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어떤 상태였나요?
A. 특별히 다를 바 없는 일상이였습니다. 검찰청에 일이 있어서 들러서 오는 길이었어요. 버스 안 오후의 정경.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뉴스에서 연이어 코로나라는 질병에 대해 비상특보를 보도하고 있는만큼 모두가 마스크로 중무장한 상태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어죠. 그래서 저도 약간의 긴장과 함께 바깥의 풍경을 보고 있었을 뿐입니다.
Q. 거 버스에서부터 시작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A. 네. 그 날 버스에서 시작된 건 맞아요.
Q. 무슨 일이었죠?
A. 말씀드렸듯이 바깥의 풍경을 보고 있었어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라는게 그렇잖아요. 한정된 공간에 여러 사람이 붐비고, 그래서 그냥 평소보다 조금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늘 백수 생활을 오래 이어온 지라 사람이 붐비는 곳은 정말 오랜만이었거든요. 그 때 제 좌석 앞으로 한 명이 앉았어요. 남자더라고요. 좀 과하다싶을 정도로 좌석에 몸을 기대어 몸을 뒤로 쭉 빼는 덕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옆으로 섰던 한 여성이 남자를 피해 발걸음을 옮겨 제 앞으로 서더라고요. 그러곤 유심히 남자의 뒷모습을 흘끗 보았습니다.
Q. 이상한 것이 없어보이는데요?
A. 물론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대뜸 남자가 뒷목으로 몇 개의 손가락을 갖다대더니 더듬거리기 시작하더군요. 그 느낌이란 것이 있는데 어쩐지 좋지 않더라고요. 약간 정서불안을 갖은 사람처럼 함부로 불쾌하다는 의사를 표현하기 애매하다고 여겨졌습니다.
Q. 그게 끝인가요?
A.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옆으로 걸음을 옮긴 여성이 대뜸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앞에서 휙 몸을 돌렸어요. 시선은 남자에게 향해있었죠. 누가봐도 여성이 무례하게 보일 정도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돌아섰습니다. 앞 좌석에 앉은 남자를 유심히 본 사람이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코로나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너무 무례했거든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성을 질타하는 시선을 보내더라고요. 남성은 순간적으로 분노에 찬 듯 보였습니다. 저에겐 꽤 낯설게 느껴지더라고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적립해왔던 삶의 공식이 약간 복잡하게 꼬이기 시작하더라고요.
Q.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A. 일단 저는 거의 2년 만에 거리로 외출하는 중이었어요. 남성은 뒷목에 손을 갖다대었을 뿐이죠. 하지만 순간적으로 '이전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직감했고, 버스 안의 여타 다른 사람들처럼 남자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불쾌함을 드러낼까 고민을 하고 있었죠. 하지만 제 앞의 여성이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는 순간 저도 놀라울 정도로 판단이 뒤바뀌었어요. 주변 사람들은 남자를 무척이나 무례하고 불쾌하게 쳐다보기 시작했고 남자는 스스로 그 시선을 감내하지 못할 것 처럼 여겨졌죠. 제가 깨달은 건 속으로 남자를 향해 '침착해'라고 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모두가 불쾌해하는 표현을 되려 무시하고는 태연하게 아무 일이 없는 듯 행동했죠. 어찌됐건 공간 안에서 여성의 편을 들어주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되어버린 거죠.
Q. 남성에게 호감이 있었나요?
A. 제가 느끼기에 남성은 약간의 불안 장애가 있어 보였어요. 흡사 초등학생이 짓궃은 장난을 할 때 인지를 못하는 것처럼 그러한 행동과 행위가 전혀 성숙하지 못한 상태라는 것을 인지조차 못하는 사람처럼 말이죠. 한 마디로 순간적으로 느낀 악의라는 것이 많이 가야 고등학생 정도의 호기심처럼 여겨졌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성은 불쾌해했어요. 주변에서도 놀라울 정도로 불쾌해했죠. 저도 마찬가지였지만 당시를 떠올려보면 그 남성이 스스로를 자신의 외형보다 어리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러한 주변의 반응에 놀라울 정도로 미숙하게 응대했죠. 그러한 분위기가 조금 더 지속되면 남성은 자신의 불쾌감을 타인에게 강하게 어필할 수도 있다고 여겨졌어요. 그리고 저는 바로 그 뒤에 앉은 사람이었죠.
Q. 위협적으로 여겨졌나요?
A. 직접적으로 당장 피해를 줄 것이라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조금 위협적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남성의 행위가 정확히 누구를 향한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참고로 저는 당시 남성의 어떠한 행동에 불쾌감이 발생했다는 것을 눈치챘을 뿐입니다.) 그 분노가 저에게 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쉽게 말하면 변태를 봤을 때 모두가 느끼는 그 불안이라고 봐도 좋습니다. 그런데 놀라운건 버스 안의 모두가 강한 불쾌감을 드러내자 오히려 남성이 약자가 되어버린 거에요. 어쩌면 좋은 현상이죠. 왜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버스에서 범죄자를 발견했을 때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거죠.
