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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Q 01화

시티즌 케인

by Letter B

보통은 그렇잖아요, 삶이라는게

이해할 수 있는가, 없는가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죠.


이름은?

없습니다.

나이는?

동안이죠.

취미는?

관찰?


올해로 나이의 앞자리가 바뀐다. 언젠가 영화나 책에서 보았던 "미디어 범람"이라는 타이틀이 화면을 너머 거리를 메운다. 하루가 지나면 새롭게 단장한 상가들이 활개를 친다. 가보지 않은 길을 골라 이름없는 상점으로 들어선다. 이런게 플렉스.


나름 인정받는 작가다. 젊은이들의 언어를 받아들이기 좋은 언어로 표현해는 것은 나의 능력. 흔히들 방송용 언어라고 표현하지만, 위로에는 차등이 없지 않은가. 아니, 없어야한다. 새롭게 들어선 브랜드의 가치를 멀뚱이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지어 본다.


특별한 일은 없다.

석양이 내려 앉으면 가벼운 셔츠를 챙겨입고 홀린 듯 거리로 내쳐진다. 거리는 고요하다. 확신이 없는 움직임이 교차할 뿐이었다.


질문1. 기분의 상태는 어떠한가.

질문2. 계획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는가.


쏟아져 내려오는 질문들은 매번 한계의 턱을 넘지 못하고 고꾸라지듯 고개를 숙였다. 그럼에도 결과값은 행동한 사람의 몫이었다. 살기 편한 공식의 변형이었다. 배가 부르다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곯은 배를 움켜쥐며 질문을 회피했다.


이런 글들은 대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한다.

글에도 독자의 기분을 고려하는 시대가 바로 코 앞에서 으르렁대는 것이다. 다시금 바야흐로.

나는 이런 부분에서 상당히 고심을 하고 있다. 쓰고픈 말을 쓰는 것이 작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와인 한 잔을 입에 머금고, 짐짓 분위기를 동냥 삼아 한 걸음 더 내딛어 본다. 여유가 없어진다는 것을 이해하라는 말을 이해하는 중이다. 이해란 좋은 것으로 존재하여야 한다.


형형색색으로 진열된 셔츠에 이름을 나열한다. 밝음이, 울컥이, 슬픔이, 우울이.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채워진다. 때론 훌훌 벗어던지는 옷가지처럼 감정도 가볍게 털어버릴 수 있다면하곤 생각한다. 우울한 날이다. 쉬이 벗겨지지 않는 마음이 무겁다.


어제는 같은 문자를 세 통 받았다. "힘을 내"라는 간단하지만 어려운 단어를 골라보았다. 잔잔한 물결에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던져지곤 한다. 크기도 무게도, 모양도 제각각인 것들을 마주한다는 건 나이를 먹어갈수록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가벼운 농이 더러는 치료가 되기도 하나 보다. 때로는 이해가 치료이기도 하니까. 들고 있는 책을 집어던지고는 몇 달째 묵혀둔 우편물을 들춰본다. 확신이 서지 않는다.


바람을 쐬러 나선 거리에서 그제 입은 옷을 발견한다. 어제 보았던 손짓으로 인사한다. 우연이 연이어 흐른다. 아니라고 한다. 아닌가 보다. 멀리 힘을 내라고 영화에서 보았던 문구가 전단지에 큼지막이 새겨져 있다. 갈망하던 것은 완연한 존재였을까.


정해진 답은 없다.

이런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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