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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 가얏고 Jul 05. 2021

치킨 한 조각에 마음 상한 사건

사춘기 딸 vs 갱년기 엄마

자고로 먹는 거로 싸우는 것만큼 유치한 일도 없겠지만, 현실로 닥치면 이것만큼 서운할 때가 없기도 하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2주 연속 치킨 때문에 가족들에게 서운한 일이 있었는데, 두 번째엔 결국 내가 폭발하고 말았다.  


매주 금요일은 K 할아버지네 치킨을 사 먹는 날이다. 코로나 이후 우리 가족의 주례 행사갸 되었다. 독일은 코로나 봉쇄조치가 내려지면서 작년 3월 말부터 레스토랑에선 포장이나 배달만 가능했다. 코로나 상황에 따라 봉쇄 단계가 조정되긴 했지만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건 오랫동안 불가능했다. 원래 뮌헨엔 음식점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는데 거기에 포장 가능한 메뉴를 선택하려니  그 선택의 폭은 더욱더 좁아졌다. 특히 내가 사는 곳은 더 심하다.


내가 사는 뮌헨은 독일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이자 가장 부자 도시라는 얘기를 자주 한다. 왜냐하면 내가 SNS에 올리는 사진을 봤거나 나의 독일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에는 내가 어느 산간벽지 두메산골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뮌헨이 속해있는 바이에른주에서는 식당을 오픈하기가 쉽지 않다. 보통 외국으로 이민 가신 분 중에서는 음식 솜씨가 좀 있다 하시는 분들이 식당을 하신다. 그러나 여긴 식당이건 베이커리건 가게 안에 주방을 설치한다면, 자격증이나 요리학교 졸업증이 필요하고 10년 정도의 경력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들었다. 그렇다 보니 뮌헨의 레스토랑 종류는 다양하지가 않다. 대부분이 독일 식당 아니면 이탈리아 식당이다. 뮌헨은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라고 할 만큼 이탈리아인이 많이 살고 있어서 이탈리아 식당도 많다. 대부분의 포장 음식은 이탈리아 식당에서 해왔다. 가끔 인도식당이나 그리스 식당에서 포장해 오기도 했다.  


한국식당은 당연히 별로 없다. 가까운 프랑크푸르트만 해도 한국 슈퍼도 많고 꽤 맛있는 한국식당도 많지만 뮌헨은 아니다. 가끔은 한국식당까진 바라지도 않고 맛있는 아시아 식당이라도 좀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이다. 외식이 잦은 우린 메뉴 선택에 한계가 많은 이곳에서 늘 어디서 뭘 먹을까를 고민했다. 코로나 때문에 포장만 가능한 조건이 하나 더 늘면서 그 선택의 폭은 더욱더 상태에서 K 할아버지네 치킨은 특별식이다.


보통 우리가 시키는 메뉴는 정해져 있다. 아이들은 치킨텐더나 치킨 너겟으로 구성된  패밀리 팩을 나눠 먹는다. 치킨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남편은 햄버거를 시키는 편이다. 그리고 감자튀김은 꼭 집 앞의 M아저시네에서 사 온다. 아이들 말로는 K할아버지네 감자튀김보다 더 맛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상황에 따라 시키는 메뉴가 좀 달라진다. 큰 패밀리팩 사이즈를 시켜서 아이들과 같이 먹을 때도 있고  치킨 조각을 시켜서 혼자 먹을 때도 있다. 갓 튀겨낸 치킨을 한입 베어 물었을 때 기름이 쫙~~ 흘러나오는 그런 맛이 좋아서 한동안은 혼자 따로 치킨 조각을 시켜먹었다. 처음엔 2조각을 먹다가 나중엔 1조각만 시켜 먹었다. 코로나 이후 5킬로나 찌는 불상사가 발생하면서 먹는 양을 줄이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한 달 전부터는 따로 치킨 조각조차도 시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남기는 한두 조각이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2주 전에 처음 일어났다. 여느 때처럼 내 치킨을 따로 주문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아이들이 남기는 한두 조각을 먹으면 된다고 하고는 운동을 하러 갔다.  우린 배달보다는 꼭 직접 가서 사 오는데 이번에도 남편과 딸이 사러 갔다 왔다. 우리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데 중간에 고속도로까지 타야 한다. 뮌헨엔 K 할아버지 집도 많지가 않다.   


열심히 운동한 후라 완전히 허기진 상태였다.  아이들이 남긴 치킨텐더에 샐러드를 곁들여서 먹어야겠단 생각을 하면서 왔는데, 그날따라 아이들이 하나도 남겨놓지 않고 다 먹어버렸다고 했다.  아이들의 먹는 양이 늘었나 보다. 머피의 법칙이라고 하필 운동하고 허기진 날 아이들이 다 먹어버리다니!

 

우리 딸은 미안해서 웃는 건데 배가 고픈 나에게는 낄낄거리는 것처럼 들렸다. 야단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고 했던가? 미안하단 말도 없이 가만있는 아들보다 웃으면서 ‘엄마 우리가 다 먹어버렸어’라고 말하는 딸이 더 얄밉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배고프다고 하면 내가 먹던 것도 줘야 하는 게 엄마일 텐데 난 왜 그때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지! 못난 엄마.  배가 고프니 이성을 잃었었나 보다.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먹고  없었다.  한편으로 ‘그래 잘 됐다. 그냥 내 다이어트식을 먹자’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딸이 '엄마 다이어트한다고 생각해' 하는 말을 듣는 순간 울컥하고 올라왔다. 어린 딸이 내뱉은 말이 왜 그렇게 서운했을까?!!


