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km.
언젠가 도로 한 복판에 메달린 교통 안전 표지판에서 보았던 제한 속도 60km가 떠오른다.
아무도 지키지 않는 도로 규정에 대해 어느 날의 택시 기사는 볼멘 소리로 투덜 거렸다.
저런 건 언제 바뀌나.
나는 흘끗 미터기를 바라보며 그렇다고 수긍하고 만다.
한참이나 걸었다. 평상시라면 30분이면 충분한 거리에 2시간을 투자한다.
속력이 4배는 늘었다. 아니, 4배는 줄었다.
속력을 줄인다는 것은 보폭을 좁히고 양 팔로 균형을 잡는 일이다.
이런 상태로 생각을 비워내다 보면 30여 분이 추가된다.
나는 몇 번이나 멈춰선다.
그래서 그 여자는 뭐하고 산대요, 요즘.
글쎄요??
나는 이렇게 대충 쳐내는 왈츠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이제와서야 인과 관계를 가늠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서도 그 어설픈 격조의 단호함이란.
나는 하마터면 자세를 갖추고는 깜빡 속아 넘어가기라도 할 것처럼 웃는다.
분주한 건 무엇이었을까?
아무튼 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속력을 맞춘다.
이전처럼 감사의 인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는 속력을 맞추지 않은 죄로 먹먹해진 귀로 왈츠를 훔쳐 듣다가는 보폭을 성큼 성큼 넓혀본다.
흡사 선사 시대의 포유 동물이 포효하듯 손을 움켜 쥐고는.
이런 게 왈츠지.
제 속력으로 밤 거리를 배회하는 기분이란.
맞은 편으로 약속을 나눈 적 없는 남성이 새로운 리듬이라도 발견한 듯 죄멸의 의사를 내비춘다.
몇 걸음에 버스가 도착한다.
하루의 노고를 어깨에 동여 멘 여성이 도리가 없다는 듯 큰 숨으로 하늘을 올려다 본다.
공룡 걸음은 방금 전에 개발한 건데, 버스에서 내린 저 여성에게 계산한 흔적을 찾기 어렵단 말인가요?
그러니까 걸음을 재촉해 앞서간 이가 손에 든 종이 가방을 펼쳐드는 것에 대한 정성을 말하는 건가요?
전동 킥보드를 탄 남성이 휑 하고 지나간다.
왜 저러는 거요?
살려고 저런데요.
저런.
아무튼 비워졌다 뭐라도 채워진다.
왜 삶을 배우질 않고 저 모냥이지.
아, 같이 산다고 저런다는데.
말을 아낀다.
뭐 저러고 사는 사람들이 무더기 씩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