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고 선생님은 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 운동을 했고, 친구를 만나 밥을 먹었고, 2kg이나 빠졌다고 말했다. 잠은 얼마나 자고 스스로 느끼는 컨디션은 어떤지 말했다. 어떤 생각과 감정이 들었는지도 말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선생님은 질문했다.
“진아 씨 남자친구 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를 좋아하던 남자 중에는 괜찮은 사람이 많았다. 내가 젊고 아름다웠던 그 시절을 더 선명하게 기억하게 해주었을 남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많은 기회를 놓쳤다. 만나지 못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다.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이 버거웠다. 누군가가 좋아지다가도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갑자기 마음이 홱 하고 변하기도 했다. 호감이 가다가도 ‘아빠와 비슷한 모습’이 보이면 갑자기 정이 확 떨어지기도 했다.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하는 모습이나, 과장해서 부풀려 말하는 모습이 특히 그랬다. 연하의 남자에게는 전혀 마음이 가지 않았다. 아빠가 엄마보다 두 살 어렸다.
아빠는 술을 자주 마시고 친구들을 좋아했다. 다혈질이었다. 하지만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했다. 호탕하고 사교적이었다. 아빠를 조금도 닮지 않은 사람은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빠와 닮은 남자들을 체에 걸러냈다. 그 체가 너무나 촘촘했다. 그래서 남자를 사귀기 힘들었다. ‘아빠는 아빠고 이 사람은 이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며,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모두가 술에 취하면 오징어 젓갈이 담긴 반찬통을 던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알게 되는데 참 오랜시간과 많은 경험이 필요했다.
선생님이 던진 두 번째 질문은 이랬다.
“부모님이 진아씨 병원 다니는 거 알아요?”
부모님은 몰랐다. 아마 지금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미성년자여서 진료 기록이 부모님께 전달되었다면 나는 애초에 정신 병원에 다니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나는 반사적으로 “걱정할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2주 치 약봉지를 들고 2층 정신 병원에서 내려왔다. 혹시나 누가 보는 사람은 없겠지. 약봉지를 가방에 쑤셔 넣고 1층 편의점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편의점에서 초콜릿을 하나 샀다. 손에 커다란 초콜릿을 들고 있으면 정신 병원이 아니고 편의점에서 나온 것처럼 보인다.
버스에 앉아 초콜릿을 깠다. 내가 부모님께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걱정할 것 같아서가 아니다. 어차피 말해봤자 공감받고 위로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내 모습 그대로 이 집에서 완전히 공감받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눈물은 짜고 초콜릿은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