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보면서

by Letter B







이태원을 다녀왔다.

뚜렷한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잠이 길었고 마침 몸이 무겁다.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지 오래다.

거리를 나서기로 약속한 것은 아니다.

'시간이 난 김에' 나는 그렇게 마음에 이름을 붙였다.


지하철 노선도를 올려다본다.

조금 자란 덕인가. 이제는 의도해서 짚어내지 않으면 찾기 어려운 이태원역은 지도의 중앙 조금 위 상부에 위치해 있다. 나는 그렇게 머문다. 용산 시대의 서막이 오른 지 햇수로 3년 만이다. 부끄러운 기분이다.

나는 어릴 적 이제 막 서울에 상경했던 시절을 떠올린다.

기이한 조형이 막연하게 여겨지던 여러 갈래의 에스컬레이터에 몸을 싣는다.

안녕 -

몇 안 되는 우연과 훌쩍 지난 시간들은 쓸모없는 상념을 키운다.

이태원의 공기는 그대로다.

습하고 음침하다.


하늘로는 가는 비가 예고 없이 후두둑 떨어진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일을 손에서 놓은 지 너무 오래다.

서투른 우연을 반복하는 것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역 앞으로 놓인 안내 표지판 앞에 다다라서야 목적지의 방향이 다른 것을 확인한다.

방향을 틀어 돌아선다.

나는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나는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라 예고 없이 떨어지는 비를 피하지 않는다.


목적을 둔 사진 몇 장을 챙긴다.

의미가 있는 것인가와 같은 질문이 반복해서 머릿속을 맴돈다.


화려했던 거리는 번듯한 브랜드로 메워졌다.

몇 해 전 세간을 들썩이게 한 참사의 현장 앞을 서성이다 용기를 내어 서 본다.

사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나는 스러져간 이들 대신 가슴을 달군 충정이란 무엇이었던가 떠올려본다.

이렇게 쉬운 것을.

입이 무거운 사람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간은 나아가지 않는다.


비가 찾아오는 일이 많아졌다.

준비 없이 떨어지는 장대비를 집에 거의 다다라서야 맞이한다.

온종일 끈적 지게 들러붙던 더위에도 당황스러운 건 매한가지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걷는다.

세차게 내리는 비는 양보하지 않는다.

씻겨나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환기되지 않는 덧없는 젊음에 힘껏 저항해 본다.

상실감이 나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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