후 친구네 집에 전해줄 물건이 있어서 잠시 들렀는데, 큰 찜통 같은 데다 뭘 끓이고 있었다. 거기서 나오는 냄새가 바로 김치찌개 냄새였다. 벨기에 친구라 김치찌개를 만들 일은 없었겠지만,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물어보니 양배추라고 했다. 냄새가 김치찌개 같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며 웃었다. 한국 유학생들이 김치찌개가 먹고 싶을 때 자우어 크라우트에 고춧가루를 넣고 끓여먹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제 공감이 갔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쩌면 그 친구도 자우어 크라우트를 만들었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양파를 볶을 때 자장면 냄새가 난다는 것도 알아냈다. 우리가 중국집 근처를 지나가면 풍겨 나오는 냄새를 자장면 냄새라고 단정지었는데 그 냄새가 양파 볶는 냄새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정체를 알아내지 못한 냄새가 있다. 그건 바로 어묵탕 냄새다. 스키장에서 맡은 어묵탕 냄새의 정체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매번 갈 때마다 났다면 알아냈을 수도 있는데, 그 어묵탕 냄새는 주택가나 이탈리아 레스토랑 근처를 지나갈 때도 맡은 적이 있다.
알프스의 산자락에 위치에 있는 해발 2천 미터의 스키장에서 눈보라가 쳐서 앞도 안 보일 정도의 추운 날이었다. 중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뺨이 얼어서 감각이 없을 정도로 추워서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었다. 스키를 타고 내려와서 식당 근처에서 맡은 어묵탕 냄새는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알프스 자락에서 풍겨 나오는 이 어묵탕 냄새의 정체는 뭘까? 어묵탕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이 냄새의 음식을 먹기라도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간절함은 마치 임신 초기에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할 때 떠오르는 음식, 그거 하나만 먹으면 살 거 같은 그 간절함과 같았다. 안타깝게도 그 음식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스키장 식당 메뉴판엔 국물요리 자체가 없었다. 지금도 그 냄새의 정체가 정말 궁금하다.
코로나 때문에 매년 1~2번은 가던 한국을 못 가고 있다.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나도 큰 상태였는데, 독일 음식으로 향수를 달랠 수 있어서 당분간은 잘 버틸 수 있을 거 같다. 만들어 먹으면 될 텐데 하겠지만, 어렸을 때 먹었던 그 김치볶음과 같은 음식 맛을 내기가 힘들다.
자우어 크라우트! 앞으로 내 너를 사랑하리라!!
그런데 어디서 살 수 있을까? 내가 직접 만들어도 같은 맛을 낼 수 있을까?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