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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Sep 24. 2023

찜질방, 수치심이여 떠나라!

회개하고 새롭게 태어나다

뭐니 뭐니 해도 혈육의 정을 회복하는 시간이 내겐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이다. 오자마자 미용실에 데리고 가서 파마시키고 눈썹 문신을 시켰던 내 극성 동생. 게다가 스포츠 마사지도 받게 하고 치아 치료도 주선했다. 그 특별한 경험은 언니와 동생이기에 해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아이 같았던 나를 바라보던 엄마,  언니, 동생 7명의 눈동자가 보고 싶다. 그 추억이 고맙다.


아, 찜질방, 내가 서울 살 때에는 없던 곳이다. 나는 목욕탕 세대다. 어릴 적 처음에 목욕탕에 갔을 때다. 다 벗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벗어라"는 촌뜨기였던 내게 꽤나 공격적이고 못된 말이었다. 이쪽 구석에 숨어서 윗도리, 저쪽 구석에 숨어서 아랫도리. 하나씩 흘려가면서 벗었다. 그리고 누가 볼세라 한쪽 손으로 가슴을 한쪽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리고 욕탕으로 뛰어들었다. 뜨거운 물에 잠수할 생각이었다. 빠른 동작이면 내 몸을 아무도 못 볼 것 같아서 순식간에 욕탕으로 뛰어드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학생, 양말 벗어”. 지금도 생각나는 귀여운  나. 내가 가장 많이 사랑해 주어야 할 나, 그 아이가 지금의 네가 될 때까지 너는 무엇을 그 아이에게 해 주었니? 세파에 시달리며 사는 동안 가진 상처에 반창고를 제때 붙여 주기는 했니? 상실감을 보상할 만큼 뜨겁게 나를 사랑하고 달구어 줄 수 있는 이 또 있을까? 찜질방 너만큼?


누런 황토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넓은 거실 공간에서 누워 있었다. 쿨쿨 자는 사람, 소근 대는 사람들, 한쪽에서는 먹는 것도 판다. 구운 달걀, 라면, 세상이 이토록 편안하고 재밌는 풍경이라니. 털썩 앉아있건 데굴데굴 굴러다니건 뜨거운 온돌 마루방에 들러붙어 익어버리던 상관도 없어 보였다.  아기 때 이후로 꿀잠을 자본 기억도 없는데 여기선 단잠을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 새근새근 자는 어느 중년여성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언니 같기도 하고 동생 같기도 한 여자였다. 너무 편해서 떨렸다. 이곳저곳 자리를 옮겨 누워 있어도 잠이 오지는 않았다. 정작 함께 온 내 언니는 어디에 있는지 어느 구석에서 코를 골겠지.


어렸을 때에는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조차 없이 살았다. 밴쿠버에선 옆집을 가도 미리 연락을 해두어야 한다. 한국 사람끼리도 자기 집 숟가락 개수는 알려주지 않는다. 거리감 있는 친밀함, 때론 정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정이란 부대껴야 생기는 것일까? 한국인끼리에서도 영락없는 지켜지는 서양식 프라이버시가 거추장스러운 적도 있었다.


옆집 필리핀 가족은 주말이면 친구들과 친척들을 불러서 파티를 벌였다. 카드 게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놀았다. 설날, 추석, 크리스마스 때도 달랑 우리 가족뿐이었다. 나는 프라이버시가 지겨웠다. 지루했다. 그러던 차에 한국의 찜질방은 내 모든 의심과 경계심을 풀어 주었다. 내가 어릴 적에 봤던 목욕탕과는 차원이 달랐다. 인간이 느껴진다. 프라이버시보다는 연결이다. 다 벗어도 창피하지 않고 코를 골며 자도 ‘아 얼마나 고달픈 인생을 살았기에 저렇게 코를 골까?” 하면서 따뜻하게 품어 줄 온돌방. 계란이라도 하나 까주면서 어깨를 두드려 줄 것 같은 사람들이 있는 곳. 한 줌의 경계심도 없는 그런 곳.


언니는 등을 밀어주었다. 그러더니 때 밀어주는 사람을 불렀다. 하얀 증기 속을 팬티와 브래지어 하나 걸치고 나타난 그녀는 바가지로 내 몸에 물을 쫙쫙 끼얹었다. 나는 그때 경건해졌다.  어쩔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평소 기도할 때마다 듣던 "다 내려놓아라."라는 말이 이 말이로구나 했다.


찰싹찰싹 소리가 나를 때렸다. 나는 회개가 절로 나왔다. 그녀는 마치 프라이팬 위의 전 뒤집듯이 나를 돌려가며 내 때를 씻어주었다. 마치 고해성사를 하듯 가만히 눈 감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창피해서 한쪽 다리를 올리고  뭐라도 가리려고 했지만 곧이어 다 내려놓았다. 남들이 내려놓지 않을 때 혼자 내려놓기는 힘들더니 남들이 다 내려놓으니 나도 내려놓기 쉬웠다. "그래, 수치심, 죄책감, 도 다 떠나라". 내가 그때 벗어던진 허물 때문에 얼마나 가벼워졌는지는 나만 안다.


회개를 남들이 보는 가운데 할 필요가 있다. 내 눈으로 보이던 엄청난 때, 나에게 그런 때가 있는 줄을 나도 모른 체 잘 살아간다. 샤워만 대충 하고도 충분했는데 가끔 몸을 물에 불려 빨갛게 될 때까지 씻어내고 싶다. 세신사가 증인이다. 내가 때가 많다는 것을. 그녀는 내가 씻을 수 없는 등까지 박박 문질러가며 다 닦아준다. 훨씬 가벼운 마음, 단체로 목욕탕에 가서 함께 때를 밀면 우리는 서로에게 더 솔직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해성사 같았던 그때의 경험, 그 고해성사를 들어주던 세신사는 누구였을까? 감사를 표현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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