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월의 마침표

불안을 건너는 연습

by 지언 방혜린

아이야.

작년 이맘때, 대학 입시에 다시 도전하기로 결심한 너를 떠올린다.

그리고 오늘 아침, 고사장으로 너를 들여보내고 지금 이 시간 마지막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을 너를 생각하며, 엄마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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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유산’ 이후 이어진 낭독극 ‘아이야’가 엄마에게 2025년의 마지막 마침표였다면,

너에게 오늘은 2025년의 13월, 그 긴 시간을 마무리하는 날이 아닐까 싶구나.


매일 새벽 집을 나서서 늦은 밤까지 공부와 실기를 병행하느라 지친 너를 보며,

엄마는 네가 그저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

잠도 실컷 자고, 그동안 미뤄 두었던 여행도 가고,

카페에서 시시콜콜한 수다도 떨고, 쇼핑도 하고, 노래방도 가고….

특별하지 않아도 좋은, 우리가 잠시 잃어버렸던 소소한 일상을

너와 다시 누리고 싶단다. 엄마는 가장 친한 친구 한명을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


순식간에 지나간 것처럼 느껴지는 지난 1년이지만,

그 시간이 너에게 꼭 필요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해.

너는 어땠니?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고, 너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것도 참 많겠지?


그런데 지금 엄마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아 있는 질문은 이거야.


“고사장에 들어갈 때마다 네 마음은 어땠을까?”

섬세하고 긴장을 많이 하던 너 곁에는 늘 불안이라는 감정이 따라다녔던 건 아닐까 싶었거든.

어떤 시험에서는 누구보다 잘했고, 또 어떤 순간에는 극단적으로 힘들어 보이기도 했던 너는

감정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아이였지. 그래서 더 안타까운 순간들도 있었고 말이야.


20년을 함께 살았으니 너도 알겠지만, 엄마는 불안에 민감한 사람이잖아.

혹시라도 엄마의 기질이나 양육 방식이 너에게 영향을 준 건 아닐지,

혼자서 많이 고민하고 속상해했던 건 너를 키우며 늘 엄마의 숙제 같은 일이었어.


사실 불안이라는 감정은 아직 엄마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했단다.

다만 예전보다는 훨씬 편해졌다는 건 분명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서 조금씩 달라진 게 아닐까 짐작해 볼 뿐이야.

다만 확실한 건, 이 감정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렇다 해도 엄마는 평생 불안이라는 감정에 쫓기듯 불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어.

아마 그래서 새벽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안 해본 일들을 해 온 게 아닐까 싶구나.

엄마는 너에게 증명이 되어야 할 존재이거든. 너의 앞날이 매 순간 불안에 휘말려 전전긍긍하고, 초조하고, 힘들어하다가 포기하거나 좌절하며 그런 삶을 살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이야.

얼마 전 연극을 하며 연출자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평생 노래해 온 베테랑 톱스타 가수조차도

콘서트를 앞두고 대기실에서 손을 벌벌 떨 만큼 긴장하고 불안해한대.

그러니 이 감정은 너만의 것이 아니야. 아마추어든 프로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감정이란다. 그 사실만은 꼭 네가 알았으면 좋겠어.

탁월한 성취는 대부분 ‘용기’ 덕분에 이루어진다고 하더라.

욕망이 쏘아 올린 공을 불안이라는 감정이 삼켜 버리기 전에 용기가 먼저 덥석 물어 보란 듯이 성취를 해내는 것처럼 말이야. 잘하고 싶은 욕망이 커질수록 불안한 감정도 함께 커지는 법이야.

그럼 어때?

그 불안을 잘 다스리며 해내면 성취감은 더 커지고, 만족감과 행복감, 즐거움도 함께 커지겠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라는 아이템을 옆구리에 장착하고 신바람 나게 도전하렴.

그렇게 한 번, 두 번 시도하고 경험하다 보면 불안이 주는 불편함이 어느 순간 편해질 때가 올 거야.

그때가 바로 네가 자란 순간이란다.

어려웠던 것들이 쉬워지고, 불안했던 마음도 서서히 사그라들 거야.

그렇게 하나씩 불안을 넘어설 너만의 명분을 찾아가렴.


에머슨이라는 시인은 “신은 겁쟁이를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하지 않는다”라고 했어.

엄마는 우리 딸이 불안하고, 겁나고,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주저하거나 주저앉아 버리는 겁쟁이가 아니기를 바라.

그 감정을 느끼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 감정 때문에 스스로 가두지는 않았으면 해.

불안해도 한 걸음 내딛고, 떨리면서도 다시 시도하고, 넘어지더라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


잘 해내지 못하는 날이 있어도 괜찮고, 잠시 쉬어 가도 괜찮지만, 결국에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아이였으면 해.

네가 언제나 완벽하길 바라는 게 아니라, 불안 속에서도 너 자신을 믿고 끝내 너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야.


이제 실기시험이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구나.

정말 수고했어.

우리 조금 있다가,

환한 웃음으로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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