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소란이 지나간다.

by Letter B






'사운드 렌탈 서비스'를 아시나요?




카세트 플레이어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다.

그것은 우주와도 같았다.

사촌 오빠는 감탄한 모양새로 가져온 카세트 플레이어와 무릎을 함께 내어주었다.

나는 까닭을 모른 채 덥석 베고 누워 현실의 경계를 바라보았다.

지극히 평범하게 여겨졌다.

나는 숨을 곳이 생긴 것만 같아 작게 기뻐하였다.


시대는 최첨단 휴대 기기의 버튼 하나만으로 손쉽게 다음 곡으로 넘어서는 바야흐로 21세기에 도래한 지 오래다. 새 시대를 목청 높이는 청년들을 가로지르며 세간에 떠도는 종말론이란 시대에 뒤처진 낙오자들이 들고 선 피켓처럼 현실감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공상처럼 다가선다. 사회는 알아서 굴러가고 내비게이션이란 닌텐도처럼 가벼워졌다. 해석까지 알아서 척척 해주는 AI 시대에 이깟 '소설'이 무슨 소용이람? 머리에 들어설 리 없다. 가끔 쏟아지는 전보를 발견하는 일이 근래에 즐거움이다. 몇 개를 쌓아두었는지 모른다.


총성이 나뒹구는 거리에서 음악은 무슨.


더위가 가시지 않은 밤거리를 배회하며 리드미컬한 음악과 함께 낭만을 그리는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선선함이 옷깃에 스미고 나는 마음이라도 내던진 듯 퐁당 여름, 깊고 푸른 밤의 품 속으로 뛰어든다.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은 이 까만 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낭만을 환영하는 동네는 근래에 찾기 어렵다. 줄을 세우던 히트 곡들을 찾아보는 이는 더 이상 없다. 우리를 설레이게 했던 음악은 기능을 상실한 채 끝내 탈출구를 마련하지 못한 듯하다. 헛발이라도 딛겠어요, 깜빡 졸음을 쏟았다가는.


오늘도다.

벌써 3주 째다.

나는 지금 '사운드 렌탈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 레코드 매장 앞에 서 있다.

전문적인 음향 장비를 보유한 소규모 매체로서 장비 대여에 있어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렌탈 서비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21세기 현대 사회를 대표하는 자주성을 지닌 하나의 주체로서 아날로그 음향 장비 이용에 있어 관심을 표하는 바이다. 가져간 음반은 이용할 수 없다는 점.


나는 여전히 현대 사회란 알아서 굴러가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투쟁한다.

아,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는 공간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어렵게 손에 쥔 카세트 플레이어는 이렇다 할 설레임도 기대한만치의 공간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기에 아쉬워 나는 아날로그 장비를 몇 번이나 달칵 거린다.


매 방문 때마다 참 귀찮게도 비가 내린다.

나는 3번 째 방문 때 1시간의 브레이크 타임을 기다린 뒤 너무 추워서 포기하고 싶었다.

겨우 얻어 낸 혀가 까질 듯 데워진 라테의 거친 거품을 들이키고 서야 안도한다.

무슨 까닭이었지?

나는 너무 많은 까닭이 변명처럼 여겨져 머리가 새하얘진 뒤에도 그냥 걸었다.

한 손에 꼭 쥐어지는 사이즈가 반갑다.

놓쳐버린 것은 무엇일까.


저기 지난 밤 나눈 대화가 흘러가는 군요.

우리는 너무 많은 낭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신없이 지나온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손에 쥔 최첨단 휴대 기기에서 플레이 버튼을 누르자 음악이 투덜거리기 시작한다.

아날로그라고 다를까.

어딘가 이상하다.

플레이리스트의 다음 버튼을 누른다.

괜찮다. 다음 곡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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