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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디락스 Mar 22. 2022

정신병원은 2층입니다

버스에 자리를 양보해 드리자 할머니가 나를 보며 웃으신다. ‘대학생 때가 참 좋을 때야. 제일 좋을 때야. 화장 하나도 안 해도 이쁠 때야.” 이 말을 듣고 다리에 힘이 풀린다. 내 인생에 가장 시궁창 같은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좋을 때라니.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정신과는 분위기가 음침하다. 내 순서를 기다리며 다른 환자들을 본다. 다양한 이유로 병원을 찾겠지만 중증 우울증인 사람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공통으로 표정이 없다. 그렇다고 병원이 조용하지는 않다.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중얼중얼 혼잣말하며 대기실을 빙빙 도는 사람이 꼭 한 명씩 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것보다 저녁에 잠이 오지 않는 게 힘들다. 가만히 누워있으면 머리에 빙글빙글 생각이 돌아가는데, 보통 레퍼토리가 비슷하다. 앞으로도 이렇게 건강은 점점 나빠질 것이다. 지방대를 나와서 취업하느라 고생을 할 것이다. 예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했던 상처 되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이야기는 변형되고 과장된다. 그렇게 내가 나에게 상처를 준다. 할머니의 말대로 ‘화장을 하나도 안 해도 이쁜 시절’ 나는 우울증과 불면증으로 약물치료와 상담을 받았다.


젊은 여자 선생님이셨다. 의자에 멀뚱멀뚱 앉아 있는 나에게 던진 첫마디는 이랬다.

“마음먹고 여기 오는데 용기가 많이 필요했을 거예요. 잘 오셨어요.”


선생님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말을 끊지도 않고 재촉하지도 않고 다 들어주었다. 아주 어릴 때는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아도 그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신체적 학대를 받은 아이도 성인이 되기 전에는 정신적인 문제가 잘 발현되지 않는다고 한다. 마음 깊은 곳에 묻혀 있던 상처는 내가 그 상처를 스스로 치료할 수 있을 만큼 건강해진 20살이 되어서 발현된다고 한다. 선생님은 이런 사실을 나에게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나의 우울증이 결코 내가 나약하거나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는 점을 반복해서 말해주셨다.


주기적으로 피검사를 하고 호르몬 수치를 체크했다. 호르몬 수치를 보고 약을 처방해 주었다.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난해했다. 정신상태를 호르몬 수치로 계산해 내고 숫자로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 나를 묘하게 안심시켰다. 나의 뿌연 정신이 ‘우울증’이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우울증 환자가 있고, 완치하고 일상생활을 잘 해나가는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점도 나를 안심시켰다.


다행히도 나는 약효가 좋았다.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러 가는 것, 머리를 이틀에 한 번 감는 것, 운동을 나가는 것, 밥을 제시간에 차려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본격적인 상담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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