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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밤 May 17. 2024

결핍을 나의 원동력으로 활용하기

결핍을 원동력으로 할 것인가, 열등감으로만 가져갈 것인가

나에게는 결핍이 있었다. 돈에 대한 결핍과 엄마에 대한 결핍.

어린 시절 돈 보다도 컸던 것은 엄마에 대한 결핍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보이는 것들은 모두 엄마와 함께 등하교하는 친구들이었다.

그들이 부러웠고 그들이 질투가 났다. 다행히도 아빠는 이 부분을 채워주려 노력했고,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 남동생과 내가 20대 초반의 나이에도 꿋꿋하게 잘 버티고 살아온 이유는 아빠가 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아빠도 사랑을 주는 법을 몰라 가끔은 동생과 내가 상처받는 날들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아빠의 사랑이었다. 그저 사랑 표현이 서툴렀던 것임을.


돈에 대한 결핍은, 어린 시절 자연스레 생겨났다. 중학생이 되니 돈이 부족해 힘들어하는 아빠를 볼 수 있었다. 어쩌면 남들보다 철이 빨리 들어 그 모습이 내 눈에 계속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엄마가 되어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알겠다. 외벌이로서 지금 아이 하나 키우기도 쉽지 않은데, 아빠는 외벌이로서 학령기 자녀 둘을 키웠다. 그러나 아빠는 자존심이 굉장히 센 사람이었다. 돈이 부족한 것에 대해 우리에게 티를 내지도 않았고 남들 앞에서도 절대 없는 척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작게 썼던 돈이 쌓였고 갚지 못해 당신 자신을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다. 아빠가 신용불량자였다는 것을.


아빠와 저녁을 같이 먹을 때 뉴스에 부동산 집값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아빠는 “재수 없다 저 가격의 집을 언제 사냐“라며 리모컨을 돌려버렸다. 지금 생각하면 부동산의 하락기든, 상승기든 아빠의 반응은 똑같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나도 부동산은, 내 집을 가지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라는 생각을 하며 자라게 되었고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자기 방을 제외하고도 3-4개인 집을 보면 내가 죽기 전에 방 3개짜리인 내 집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밝히는 사람은 못된 사람, 속물, 나쁜 사람, 부자들은 재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았다. 20대 중반까지 말이다. 요즘 나는 남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나는 그때 집에 돈도 없었지만 내가 가졌던 생각이 더 가난했다.>라고 말이다. 돈도 없었지만 나를 더 가난하게 만들었던 것은 가난한 마인드였다.


가난한 마인드를 가지고 살았던 내가, 내 집은 절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자들은 다 재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바뀌게 된 계기는 아빠가 돌아가신 후였다.


아빠와 함께 살던 집은 월세였고, 월세를 몇 달간 내지 못해 쫓겨날 뻔했다. 그게 나의 인생의 터닝 포인 트였달까,,, 자본주의 사회는 돈 앞에서는 참 냉정한 곳이구나라는 것을 20대 중반의 나이에 머리에 망치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대로 살다가 답도 없을뿐더러,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이 기대조차 되지 않았다.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내 인생을 살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 인생을 바꿀 것인지는 나의 선택이었다.


나에게 빚은 아주 끔찍하게 두려운 것이었기에 나는 대출은 굉장히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돈으로 아주 소형평수의 집을 구하려고 해도 부동산 소장님들은 대부분 융자를 껴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말이다.


내가 감당 가능한 선에서 갚을 수 있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대출을 실행했다.

다행히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대출은 수월하게 나왔다.


그렇게 나는 내 명의의 첫 집을 매수했다. 아주 낡고 오래된 소형평수의 방 하나의 구축 아파트를 말이다. 감당 가능한 대출이었기에 매월 받는 월급으로 대출금을 갚았고 식비와 생필품에 들어가는 것은 최소한으로 하며 생활을 했다. 게다가 작더라도 무조건 저축을 하는 습관을 가졌다. 단 돈 5만 원이라도 말이다.


그렇게 나는 부동산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를 지켜줄 자산, 언제 나갈지 모르는 집이 아니라 내 집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것인지 내 집을 가지고 알았다. 그리고 저축을 하고 목돈을 모으며 목돈의 힘이라는 게 무시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점차 알아갔다.


방 하나의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했고 아이를 낳고 살았다. 그리고 지금은 몇 년 전 꿈꾸기만 했던 방 3개짜리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와 함께 살고 있다.

내가 구축 아파트에서 신혼을 시작한 것이 참 잘했다 싶다. 남편이랑 결혼한다고 해서 조금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로 옮기고 대출을 더 받았다면 아마 지금처럼 60% 가까이 되는 저축률과 목돈은 모으지 못했을 것 같다. 그리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입주하지도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결핍을 나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자산, 움직이지 않는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외여행을 가야 하고, 보상으로 명품 하나는 나에게 사줘야 하는 그때의 지인들과 점차 자산의 격차가 벌어진다는 게 조금씩 느껴지는 요즘이다.

그때 다들 하나씩은 가졌던 명품이 나에게는 없었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명품 하나 없는 남편과 나지만 우리를 지켜주는 자산은 배가 되었다.


아직도 나는 결핍이 있다. 돈에 대한 결핍. 그래서 나는 이걸 원동력 삼아 굴리고 굴릴 것이다. 기본은 적금이다. 적금을 모아 목돈을 만들고 목돈으로 나를 지켜줄 자산을 찾는 것이다.


한탕주의, 인생한방 나는 믿지 않는다. 이십 대 중반의 나이부터 아끼고 모으며 살아보니 인생한방이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 돈을 지킬 수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도 내가 후회하지 않는 것은, 아주 오래된 낡고 낡은 아파트였지만 매수를 선택했던 것, 그리고 신혼을 그 집에서 생활하기를 선택했던 것, 저축을 우습게 알지 않고 꾸준히 해왔던 것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나의 가장 큰 자산은 작은 습관의 힘을 알았다는 것과 그것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가난한 마인드를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다. 결핍으로 인한 열등감과 시기질투가 굉장히 많았던 사람이다. 그런 내가 지금은 내 가난한 마인드를 깨부수며 나아가고 있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은 작은 돈도 소중히 다룰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큰 자산이고, 지지대 역할을 해준다.


열등감을 나는 원동력으로 바꾸었다. 지금도 가지고 있는 이 결핍에 의한 열등감을 나는 원동력으로 사용한다. 앞으로도 내게 남아있는 가난한 마인드를 조각조각 깨부술 것이다.


지금도 내가 지키는 것이 있다. 선저축하기, 신용카드 쓰지 않기, 한 달 예산을 세워 그 안에서 지출하기다. 결핍이 있었고 나는 그 결핍을 원망하고 탓하기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고 실행하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그리고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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