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 김치찌개의 추억

내 요리의 시작

by 지언 방혜린

내가 어린 시절, 우리 엄마는 집 앞 상가에서 수입 상품 선물 가게를 했다. 수입 상품이다 보니 엄마는 주로 남대문에 있는 도매 수입 상가로 물건을 떼러 다녔다. 우리 삼 남매는 그곳을 ‘먼데 시장’이라고 불렀다.

아침에 눈을 떠 머리맡을 더듬어 엄마의 편지를 발견한 날은, 엄마가 먼데 시장에 간 날이었다. 나는 어린 동생들을 깨워 학교 갈 채비를 하고 등교를 했다. 두 살 터울의 동생은 나와 함께 등교하니 걱정이 없었지만, 일곱 살이나 어린 막내 남동생은 집에 혼자 남아 엄마를 기다리거나 유치원을 가야 했다. 우리 셋을 두고 새벽에 집을 나서는 엄마의 마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린 동생을 두고 먼저 집을 나서는 내 발걸음 또한 결코 가볍지 않았다.


아침 10시에 가게 문을 열어 장사를 시작하려면 엄마는 사람들이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 새벽 별을 보며 길을 나서야 했다. 엄마에게 달콤한 새벽잠은 허락되지 않는 사치였다. 한겨울 따뜻한 아랫목의 유혹을 매번 뿌리쳐야 했다. 어린 마음에도 물건을 이고 지고 돌아오는 엄마의 모습은 늘 짠하게 느껴졌다. ‘처연하다’는 말이 어울릴까. 그때는 정확히 어떤 감정인지 몰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다, 엄마를 돕고 싶다는 맏딸의 마음이었다.


어린 동생들에게 엄마 대신 맛있는 것을 해주고 싶었다. 한겨울 칼바람에 얼굴은 벌겋게 얼고, 뒷머리는 땀에 흠뻑 젖은 채 종종거리며 새벽을 보내고 돌아오는 엄마에겐 따뜻한 한 끼 밥상을 차려드리고 싶었다. 그렇게 요리를 시작했다.

한 번은 동생들 간식으로 부침개를 해주고 싶었나 보다. 이것저것 응용하고 창작의 나래를 맘껏 펼쳤다. 고소함의 화룡점정을 찍고 싶었는지 참기름 한 병을 통째로 반죽에 들이부었다. 그 일로 엄마에게 등짝 스매싱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는 모르지만, 나의 요리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밥을 짓게 되었고, 라면을 끓이게 되었고, 할 수 있는 요리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때가 내 나이 열 살,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누가 시켜서 한 요리는 아니었다. 억지였다면 아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엄마의 가게는 걸어서 5분 거리였다. 하교 후 우리는 늘 먼저 엄마를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를 보고 왔음에도, 엄마가 없는 집은 어딘가 모르게 썰렁했다. 나는 그 온기를 채우고 싶었다. 할 수 있다면, 내 손으로 그 온도를 메우고 싶었다. 동생들만큼은 그 싸늘함을 느끼지 않기를 바랐다.

엄마 가게 옆집은 수예점이었다. 수예점 아줌마는 실로 이것저것 뚝딱 만들어내는 마법사 같았다. 그곳은 동네 아줌마들의 사랑방이었고, 어린 내 눈에는 신기한 볼거리와 놀거리가 가득한 곳이었다. 나는 가끔 그곳에 들러 잡지를 보곤 했다. 어느 날 잡지에서 참치김치찌개 레시피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 부싯돌이 부딪히며 불꽃이 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꼼꼼히 그 레시피를 적어 내려갔다.

엄마가 먼데 시장에 간 날. 그날도 매서운 추위가 엄마의 허기를 더 할까 싶어 얄밉기까지 한 날이었다. 밥솥에 하얀 쌀밥을 지어놓고 호기롭게 내 생애 첫 찌개 만들기에 도전했다. 다른 건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 찌개의 비법은 마지막에 매운 고추 하나를 쫑쫑 썰어 넣는 것이었다. 수예점 아줌마네 잡지에서 적어 온 레시피를 보고 보고 또 보며 참치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몇 번이나 맛을 봤다. 먹고 또 먹고, 계속 간을 봤다. 전에 먹어본 기억이 없어 이 맛이 맞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다.

마침내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배가 너무 고프면 뱃가죽이 등가죽에 닿는 느낌이 든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엄마에게 밥을 했고, 찌개도 끓여 놓았다고 말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밥과 찌개를 펐다. 아마 그 순간엔 엄마에겐 맛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밥을 먹는 엄마 옆에서 나는 무심한 척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잠시 온 세상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다.

참치김치찌개를 먹던 엄마의 표정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허기 때문이었을까, 따뜻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정말로 맛이 있었던 걸까. 무엇이었든 상관없다. 그 순간 엄마의 행복한 표정은 여전히 선명하다. 엄마는 찌개를 정말 맛있게 먹었다. 많이 먹었다며, 맛있었다며, 기특하다고 나를 칭찬했다. 그리고 상가의 다른 매장 아줌마들에게 며칠 동안이나 내 요리 솜씨를 내 마음씨를 엄마의 큰 딸을 자랑했다.

그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딸이 된 것 같았다. 내 배가 더 부른 것 같았다. 내가 더 행복했다. 내 마음이 더 따뜻했다. 아마 이 기억이 내 본격적인 요리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누군가를 위해, 특히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하게 만드는 나만의 철학이자 기쁨이 되었다.

엄마를 위해 요리를 했던 마음으로 엄마가 되어 자녀를 위해 요리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자녀를 위해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책이 되었고, 그 책이 이제 연극이 되어 1월 17일 대학로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초대합니다.

자녀에게 엄마로서 기성세대로써 마땅한 정신을 편지로 써 내려갈 부모들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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