Q. 그럼 문제가 없어보이는데요?
A. 이론상으론 저도 그랬던 것이 맞습니다. 그렇게 살아왔고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느낀 건 약간의 정서 불안을 겪고 있는 한 사람이 순간적으로 오판을 해서 짓궂은 행동을 저질렀을 때 너무 과하게 불쾌감을 드러내는 상황을 장본인이 견디질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과감한 행동을 저질렀음에도 사람들의 시선을 무척 의식한다는 거죠. 그리고 그런 순간에 주변에서 과한 불쾌감을 어필하게 되면 더욱 과격하게 변질될 가능성을 엿보았어요.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단호한 태도 뒤에는 더 과격하게 변하지 않도록 태연하게 포용하는 태도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상대가 희망을 갖지 않을 정도로만 말이죠.
Q. 포용한다고요?
A. 네. 단호한 태도 뒤에는 '당신의 행동은 실수였고, 나 역시 당신의 태도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이 행동하는 겁니다.
Q. 불쾌해한 사람들을 질책했나요?
A. 저 역시도 불쾌감을 갖은 것이 사실이라 조금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시민들의 움직임에 오히려 당황했다고 봐야겠군요. 어쩌면 사회적 약자를 향한 시민 의식이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요. 되짚어보면 공공장소였고, 건장한 남성이 불쾌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모두가 인지하고 도움의 행동을 취한 것이니까요.
Q. 그럼 뭐가 문제죠?
A. 같은 생각을 순간적으로 했더라고 해도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남성의 표정을 자세히 볼 수 있었던 것은 뒷좌석에 앉은 저 뿐이였던 것 같거든요. 그 조금 더 질책하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상태 말이죠. 당시 남성은 당황한 듯 보였고 불쾌감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어요. 하지만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였죠. 다행히 폭력성이 과하게 여겨지진 않았지만, 우발적인 상태로 돌입할 가능성도 아주 약간은 보였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태연한 척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죠. 아마 버스 내에서 반경 1m내에 유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Q. 그래서요?
A. 버스가 서자 아주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버스에서 내렸죠. 누가 봐도 민망한 상황이었고, 남성을 불쾌해하는 태도가 간접적으로 드러났다고 봐야했습니다. 저 역시도 무척 불쾌한 상태였지만, 전혀 드러내지 않았어요. 오히려 저를 다독이면서도 한편으론 그 남성에게 괜찮다고 신호를 보낸다는 것을 인지했죠. 자리를 옮기고 싶었지만, 옮기지 않았습니다. 두려웠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성이 그 상황을 정확히 인지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처음보다 안정을 찾은 듯 보였습니다.
Q. 본인 때문이라 생각하십니까?
A. 그건 알 수 없겠죠. 그저 우리는 표정과 행동, 그리고 분위기를 통해 상황을 판단할 뿐이니까요.
Q. 문제가 뭐죠?
A. 입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고, 혹 그 버스 안에 있었던 사람들 조차 왜 바로 뒷좌석에 앉은 제가 자리를 옮기지 않았는지에 대해 가까이서 보지 않으면 인지하기 힘들죠. 더구나 무척이나 태연한 상태로 관조적인 시선으로 있었기에 당장 불쾌감을 느낀 사람들에겐 위화감을 불러 일으켰을 소지가 있죠.
Q. 입소문이 나기 힘든 상황이 아닌가요?
A. 뭐 어디까진 유추라고 봐야죠. 아무래도 동네라는 한정된 공간이었고, 버스는 만석이었거든요. 뭐 우연이라고 해도 좋습니다만, 저는 그 이후로 일부 사람들로부터 변태와 같은 편이라는 시선을 견뎌내야만 했거든요. 그런거죠. 변태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사람. 소문이란게 그렇지 않습니까. 대응하지 않으면 생각하기 쉬운 쪽으로 변질되요. 왜 학급내에서도 괴롭힘에 의연한 친구들이 더욱 그 시기의 대상이 되죠. 그러한 상태를 돌려보면 딱히 이유가 존재하지 않잖아요? 직접적으로 그 남성을 옹호하지도 않고, 똑같은 불쾌감을 느끼며 태연하게 버텨온 것이니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게 되는 거죠.
Q. 그 이후로 삶이 달라졌나요?
A. 딱히 달라졌다고 볼 순 없겠습니다. 사실 저의 삶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볼 수 있거든요. 굳이 그러한 시선과 분위기를 신경쓰지 않게 되는 거죠. 그저 상황에 맞게 행동한 것이라 어느 한 쪽의 태도를 취하라는 강요같은 것을 느껴도 그다지 압박을 받지 않는 그런 사람인거죠. 그렇다고 괴롭지 않은 건 아닙니다만.
Q. 왕따
A. 왕따보다는 은따
Q. 사냥이 끝났나요?
A. ....
잘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