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있다.
나는 관찰당했다.
관찰을 하는 일이란 놀랍도록 세밀하고 정교한 것이어서 대체로 무례하고 과장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고개가 숙여질 만큼의 세심한 배려와 같은 것을 보게 될 때면 그러한 노고에 약간의 정성을 내보이는 것이 인간의 도리가 아닐까 고민한 적이 있다.
나는 관찰하는 일을 한다.
나는 그들의 세밀하고 정교한 움직임을 세세하게 읽어 낼만큼 좋은 관찰자는 못된다.
관찰이란 사고에 비례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사유로 나는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고 있다.
며칠이나 지났는지 모른다.
나는 좀 더 정밀한 관찰을 위해 자세를 바르게 하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생각은 비워지거나 조금 뒤처지도록 요구된다.
무작위로 떠오르는 생각들을 강제로 축약시켜 선별된 주제를 천천히 탐미하는 부분에서 나는 특별히 지친다.
그러나 이것은 관찰을 목적으로 하는 인재에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관찰이란 천천히 서행하는 일이다.
시간을 할애하여 추가로 설명하자면 나는 이것을 화산이 폭발한 현장에서 뜨거운 열기운이 이글거리는 가운데 화산재가 덮쳐오는 순간까지 생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갑갑함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전기에 나올 법한 고수들이야 예측 불가능한 핵폭탄이라고 했으려나.
아무튼 당장에야 그렇다.
그런 사유로 나는 웃음이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래도 최선을 다해 차선을 고민한 까닭이다.
적잖이 마음에 들었던 엉성한 장점들을 죽여가며 말이다.
어딘가 잘못됐다.
그나저나 죽일 수 있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