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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Q 02화

시식

by Letter B






언젠가의 일이었다.


햇볕이 강한 대낮의 거리를 땀이 쏟아내리는 줄도 모르고 거닌다.

강한 빛이 시야를 가리고 이내 어지러움이 밀려온다. 옮기는 걸음이 차츰 무겁다.


마른 입으로 간신히 침을 넘긴다.


가판대 위로 곱게 늘어선 끝물의 귤이 우두커니 걸음을 반긴다. 하얗게 이는 충돌에 걸음을 멈춘다. 선명하게 그늘진 거리 위로 빛나는 광택이 오늘따라 유난하다. 가격이 보이지 않는다. 슬쩍 열린 문틈 사이엔 아무도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그럴 일이 없는 나인데도 한참을 바라보고는 어쩐일인지 거릴것 없이 하나를 집어 들고야 만다.


코끝을 지르는 시고, 새곰한 당도의 향연, 충돌.

그것은 단순한 우연인지 변덕인지 너무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부끄러할 새도 없이 현장을 벗어난다.

돌이켜봐도 손에 쥔 과실의 출처를 알 수 없다.


입안으로는 얼마남지 않은 겨울의 향이 그득 퍼진다. 새삼 몸이 가볍다.

맥없이 춤추던 몸둥아리는 이내 자세를 갖추고 흥겹게 스텝을 옮긴다.

한 입, 두 입, 세 입. 겨울의 흔적을 손에 쥐고는 죄책감을 떨쳐버린다.

대낮, 11살의 여름이었다.


나는 며칠이나 현장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빙 둘러 귀가했다.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양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치는데도 그 날의 맛은 몇 번이고 나를 같은 자리에 불러 세웠다. 나는 한참이나 끙끙 앓다가 양심을 놓쳐버린 자리로 간신히 돌아서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지불할 돈은 천원이었다.

주인의 지그러진 인상을 잠시 훑고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달아난다. 손에 쥔 과실이 미지하게 달을 때까지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까지 힘차게 달아나고 나서야, 한 입을 베어문다.


대낮, 11살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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