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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텔러 레이첼 Sep 24. 2023

울지 못해 생긴 병

안수기도, 은혜


여행이 무르익어 가던 어느 날 동생이 다니는 대형교회의 일요일 예배에 참석했다.. 나는 곧잘 어떤 일을 하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해리 증상이 있었다. 대낮에 꾸는 꿈, 눈을 뜨고 꾸는 꿈에 익숙한 나였다. 아마도 어린 시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올 때마다 습관적으로 딴생각을 하며 힘든 마음을 극복하려 했던 습관이 굳은 것 같았다.


2010년, 내가 밴쿠버에 세 딸을 두고 급하게 한국으로 가게 된 이유는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너무 큰 이유이기도 하다. 타국에서 아이들 셋을 기르고 내내 장거리 트럭 운전을 하며 집에 못 들어오거나 들어오더라도 자신이 너무 힘들어 집 안에 있던 나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던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나의 정신력은 거의 깨어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마음속에 남은 건 우울이었다. 내 마음속은 마치 다 퍼내고 마른 바닥만 보이는 우물처럼 쩍 쩍 갈라져 있었다.


예배가 끝나고 동생을 따라 건물의 왼쪽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여럿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듣고 보니 암 환자 등 치유가 어려운 질병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조금 있다가 하얀 목장갑을 낀 분이 들어왔다. 동생이 나에게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목사는 나를 쳐다보고는 단박에 울어야 풀릴 것 같다고 했다.


시킨 대로 훌쩍훌쩍 우는 시늉을 하자 그 목사는 더 크게 울라고 했다. "더 크게 더 크게" 하면서 내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마침내 나는 그 목사의 말대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마치 거대한 동굴에서 터져 나오는 어느 짐승의 절규처럼 내가 울부짖는 것이 아닌가? 울수록 설움이 더 터져 나와 끝도 없이 우는 나였다. 

.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울지 못했던 것, 이민살이로 고통스러웠던 순간들, 나도 모르게 무의식 저 밑바닥에 꾹꾹 눌러 놓았던 울음이 고함처럼 온 공간을 가득 채웠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눈물에 콧물이 섞여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남의 눈치를 그토록 많이 보던 내가 그럴 줄은 몰랐다. 엄마와 동생은 그런 나를 보고 마음 아파했다. 정말 시원하게 울고 나서부터 내 얼굴은 말갛고 편안해졌다.


나는 교회의 그 목사로부터 우는 것의 신성함을 배웠다. 아마도 울면서 한 고해성사가 하나님의 마음을 울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때문에 나를  더 사랑하기로 작정하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한국 여행은 하나님이 예비하신 치유의 과정이었다. 생각할수록 신비한 이끄심. 나는 섬세하고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긍휼함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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