미안하다 해도 신통찮을 판국에 뭣이라!!!


내가 한때는 먹깨비라 불릴 만큼 식탐이 많았던지라 허기가 지면 먹는 거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땐 그렇게 먹어도 살이 안 찌니 잘 먹는 걸  자랑처럼 여겼던 시절이었다. 난 살이 안 찌는 체질인 줄 알았는데 살이 안 찌는 체질은 없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알게 됐다. 내가 원해서 다이어트하는 것과 남에 의해 강제로 다이어트를 하게 될 때의 기분이 이렇게 달라지는 걸까? 오히려 기름진 음식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으로 여겼어야 했다. 나의 다이어트 계획에 차질이 없어졌으니 감사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운한 마음이 앞섰다.




두 번째 사건은 1주일 후에 다시 일어났다. 그날도 어김없이 치킨파티를 하기로 한 금요일이었다. 난 저녁을 일찍 먹는 편이지만 치킨을 먹기 위해 배고픔을 견디고 있었다. 낮부터 마시고 싶었던 스파클링 와인도 치킨과 함께 마시려고 참고 있었다.


이번에도 난 아이들과 함께 먹으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내가 뭘 먹을지 물어보지도 않았고 사 오지도 않았다. 확인하지 않고 지난주에 실수했으니 이번엔 큰 의심도 없이 난 기다린 내 잘못도 있다. 하지만 화가 났던 건 미안한 마음에 늘어놓는 부녀의 변명하려는 부녀의 핑계 때문이었다.  내가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며 치킨을 안 시켰기 때문에 안 사 왔다는 거다.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2주 연속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차라리 착각했다고,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고 했더라면 덜 화가 났으려나? 미안하다고 말은 했지만 그다음에 늘어놓는 변명은 핑계로 밖엔 안 들렸다.


남편이 자기 몫의 햄버거를 먹으라고 했지만 그땐 이미 배고픔보다는 마음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였다. 어떻게 물어보지도 않았을까?  난 치킨을 기다리며 스파클링 와인도 안 마시고 아껴두고 있었는데. 아들은 엄마 우리랑 같이 먹으면 된다고 하는데, 전날 캠핑 가서 고생하고 돌아온 딸은 자기가 배고프니 부족할 거라고 했다. 그 말이 또 서운해서 화를 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사실 배도 그렇게 안 고팠고 일부러 다이어트한다며 2일간 저녁을 굶었었다. 그냥 다이어트한다고 생각하면 됐을 텐데 왜 버럭 화를 냈을까?   


이성적으론 엄마인 내가 참 유치하고 멈춰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행동은 다르게 나오고 있었다. 지금 내가 그냥 넘어가면 다음에 또 이럴 거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 엄만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노래 가사나 '우리 시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만 좋아하신다'라며 시어머니 도시락에 생선 대가리만 잔뜩 넣은 며느리 이야기처럼 되면 안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딸은 딸대로 울면서 방으로 가버렸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과 서운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을 거다. 그 순간은 캠핑 갔다 와서 배고프다고 했으니 금방 내려와서 먹겠지 생각했다. 나 뭐지? 엄마 맞아? 왜 치킨 한 조각에 삐져서 딸한테 이럴까? 나 지금 갱년기인가?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도는데도 딸을 부르지 않았다. 유치한 엄마의 오기였다. 


남편도 사라지고 아들만 혼자 조용히 먹고 있었다. 그나마 아들은 먹어서 다행이었다.  나도 굶고 딸도 굶고 남편도 굶었다. 아니 남편도 굶은 줄 알았는데 뒤늦게 살짝 먹었단 걸 다음 날 알게 됐다. 다음 날 아침 쓰레기를 버리려고 보니 쓰레기 통 안에 빈 햄버거 상자가 있는 걸 발견했다. 결국 배가 많이 고팠을 우리 딸만 쫄쫄 굶은 건가? 뭐라도 좀 먹었어야 할 텐데. 뒤끝 없고 얼마나 살가운 딸이었는데 그날 우리 둘 다 서로 말을 안 했다. 이게 바로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춘기 딸과 갱년기 엄마의 신경전인 건가?    


이게 뭐람?  


날씨도 좋아서(독일의 여름은 해가 무척 길다) 정원에서 다 함께 치킨을 먹은 후에 다 같이 영화를 보려 했었다. 이게 우리가 만들어온 코로나 이후 불금 전통이었는데, 괜한 나의 식탐과 고집에 분위기를 망쳐버렸다.    


자기의 의견을 명확히 하는 건 중요하다. 남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상처 받고 토라지고 상대가 눈치를 보게끔 하는 건 서로에게 좋지 않다. 나 또한 좀 더 성숙해져야 했는데 그게 부족했다.


다음 날 딸이 나를 꼭 껴안아 주며 "엄마 미안해"하는데 왜 내가 먼저 다가가지 못했을까? 우리 딸이 엄마보다 훨씬 낫네. 이젠 먹는 거로 유치하게 다투지 말자. 좀 더 성숙한 엄마가 되어야겠다.    


딸! 미안해~~ 엄마가 좀 더 성숙해질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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