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알토 다리와 탄식의 다리
More than 10,000 steps per day
베니스엔 차가 들어올 수 없고. 교통수단은 보트 아니면 도보뿐이라, 3박 4일 동안 엄청나게 걸었다. 운동삼아 더 열심히 걸어 다녔더니 매일매일 만보는 족히 넘었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어도 다닐 때마다 새로운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니깐 현지인이 된 거 같아 좋았다. 언제 또 이렇게 베니스 안의 호텔을 내 집 삼아 베니스를 맘껏 돌아다닐 수 있을까!!
첫날은 멋 부린다고 샌들을 신고 다녔다. 편안한 샌들이라 별 무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발등이 다 까였다. 급하게 호텔 컨시어지(conciertge)에게 반창고가 있냐고 물었다. 여기저기를 한참 뒤적이다가 겨우 발견하고는 한 통을 다 가져가도 된다고 했다. 행여나 나처럼 급하게 찾을 손님이 있을 거 같아서, 그냥 2개만 달라고 해서 발등에 붙였다.
호텔 밖에 나가자마자 약국부터 찾았다. 반창고 한 통과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사서 가방에 넣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땐 늘 해열제며 몇 가지 상비약품을 챙겨 다녔었는데, 이번엔 코로나에만 집중이 되어 상비약품을 챙기는 건 싹 잊어버리고 왔다.
베니스는 물의 도시라 당연히 모기도 많을 텐데 생각조차 못했다. 한창 성장기라 열이 많아서인지 모기는 우리 아들 피만 사랑하였다. 대신 아들의 희생 덕에 우린 전혀 물리지 않았다. 첫날은 다행히 호텔이나 레스토랑에서 보관하고 있는 스프레이를 사용했지만, 우리 가족을 대표해 가장 많이 헌혈한 우리 아들은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늘 갖고 다녀야 했다.
미로와 같은 골목길
베니스 여행에 관한 정보들을 찾다 보면 '미로와 같은 골목길'이란 수식어를 아주 많이 접했을 것이다. 어떤 골목길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어떤 골목길은 카페가 있을 만큼 넓다. 어떤 길은 막혀있을 거 같은데 큰 광장이랑 연결이 되어있기도 했다. 골목길 중에서도 두 아파트 사이로 난 골목길은 좁고 별 재미가 없었지만, 가게들을 끼고 있는 골목길은 구경하는 재미가 솔솔 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골목길 중에서도 늘 지나쳐야만 하는, 나름 메인 골목길도 있었다. 이 골목길을 이용해 호텔도 갔고 산 마르코 광장도 갔고 유명한 리알토 다리도 갔다.
구글 지도와 곳곳에 붙어있는 노란색 안내표지를 보며 다녔다. 유럽의 올드 타운에서는 구글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경우도 있어서 구글 지도에만 의지하면 안 된다. 자칫하면 돌고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이 될 수도 있다. 돌다리도 두들기며 가라!
이번 여행처럼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는 골목길로 다니는 게 불안하기도 했다. 우리가 여행을 할 때만 해도 유럽에서는, 야외에선 마스크 착용을 안 해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우린 골목길을 다닐 땐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어서 마스크를 착용했었다. 가끔씩 좁고 어두워서 인적이 드문 골목길이 무섭기도 할 테지만, 이번엔 그 반대였었다.
탄식의 다리(Ponte dei Sospiri)
두칼레 궁전의 동쪽 면에 붙어있는 탄식의 다리. 난 베니스에 있을 땐 이 다리에 대해 몰랐었다. 블로그에서 '탄식의 다리'가 많이 나와서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걸까? 찾아보다가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났다. 난 그냥 지나가다 이뻐서 찍었을 뿐인데 완전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가끔 여행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하게 되는데, 한국말로 번역되어 쓰이는 이름은 큰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현지의 지도 위에서나 현지인에게 '탄식의 다리'가 어디냐고 물어볼 순 없으니깐. 그래서 알아둔다면, 원래 이름과 영어 이름을 모두 알아두는 게 도움이 된다.
탄식의 다리는 두칼레 궁전과 프리지오니 감옥을 잇는 다리로싸, 죄수들이 감옥으로 이송되기 직전에, 이 다리 위에서 베니스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탄식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카사노바가 이 감옥에 수감되었다가 탈옥한 후에 책을 썼다는 얘기도 있다.
리알토 다리, 1181년에 세워진 베니스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베니스를 그린 많은 회화 작품이나 사진에서 항상 등장하는 리알토 다리, 처음부터 지금처럼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던 건 아니라고 한다. 처음엔 목조로 지어졌던 것이 지금의 아케이드(아치형 지붕이 설치된 통로에 있는 상가)를 갖춘 아치형의 대리석으로 지어진 건 1551년 유명한 건축가, Jacopr Sansovin에 의해서다.
아케이드가 다리 위에 있어서 독특하다고 하지만 난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를 먼저 봐서 그런지 피렌체가 떠올랐다. 이 두 곳이 과히 르네상스 시대의 쌍두마차였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리알토 다리 근처는 상점들이 많아서 쇼핑하는 사람들과 사진 찍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소매치기도 많은 곳인데 지금은 사람이 없다. 낮엔 그나마 쇼핑객들이 좀 북적였지만, 저녁 7시경엔 코로나 방역지침으로 모든 상가가 문을 닫아서 사람이 없었다.
유럽의 여름은 해가 아주 길다. 거의 저녁 10시 반쯤이나 되어야 해가 뉘엿뉘엿해졌다가 11시가 되어야 캄캄해진다. 저녁 먹을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리알토 다리를 지나갈 때, 여전히 환하긴 했지만, 식당과 카페에서 켜 둔 불빛으로 대낮과는 또 다른 오묘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이뻤다.
베니스의 인기 있는 포토존 중의 하나답게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베니스의 상징, 곤돌라
118개의 섬과 200개가 넘는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베니스에서 배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지금은 곤돌라가 관광용으로 사용이 되고 있지만 예전엔 교통수단이었다고 한다.
곤돌리에(곤돌라 뱃사공)가 노를 저으며 세레나데를 불러주는 곤돌라는 베니스의 대표적인 상징물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이 곤돌라 뱃사공(곤돌리에, gondolier)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전엔 세습되었지만 지금은 곤돌라 학교(gondoietto)를 나와야 한다.
여러 언어와 강인한 체력, 베니스의 문화와 예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여러 시험에 통과해야 자격증이 나온다. 현지인들은 곤돌라 요금이 비싸서 거의 이용을 안 한다. 코로나로 관광객마저 없으니 곳곳에 정박된 곤돌라와 손님을 기다리는 곤돌리에가 단체로 앉아 있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었다.
이번엔 곤돌라 이용 금액도 할인을 해줬을 테지만, 코로나 상황에 노래를 불러준다는 게 편치가 않아서 우리는 탈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게다가 세레나데가 빠진 곤돌라도 별 흥미롭지 않았다. 역시나 지금은 살짝 후회된다. 가격이라도 알아볼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