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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Sep 24. 2023

슬픈 눈동자

너를 돌봐줄게, 걱정 마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속일 수는 없다. "너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너를 돌보고 있느냐"며 묻는다.

내가 나를 거울 속에서 바라본 것이 얼마나 될까 계산을 해 본 적이 있다. 하루에 10번 이상 바라본다고 치면 환갑 나이에는 20만 번이 넘는다.


그런데 나는 나를 얼마나 알까? 어느 날 거울 속에서 보인 나의 모습, 늙는 것은 순리지만 그 늙음을 넘어선 나를 방임한 것이 분명하게 보이는 이마의 11자, 코 양옆의 팔자 주름. 사진을 찍으면 카메라는 내 마음속을 어떻게 아는지 나의 내면까지도 그대로 드러냈다.

 

"가족들을 위해 자신을 어디까지 헌신해야 하는가"라는 어떤 사람의 말에 대답을 한 적이 있었다. "남들에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 않지만 자신에게 나쁜 사람이 되면 안 된다" 충고했던 나였다. 나는 나에게 나쁜 사람이었다.

 나에게도 정겹고 떠 뜻한 손길이 필요했다.


가장 못 참겠는 것은 풍성했던 머리카락이 한 줌정도로 준 것이다. 마음도 몸도 돌보지 않고 뭘 했지? 누군가가 뒷모습을 진으로 찍어 준 적이 있다. 그때 알게 된 내 뒷모습의 진실. "다들 알고 있었겠지. 나만 몰랐겠지. 물어볼 때마다 예쁘다고 하더니 다 거짓말쟁이야"


나의 40대는 내가 여자로서 가장 아름다웠던 시기였는데 나는 그때 아이들과만 행복했다. 만약 누가 내게 소원을 들어준다며 한 가지만 이야기하라면 나의 40대를 돌려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그때 했어야 할 일, 엄마로 아내로서도 중요하지만 여자로서 나를 돌아보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 때문이다. 엄마로서도 아빠와 타협하며  당당하게 살았어야 했다. 우리는 기울어진 저울 같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 저울을 바라보기 위해 아이들이 똑바로 설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겠다.  우리는 서로에게 낯선 채로 살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중간에서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안전하게 느끼지를 못했다. 엄마 아빠 사이를 오가며 중재하기 바빴다. 그 세월이 서럽다.


'식사를 하고 집을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 일상적 노동을 무시하고서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다. 아무것도 아닌 날을, 특별할 것 없는 날을, 어제도 오늘도 매일 지속되는 날들을 지켜낸다는 게 참 위대하다는 걸 깨닫는 요즘입니다. 오래 그곳에 있어 주세요. 진정으로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은 삶의 모습이 단순하다"


어느 책에서 읽은 문구다. 이런 위로에도 불구하고 나는 50대 중반이 되면서 서글펐다. 닳아버린 육체적 손실을 힘들어했지만 마음의 상실도 만만치 않았다. 그 서글픔은 내가 당연히 풀 수 있어야 하는 현실적의 문제를 풀지 못하는 무력감에 근거한 것이었다.  세 딸에게 여자로서 엄마로서의 권리를 알려 주지 않은 것. 그리고 나의 아름다웠던 소중했던 시간을 누구든 훼방하도록 놔두었던 것. 상대가 미웠던 시간이 많았던 것.  시간이 속상했다.


어느 순간 바라본 거울 속의 내 눈동자에  서러움, 상실감이 말라붙어 있었다. 속 시원하게 울어 보지도 못한 채. “나는 너무 슬퍼요. 도와 달라”라고 소리 지르면서. 나는 그제야 나의 눈동자를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그래 이제부터 내가 너를 돌봐줄게. 대답 없는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너를 내가 돌볼게. 걱정하지 마. 괜찮아." 내가 나를 돌보기 위해 우선 선택한 것은 한국행이었다. 거기 가면 나를 찾을 수 있겠지. 내가 거기 있었으니까,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쉬면서 몸도 돌보고 마음도 돌볼 수 있을 테니까, 지나온 과거 안에 내 삶의 의미가 있었을 텐데 지난 시절을 어떻게 살았는지 도무지 정리가 안되었다. 달리기만 했으니까, 쉼이 없었다.



사진 : Pixabay의 4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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